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 가산동에 '노동자생활체험관'
"노동의 가치와 의미 되새기는 공간"
"교복 입고 다니는 여자 애들 보면 너무 부럽다. 맘껏 공부하고 책 읽고 낮에 학교 다니고 밤에 잠자고. 그럼 소원이 없겠다." "나는 지금이라도 잠 좀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
가난한 아버지를 위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동생을 위해, 대학 입학을 앞둔 오빠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미싱'을 돌리던 '순이'와 '순덕이'. 1970·8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징인 구로공단을 이끌어갔던 '여공'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서울 금천구가 가산동 디지털단지 인근에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을 열고 산업화 민주화 노동역사의 의미와 가치 되새김에 나섰다.
체험관은 259.6㎡ 대지에 자리잡은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체험관은 크게 4개 공간으로 구성돼있다. 지하 1층에는 당시 소녀들이 살았던 2평 남짓한 쪽방들이 줄지어있다. 연탄 화덕과 야트막한 선반, 그릇 몇가지가 전부인 비좁은 부엌 너머가 방이다. 입구에는 구두며 장화 등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돼있다. 성인 2명이 누우면 꽉 찰 듯한 방에는 사계절 옷이 한데 섞인 간이 옷장과 함께 '상용3000 한자'니 '국어 완전정복' 등 교과서부터 '서양요리'같은 취미용 책자가 놓인 선반 겸 책꽂이가 눈에 띈다.
1층은 노동자들의 성장 이야기를 풀어놓은 기획전시관이다. 옷 상표를 제대로 붙이지 못해 영어공부를 시작한 '순이'의 모습을 엿볼 수 있고 '희망의 방'은 힘겨운 하루를 보낸 소녀들이 야학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숙제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공동세면장에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세수를 하는 '순이들'을 실물 크기 조각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순이네가 공장에서 일을 하며, 방에서 잠들기 직전에, 휴일에도 쪽방을 지키며 나누는 얘기를 '소리통'에 담아놓은 '비밀의 방'도 1층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2층 영상전시실은 당시 근로환경 생활모습 노동운동 등 여러 영상자료를 제공하는 공간. '근로청소년 생활의 질 높인다' '구로아리랑 개봉 전부터 구설수' 등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당시 신문기사도 비슷한 내용이다. 1970·80년대에 발간된 신문을 뒤져 체험관에 적합한 기사를 골랐다는 게 금천구 설명이다. 건물에 딸린 야외 공간에 자리잡은 '가리집봉상회'에는 당시 구멍가게에서 팔았을 법한 상품들을 전시해놓았다.
체험관은 구로공단 역사 기념사업의 출발점이다. 금천구는 1965년 공업단지 조성 후 한국 산업화와 노동민주화 중심지였던 구로공단 역사와 기록을 보존·전승해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긴다는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1990년대 말, 2006년 유사한 시도가 있었는데 모두 진척이 없었다"며 "2011년 녹색산업도시추진협회에서 구로공단역사기념사업을 제안,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이후 구로구와 산업단지공단도 동참했다.
금천구는 각 공간에서 상설전시와 함께 당시 공장 노동자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를 연 1회 실시하는 한편 1960·70년대 설날 여행 크리스마스 등 풍경을 담은 월별 전시도 계획 중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놀이처럼 노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체험교육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물걸레질 빨래 연탄갈기 등 당시 여공들 생활체험이나 당시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한 생활상 배우기 등이다. 구로공단에서 일하며 쪽방에서 살았던 여성노동자를 강사로 초빙할 계획도 있다.
무엇보다 구로공단 역사를 현재 산업단지 노동자나 주민들과 공유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곽형모 관장은 "1만개 이상 업체가 입주해있지만 30% 이상이 '1인 기업'인 현재 디지털단지에도 구로공단은 그대로 살아있다"며 "현재 노동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강좌나 문화공연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고통스럽고 지우고싶고 잊고싶은 흔적일 수 있지만 소위 '공순이' '공돌이'가 이룩한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후대에 가르쳐야 한다"며 "주민들과 함께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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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가치와 의미 되새기는 공간"
"교복 입고 다니는 여자 애들 보면 너무 부럽다. 맘껏 공부하고 책 읽고 낮에 학교 다니고 밤에 잠자고. 그럼 소원이 없겠다." "나는 지금이라도 잠 좀 잤으면 소원이 없겠다."
