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두고 시집「나는 니 추억의 표지로 남고싶다」 서평

지역내일 2002-03-20
그의 첫 시집 「나는 니 추억의 표지로 남고 싶다」(한국문연) 출판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는 안동의 오랜 동인지 ‘글밭’의 회원으로 활동한 지 십 년을 넘긴 중견 시인이다. 지금은 과거 그 어느 때보다 시인이 많고 시집도 많이 나온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시인이 많아 시로써 망한 나라가 역사에 아직 없었으니 이러한 현상들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그 많은 시집들 중에 정말 좋은 시집들이 드무니 그것이 걱정될 뿐이다. 그는 시력이 오래 되었으나 이제야 첫 시집을 냈다. 그런데도 그의 시집에는 버릴 만한 시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고 좋은 시들로 가득하니 더더욱 기쁜 일이다.

투박하고 굵은 목소리에 서정성 돋보여
시를 보여주는 시, 노래하는 시, 말하는 시로 나눈다면, 임두고의 시에는 말하는 시가 단연 많다. 따라서 모호하거나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기보다는 주제 의식이 뚜렷이 나타나고 대체로 전달이 잘 되고 있다.
그리고 어조는 매우 남성적이고 투박하고 굵은 목소리로 나타나고, 때로는 매우 높은 목소리로 부르짖을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서정적인 표현으로 누그러뜨리고 있어 대체로 큰 흠은 보이지 않고 있다.

1부에서는 주로 사랑이나 고독, 그리움에 대한 정서, 즉 인간 존재의 원초적인 문제 를 노래하고 있다.
잎잎이 펴고 접히는 세월이야/어쩔 수 없더라도/나날이 마음 같잖은 꿈은/또 어쩔 수 없 다 해도/변함없이 설레는 바람이듯 물결이듯/손끝조차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걸.// (''꽃''의 일부) 같은 감동적인 구절들이 돋보인다. 그리고 ‘박태기나무 꽃’도 좋다.
2부에서는 주로 고향에 대한 이야기, 토속적인 정서, 돌아갈 수 없는 유년에 대한 상 실감과 특히 가족과 이웃,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다. 다음과 같은 ‘아버지’의 첫 구절은 상당히 인상적이다..
푸르름이 그득한 계절일수록 살아 있음이 절실해지고/살아 있음이 절실할수록 당 신이 그립습니다.//
고향은 우리 모두에게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시대의 변화를 따라 이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잃어버린 정경들은 더욱 우리들을 그리움의 정서로 달뜨게 한다.
콩나물이 소복이 자라던 방/아랫목 이불 밑에 묻혀/한 겨우내 나를 따뜻이 기다리던 밥그릇//(빈집 부분)에서 볼 수 있듯이 시인의 고향에도 아직 집들은 많이 있지만, 그 집들은 그러나 시인에게는 빈집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한 고향에 대한 그의 시선들은 ‘신시장’과 같은 시에서 볼 수 있듯이, 도시에 살면서도 푸근하고 꾸밈없는 서민들 쪽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3부에서는 주로 자연에서 느끼는 정서를 통해 존재의 의미와 삶의 자세를 탐색하는 시편들이 많다. ‘높은 산일수록/단풍은/타오르는 것이 아니라/저렇게 쏟아져 내리는 것을…/내 삶도 이제/가을산.’(단풍 부분)이 그러하다. 그리고 ‘눈이 내려’ 같은 시편도 참 좋은 작품에 속한다. 그리고 매우 깊고, 신선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힘찬 남성적인 어조로 노래한 시 ‘강’의 한 연을 보자.
아직도 꿈틀대는 시원의 길/ 그 깊은 수심 속의 /산천어처럼 싱싱한 생명력을 낚아채라/ 푸른 정맥이 지나는 / 내 온몸의 생명력이야말로 / 길의 모태인 것을 / 마치 푸른 산맥이 강의 태반이듯...(2연)
제 4부는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절망하는 소시민의 삶 속에서 자신을 추스리는 모습과, 자본주의적 모순과 도시 문명으로 인해 척박해진 현대를 살아가는 왜소한 인간의 모습을 문명 비평적 관점에서 그리는 시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머릿속에 오래 남을 시 한편
이 시집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잘 읽히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머릿속에 오래 남을 시 한 편을 뽑으라면, ‘나는 니 추억의 표지로 남고 싶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추억에도 페이지가 있다면/나는 니 추억의 첫 페이지거나/마지막 페이지이기보다는/니 추억의 표지로 남고 싶다.//나를 넘기지 않고는 /그 어떤 추억도 펼쳐볼 수 없는/나를 넘기지 않고는/그 어떤 추억도 덮을 수 없는// 니 손길에/때가 묻고 닳아 헤지는/그런, 추억의 겉 표지 같은(전문)
이 시는 아주 쉬우면서도 상당히 참신한 발상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또 짧아서 머리 속에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는 좋은 시다.
우리는 지방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눈과 관심은 늘 서울로 향한다. 나는 감히 시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다. 이 봄에는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에 살고 있는 이 시인의 시집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마 별로 후회하지 않으리라고 본다.

김지섭 시인·안동민족문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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