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순의 세상톺아보기] 아부, 혹은 충성심이란 이름의 마약

지역내일 2013-04-08
고려대 초빙교수

'아부에는 장사 없다'는 속언은 인간의 본성을 관통한다. '아부의 기술'이란 책을 쓴 미국 언론인 리처드 스텐걸은 아부를 '정치인의 1차 무기'로 치부할 정도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살살 녹는 아부를 바친 것으로 알려진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아부만큼 효과가 뛰어난 최음제는 없다"는 명언을 남겼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아부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여왕을 알현할 때는 입이 마르도록 칭찬해야 한다"고 했다.

서양에도 왕의 트림을 오페라의 아리아보다 아름답다고 말한 아첨꾼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며 아부했다는 우리나라의 전설적인 일화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최근 일부 장관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첫 업무보고를 하면서 지나친 아부성 발언과 충성심을 표출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초대 산업통상부장관으로 업무보고를 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라고 서두를 장식했다. 그에 앞서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대통령님께 보건복지장관으로서 업무보고를 드리게 된 데 대해 표현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감동을 느낀다"며 과도한 수사학을 동원했다.

일부 장관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에서 보여준 '5·16 쿠데타'에 대한 답변도 노골적인 아부성 발언은 아니지만, 과잉 충성심과 일맥상통한다.

특히 "제가 역사적 관점에서 평가하고 결정 내릴 깊은 공부가 안 돼 있다"며 개그 프로그램에 나올만한 답변을 한 조윤선 여성가족부장관은 군계일학 격이다. '5·16쿠데타(군사정변)'는 역사적 평가가 나와 있고, 박 대통령도 이미 인정한 부분이다.

아부 물리친 강희제와 조지 워싱톤
중국 역사상 최고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히는 청나라 강희제는 그런 점에서도 돋보이는 군주다. 강희제는 1687년 6월, 명망 높은 노학자들을 태자의 스승으로 임명한 뒤 살뜰하게 보살피고 가르쳐 달라는 어지(御旨)를 내렸다.

이 자리에서 탕빈(湯斌)이 황제의 말에 맞장구를 쳤다. "황상처럼 교육을 좋아하고 으뜸으로 여기신 황제가 고금에 없었고, 요순(堯舜) 또한 이에 미치지 못할 것이옵니다."

그러자 강희제는 탕빈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짐은 성실을 귀하게 여겨왔거늘, 그대의 언사는 아첨에 가깝도다. 지금은 요순의 치세가 아니고, 짐 또한 요순과 같은 군주가 아닌데 내가 요순을 한참 능가한다고 말하는 것은 그대의 진정한 마음인가? 사람의 언행은 반드시 표리가 일치해야 하거늘, 안팎이 다르면 사람이라 할 수 없다."

강희제는 자신에게 '주역'을 가르치던 이광지(李光地)가 '높이 올라간 용은 뉘우칠 일이 있을 것(亢龍有悔)'이라는 구절을 빼놓고 강설하자 주의를 준 일도 있었다.

"주역을 읽는 이유는 경고의 소리를 듣기 위함이다. 앞으론 어떤 금기도 두지 말고 강의하도록 하라."

이광지가 이 대목을 뺀 것은 황제에 대한 불경죄로 비칠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강희제는 인재를 발탁할 때도 재능보다 덕성과 인품을 우선순위에 둔 것으로 유명하다.

조지 워싱턴 초대 미국 대통령도 '폐하'라고 부르기를 희망한 상원의원들의 아부를 물리쳤다. 그는 친근하고 공화국에 걸맞은 '미스터 프레지던트'라는 호칭을 선택하고 민주주의를 정착시켰다.

박 대통령이 적어도 공개적으로 아부성 발언을 일삼은 고위직 인사에게는 완곡하게라도 주의를 환기시켰으면 좋았을 듯하다. 그렇잖아도 박 대통령의 인사기준 가운데 하나가 충성도라는 점이 과도하게 부각돼 있는 터이다.

박 대통령이 주의 환기시켰으면
여론조사에서도 '충성심만 고려하다 도덕적 흠결을 간과했다'고 지적하는 국민이 많다는 점은 가슴에 새겨야 할 대목이다.

아버지가 불행한 최후를 마친 뒤 은덕을 입었던 고관들이 면종복배(面從腹背)하는 모습을 지켜본 '트라우마' 탓이라는 동정적 분석도 있지만, 본의든 아니든 개인적 충성도가 각인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고위공직자의 아부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는 그게 마약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는 건강하게 자라나야 할 세대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앞장서서 그런 분위기를 교정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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