가난한 아버지를 위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동생을 위해, 대학 입학을 앞둔 오빠를 위해 새벽부터 밤까지 '미싱'을 돌리던 '순이'와 '순덕이'. 1970·80년대 산업화와 민주화의 상징인 구로공단을 이끌어갔던 '여공'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됐다. 서울 금천구가 가산동 디지털단지 인근에 '구로공단 노동자생활체험관'을 열고 산업화 민주화 노동역사의 의미와 가치 되새김에 나섰다.
체험관은 259.6㎡ 대지에 자리잡은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체험관은 크게 4개 공간으로 구성돼있다. 지하 1층에는 당시 소녀들이 살았던 2평 남짓한 쪽방들이 줄지어있다. 연탄 화덕과 야트막한 선반, 그릇 몇가지가 전부인 비좁은 부엌 너머가 방이다. 입구에는 구두며 장화 등 신발이 가지런히 정리돼있다. 성인 2명이 누우면 꽉 찰 듯한 방에는 사계절 옷이 한데 섞인 간이 옷장과 함께 '상용3000 한자'니 '국어 완전정복' 등 교과서부터 '서양요리'같은 취미용 책자가 놓인 선반 겸 책꽂이가 눈에 띈다.
1층은 노동자들의 성장 이야기를 풀어놓은 기획전시관이다. 옷 상표를 제대로 붙이지 못해 영어공부를 시작한 '순이'의 모습을 엿볼 수 있고 '희망의 방'은 힘겨운 하루를 보낸 소녀들이 야학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고 숙제하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공동세면장에는 수도꼭지에서 물을 받아 세수를 하는 '순이들'을 실물 크기 조각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순이네가 공장에서 일을 하며, 방에서 잠들기 직전에, 휴일에도 쪽방을 지키며 나누는 얘기를 '소리통'에 담아놓은 '비밀의 방'도 1층 안쪽에 자리잡고 있다.
2층 영상전시실은 당시 근로환경 생활모습 노동운동 등 여러 영상자료를 제공하는 공간. '근로청소년 생활의 질 높인다' '구로아리랑 개봉 전부터 구설수' 등 벽면 한쪽을 가득 채운 당시 신문기사도 비슷한 내용이다. 1970·80년대에 발간된 신문을 뒤져 체험관에 적합한 기사를 골랐다는 게 금천구 설명이다. 건물에 딸린 야외 공간에 자리잡은 '가리집봉상회'에는 당시 구멍가게에서 팔았을 법한 상품들을 전시해놓았다.
체험관은 구로공단 역사 기념사업의 출발점이다. 금천구는 1965년 공업단지 조성 후 한국 산업화와 노동민주화 중심지였던 구로공단 역사와 기록을 보존·전승해 노동의 의미와 가치를 되새긴다는 계획이다. 구 관계자는 "1990년대 말, 2006년 유사한 시도가 있었는데 모두 진척이 없었다"며 "2011년 녹색산업도시추진협회에서 구로공단역사기념사업을 제안, 추진해왔다"고 설명했다. 이후 구로구와 산업단지공단도 동참했다.
금천구는 각 공간에서 상설전시와 함께 당시 공장 노동자를 주제로 한 기획전시를 연 1회 실시하는 한편 1960·70년대 설날 여행 크리스마스 등 풍경을 담은 월별 전시도 계획 중이다. 특히 청소년들이 놀이처럼 노동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체험교육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물걸레질 빨래 연탄갈기 등 당시 여공들 생활체험이나 당시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한 생활상 배우기 등이다. 구로공단에서 일하며 쪽방에서 살았던 여성노동자를 강사로 초빙할 계획도 있다.
무엇보다 구로공단 역사를 현재 산업단지 노동자나 주민들과 공유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곽형모 관장은 "1만개 이상 업체가 입주해있지만 30% 이상이 '1인 기업'인 현재 디지털단지에도 구로공단은 그대로 살아있다"며 "현재 노동자들이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는 강좌나 문화공연 등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고통스럽고 지우고싶고 잊고싶은 흔적일 수 있지만 소위 '공순이' '공돌이'가 이룩한 역사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후대에 가르쳐야 한다"며 "주민들과 함께 '자랑스러운 역사'로 만들어가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진명 기자 jm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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