
이 책을 보면 그렇다. 국문학자인 저자 김익두교수(전북대)는 30년이 넘게 한국의 민요, 구비문학, 풍물굿, 판소리에 대한 현지조사와 연구를 계속해오면서 스스로 시를 쓰고 필요한 서구이론서들을 번역하고 민요를 채집하고 판소리까지 배워서 할 정도로 '몸을 던져' 우리 전통예술을 체화하고 정리해 방대한 학문적 업적을 남겼다.
저서들을 보면 그 족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전북의 민요" "서릿길"(시집) "판소리 그 지고의 신체전략" "위도 띠배놀이" "한국의 희곡/연극 이론 연구" "풍물굿 연구" "상아탑에서 본 국민가수 조용필의 음악세계: 정한의 노래, 민족의 노래" "한국 신화 이야기" "한국민요의 민족음악적 연구"에서 결국 "한국 민족공연학"에 이르기까지.
향토음악, 민속에서 민족공연학으로
80년대 한국에서 열렸던 한 국제연극학 학술대회를 취재했던 나는 그 행사에서 아시아 각국의 민족음악학 위주로 발제와 토론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연극학'의 뿌리가 결국 각 나라의 전통공연예술 (마당극, 음악연주 포함)에 있으며 공연 형태나 무대의 형식과 무관하게 한바탕의 놀이와 흥을 돋구거나 특별한 의미를 담은 여러 표현양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을 흥미있게 경청한 적 있다.
그렇다면 향토 음악과 민요 채집등 지역 공연문화 연구에서 출발한 국문학자의 작업이 세계적 연구 흐름인 민족공연학을 받아들여 진행된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그는 미 콜로라도대학에 파견교수로, 옥스퍼드대 울프슨 칼리지와 동양학부 교수로 민족공연학의 새 이론을 섭렵하고 향수할 기회가 있었다. 그에 따라 이 책은 한국 공연문화의 기원, 역사, 특징등을 분석하면서 고대 제천의식에서 중세의 가무 백희, 근현대 서양 공연문화의 영향까지를 폭넓게 다룬다.
구체적으로는 대동굿, 마당굿, 풍물굿, 꼭두각시놀음, 탈놀음, 판소리등 고유의 서민문화와 궁중 가무희에서 근현대의 신파극, 신극까지가 포함된다.
공연 연구서이니 한국 공연문화에 나타난 연기론, 극장 무대이론, 음악 무용이론에서 의상과 분장, 음향 조명, 대소도구, 연출 제작이론, 청 관중이론 , 공연이론, 비평이론, 미학이론, 교육이론등도 제시하고 있다.
'호모 퍼포먼스'시대 한국공연예술
'호모 사피엔스'란 학명을 가진 인류를 두고 도구를 만들어 기능하는 인간( 호모 파베르), 유희 인간( 호모 루덴스) 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한 서구 학자들이 있었다.
김익두 교수는 인류를 신체적 인간, 공연 인간인 '호모 퍼포먼스'라고 본다. 우리는 인간의 삶이 어떤 일련의 의미 있는 행위를 이루어 나가는 공연중심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서구 연극이론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이론, 인도의 '라사', 중국의 '신사(神似)'의 미학이론과 차별화되는 한국의 고유미학의 원리로 '신명'의 미학과 '관계'의 미학을 제시한다.
이는 서구중심의 세계 인문학이 주로 인간의 영성,정신에 몰두하면서 고대 철학과 기독교 신앙의 영향으로 신체를 소홀히 하는 형이상학적 편중을 보인 반면에 동양, 특히 동아시아에서는 '신체적 인간'을 중심에 두고 사회적 신체행위와 표현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공연 형식면에서도 독창적 특성에 대한 별도의 연구 이론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이 책을 "민족공연학의 거시적인 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한 전신재 한림대 교수가 발문에서 지적한 것처럼, 이를테면 판소리를 연구할 때 문학, 음악, 연극 전공자가 각 부문별로 판소리의 특성을 규명하는 것 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대신 그런 장르구분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판소리만의 '여백의 공간'과 복잡 다양하고 시공을 넘나드는 공연구조를 연구하는 '판소리 미학'이 필요한 것이다.
"세계 인류는 한국의 '끼' 기다려"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이 책에서 저자가 추구하는 것은 민족적 특성과 전통속에서 전해진 한국의 각 공연양식들이 따로 지니고 있는 공연원리의 정립이다.
이를 위해 그는 창작 희곡에서 민족 연극학으로, 민족 공연학으로 시선을 돌리면서 한국의 공연 양식에서 "우주적 생명의 약동의흐름과 하나가 되는 원리"를 발견하려고 노력해왔다.
거창하고 추상적인 이론처럼 들리겠지만 저자는 이를 가람 이병기 선생이 술이 취하면 불렀다는 노래"하늘의 해와 달은 소망(재래식 변소)에도 비친다네"처럼 해와 달을 품은 무한한 하늘이 통째로 땅에 내려와 인간이 가장 더럽게 여기는 배설물을 받아 (거름으로) 삭히는 항아리인 '소망'을 비추는 것으로, 일종의 우주적 생태계의 순환으로 해석한 것이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 국문학자로서 고문헌과 문학에만 집중하는 대신 고대로부터 현대까지의 공연예술 전반을 이해하고 이론화하는 길을 걸어온 저자의 '뚝심'은 학계에서도 정평이 있는 듯 하다.
민족공연학을 위해 그는 문헌만 파고든 게 아니라 전국 곳곳을 다녔고 특히 풍물굿이나 민속공연이 전해지는 전설과 민담의 현장까지를 샅샅이 누볐다. 보천교 교당이 있는 정읍에선 당대 최고 풍물굿 잽이들이 칠성단 앞에서 동남풍을 기원하던 곳을 족집게처럼 파악하고 있으며 도승으로 유명한 진묵대사의 탄생지인 김제군 만경땅의 조양사 승려들과 담론을 펼칠 수 있는 연구자였다.
어쩌면 "한류가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그 지속발전의 동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해답도 민족 공연학의 심층 분석의 기저에 놓여 있을 듯 하다.
마침 가수 조용필이 가왕(歌王)으로 돌아왔고 첨단 대중가수 싸이가 말춤과 시건방춤의 '신명'하나로 세계를 휩쓸고 있다. 대중문화계보다 먼저 조용필의 존재감과 강점에 주목해 책까지 펴냈던 김익두교수는 아마도 '시대를 초월한 대중문화'인 전통공연을 집대성하여 민족공연학을 펴낸 최초의 엄숙한(?) 국문학자일 것이다.
지식산업사
김익두 지음
3만8000원
차미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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