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총각 어부가 혼자 사는 집'
섬 동네 집 대문에 붙어 있는 문패의 문구다. 그 집만 아니라 동네 집집마다 집 주인의 직업이나 특성을 나무판에 양각으로 조각해서 대문에 달았다.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문패를 보고 누구나 호기심과 함께 웃음을 자아낼 수밖에 없다.
통영 앞바다 미륵도 끄트머리 해상에 올망졸망 떠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도서 사이에 모양이 특이한 섬이 있다. 해발 122미터 정상부를 꼭짓점으로 해서 이등변삼각형을 빼닮았다. 둘레가 4.5㎞밖에 안 되는 조그만 섬인데 주변 섬과 달리 바다에 우뚝 솟아 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 선박이 나타나면 이 섬 정상에 있는 봉수대에서는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런 연유로 이 섬은 연대도(煙臺島)라는 이름을 얻었다.
연대도에는 40여 가구에 주민 80여명이 산다. 한때 초등학교까지 있었던 섬이지만, 산업화와 도시화로 젊은이들이 뭍으로 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섬은 노인촌이 되고 말았다. 산비탈 밭에 농사를 짓거나 어업에 종사한다. 40대 주민은 몇 사람 안 된다. 초등학교도 오래 전에 폐교되었다.
지금 이 섬이 경남 일대에서는 꽤나 유명한 곳이 됐다. 전국 곳곳에서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통영시와 시민단체가 힘을 합쳐 이 섬에 '에코아일랜드'란 이름을 붙이고 독특한 친환경 스토리를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배가 섬에 접근하면 눈에 띄는 것이 산비탈에 설치된 태양광 패널이다. 그리고 부둣가에 내리면 컨테이너 모양의 '재활용센터'와 '연대도 마을 기업 할매공방'이 서 있다. 이어 '비지터센터', '연대도 ECO-ISLAND'란 간판이 붙은 느릅나무가 눈에 들어온다. 바닷가에 놓여있는 목책을 따라가면 폐교된 초등학교를 개조해서 만든 '에코아일랜드체험센터'가 있다. 태양광 패널로 전기를 생산하고, 햇볕을 모아 불고기를 굽는 커다란 오목렌즈가 눈길을 끈다.
연대도는 방방곳곳에 생겨나는 흔한 생태 마을과는 다른 게 있다. 바로 '패시브 하우스'(Passive House)라는 건축물이다.
저에너지 소비건물 '패시브하우스'
에너지 효율과 생태 발자국을 최소화하도록 설계한 저에너지 소비 건물이다. 화석 에너지를 쓰지 않고 풍력 태양광 등 재생 에너지로 조명기구, 가전제품, 주방을 돌아가게 하고, 난방은 태양빛, 체온, 지열, 가전제품에서 나오는 열을 이용한다.
패시브하우스를 짓는 데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뛰어난 단열효과를 가진 건축자재와 창과 문의 설계다. 실내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이산화탄소 양이 높아지지 않도록 유리창과 통풍시스템에 혁신적인 구조를 도입해야 한다.
패시브하우스는 1988년 보 아담스(스웨덴)와 볼프강 파이스트(독일) 두 교수에 의해 개발됐고, 1990년 독일에 첫 주택이 세워졌다. 난방 에너지 소비를 90% 줄임으로써 상용화의 가능성을 열었다. 2010년 8월 통계에 의하면 독일과 북유럽에 2만5000채의 패시브하우스가 건설되었고 한국에선 요즘 건축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독일의 경우 패시브하우스의 건축비는 일반 건축에 비해 14% 더 들어가는 것으로 나왔다.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냉난비가 절감된다는 의미에서, 사회적으로는 이산화탄소배출이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대중적은 아니다.
섬은 일반적으로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다. 연대도는 노인들만 사니 더더욱 그렇다. 그런데 연대도에는 패시브하우스가 여러 채 있다. 비지터센터, 에코아일랜드체험센터, 경로당, 마을회관이 모두 패시브하우스다. 건물 벽면에는 'Passive House'란 글자와 함께 디지털패널이 부착되어 있어 전력생산과 소비에 대한 데이터를 시시각각 알려준다. 그런데 어째서 노인들만 사는 이 섬이 경남에서도 손꼽히는 생태 마을의 표상이 된 것일까.
아이디어와 집념, 시간이 만든 기적
가냘픈 몸매의 한 여자가 보수적인 섬마을을 바꿔놓았다. '통영의제21'의 사무국장을 맡은 윤미숙씨는 지난 7년 동안 이 섬을 드나들며 주민과 소통하고 봉사하면서 오늘의 에코아일랜드 토대를 쌓았다. 그는 섬 노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패시브하우스를 짓게 했고, 할매공방 같은 마을기업을 만들게 했으며, 폐교를 생태체험센터로 전환시켜 관광객이 찾아오게 했다.
지금은 윤씨가 이 섬에 상륙하면 노인들이 반가이 맞아준다. 그러나 7년 전 그가 섬을 드나들 때는 "우린 그대로 살 터이니 찾아오지 말라"고 수없이 눈총을 주었다고 한다. 초기에 소통이 안 됐기 때문이다.
생태 마을을 비롯해서 여러 유형의 마을 가꾸기가 전국적으로 유행하고 있으나 주민과의 소통에 실패하고 전시성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 집념, 시간이 합쳐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연대도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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