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회의장 벽에 서문이 걸린 흠흠신서는 어떤 책일까. 이 책은 다산이 지방관들을 위해 중국과 조선의 법전들과 재판 때 쓰던 조서 등을 모으고 정리한 뒤 자신의 의견을 덧붙여 만든 일종의 형법 연구서이다. 흠흠신서라는 이름은 인명에 관한 일은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처리하라는 뜻에서 지었다.
다산은 서문에 "오직 하늘만이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니 사람의 생명은 하늘에 매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목민관이 또 그 중간에서 선량한 사람은 편안히 살게 해주고 죄지은 사람은 죽이는 것이니 이는 하늘이 권한을 드러내 보이는 것일 뿐이다"며 "사람의 생명에 관한 옥사는 군현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이고 목민관이 항상 마주치는 일인데도 실상을 조사하는 것이 언제나 엉성하고 죄를 결정하는 것이 언제나 잘못된다"고 썼다. 여기서 우리는 다산의 인도주의 정신을 만날 수 있다. 약 200년 전 다산은 서문에서 자신이 꿈꾸는 인도주의를 바탕으로 한 정의를 잘 소개하고 있다.
다산은 또 책에서 "촌백성들이 원통함을 호소하려고 해도, 그 일이 권세 있는 아전이나 간악한 향리와 관련되어 있을 경우에 노여움을 살까 봐 겁이 나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백성들이 모호하게 말하는 바람에 한결같이 앞뒤가 맞지 않게 들리니, 이것이 바로 백성들이 억울한 일이 있어도 입을 다물게 되는 첫 번째 이유"라며 백성들이 소송을 통해 억울함을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다산이 보기에 스스로 억울함을 말하지 못하는 백성들은 어디가 아픈지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병든 아이와 같았다. 그렇기 때문에 관리들은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마음으로 백성들의 호소를 들어주어야 한다고 밝혔다.
이런 내용들에서 저자는 다산의 마음이 세종대왕과 겹쳐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 세종대왕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자기 뜻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백성들의 고통을 훈민정음 창제를 통해 해결했다. 그리고 약 400년 뒤 다산은 소송을 통해서도 제대로 억울함을 해소하지 못한 백성들을 위해 형법서 '흠흠신서'를 남겼다는 것이다.
저자는 '정약용, 조선의 정의를 말하다'를 통해 선각자 다산의 흠흠신서를 들여다보며 그가 꿈꾼 정의로운 나라의 모형과 그가 꿈꾼 정의에 대해 다양한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조선 후기에는 정치적 혼란으로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고 계급 간의 갈등도 최고조에 이르렀다. 다산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이뤄 나가려면 중앙 관료들은 물론이고 지방의 공무를 담당한 자들까지 솔선해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문/
김 호 지음/
2만원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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