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 무장간첩에서 기무사요원, 북한학박사로…

지역내일 2013-07-12 (수정 2013-07-12 오후 1:52:43)

#1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망외의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북한의 남파특수공작부대인 5446부대 출신 조장 원류환(김수현 분), 공작부대 창설자인 리무혁 대장의 서출 리해랑, 사상 최연소 남파간첩 리해진 등 세 사람이 주역. 각각 달동네 바보, 가수지망생, 고등학생 등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임무를 기다리는 이들의 행각과 말로가 주된 내용인 분단영화임에도 한 달 만에 관객 700만 명을 동원했다.

#2 1997년 4월.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는 망명 당시 서신을 통해 "남한 내에 고장간첩 5만 명이 암약하고 있으며 특히 권력 핵심부에도 침투해 있다. 우연히 김정일의 집무실 책상 위에 놓인 서류를 보았더니 여권 핵심기관의 회의 내용과 참석자들의 발언내용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었다"고 밝혔다.

#3 이수근 북한 중앙통신사 부사장이 1967년 3월 22일 오후 5시25분 판문점에서 남한으로 귀순했다. 이후 대학교수와 결혼까지 하고 남한 생활에 적응했던 그는, 69년 1월 27일 위조여권을 소지하고 베트남으로 탈출했다가 사이공공항에서 검거돼 서울로 압송됐다. 69년 5월 10일 국가보안법 위반 등 위장간첩행위죄로 기소돼 사형이 확정됐고, 69년 7월 3일 서울구치소(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됐다. 2008년 12월 19일 대법원은 이수근이 위장간첩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아무도 나를 신고하지 않았다분단국가라는 숙명 때문에, 우리는 남과 북 모두가 간첩, 또는 공작원을 두어야 한다. 슬픈 일이다. 남한에서 암약하는 간첩이 수만 명이란다. 거리에서 어깨를 스치거나, 편의점에서 만난 점원, 버스 막차 맨 뒷좌석에 앉은 승객이 공작원일 수 있다. 책은 15년간 북한 조선노동당 대외연락부 대남공작원이었던 저자 김동식이 공작원으로 선발되고 암약한 이야기를 풀어놓은 것이다.

"나는 북한에서 대남공작원으로 활동한 15년 동안 한순간도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아본 적이 없다. 그 15년은 목숨을 내놓고 살아온 사자(死者)의 삶이었고 칠성판을 등에 지고 살아온 산송장과 같은 죽음의 세월이었다."

그는 19살에 대남공작원 생활을 통해 자유와 민주주의의 가치, 평범한 인간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리고자 한다. 또 북한에서 한 인간의 삶과 자유가 얼마나 무참하게 짓밟힐 수 있는지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대남공작원으로 선발되던 벅찬 감격부터 그날부터 첫 한국 침투의 생경한 날선 기억, 체포되던 긴박한 순간에 이르기까지.

평범한 인간의 삶은 얼마나 소중한가 = 저자가 풀어놓는 이야기들은 생경하기도 하지만 긴장감을 높여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장면들이 쉼 없이 이어진다. 두 번째 한국 침투 당시 체포되던 그날의 긴박한 장면으로 시작하는 책은 다시 십수 년의 세월을 돌아가 고등중학교 시절 우연히 간부의 눈에 띄어 공작원으로 선발되던 장면으로 본격적인 서막을 올린다. 이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에서 다양한 훈련을 받으면서 한겨울 대동강 도하, 천리 강행군과 같은 치열한 세월 속에 공작원으로 거듭난다.

이 과정에 '적구화 교육' 즉 '한국화 교육'을 받게 되는데 같은 말을 쓰면서도 억양과 표현만 '약간' 다른 말을 '새롭게' 배우는 일은 1년간의 교육기간이 말해주듯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가능하다고. 그는 다른 공작원의 경험을 빌려 고향 사투리 때문에 경상도 말을 배우는 데만 2년을 할애하는 고충을 겪는다고 털어놓는다.

첫 한국 침투 당시 국내에서 암약하던 이선실을 대동 복귀한 것과 더불어 공작 임무 수행에 대한 공적으로 약관 20대에 공화국영웅 칭호를 받는다. 수년 후 두 번째로 한국에 침투하면서 공작조장을 맡아 국내 유명 인사들을 포섭하기 위해 접선하지만 실패하고 전향한 공작원의 제보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다 다리에 총을 맞고 결국 체포된다.

지금은 저자의 말처럼 자신의 인생을 '덤으로 산다'고 생각하고 하루하루 충실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15년 대남공작원의 삶을 담은 한 권의 책이 전하는 생생한 이야기들은 현재 우리가 북한을 이해하고 대비하는 귀중한 자료가 되어줄 것이다.

저자는 남한 주민들이 반공의식은 있지만 예전처럼 고발의식은 미흡한 것 같다고 진단한다. 서울 영등포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I씨는 김동식에게 가장 호의적이었지만 "북한과 협력해 투쟁하자"는 제의는 완강히 거부했다. 전대협동우회를 통해 만난 L씨는 그를 기관원이라고 몰아세우는 바람에 포섭은커녕 대화 자체를 포기해야 했다. 민족회의 사무실을 찾아가 접촉한 U씨를 비롯해 북한에서 선정한 운동권 인물 10명 중 일곱 명을 만났지만 한 명도 포섭하지 못했단다. 그런데 신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데.

"간첩인 나를 신고한 사람 아무도 없어" = 남한 사람들의 안보의식 해이 때문인가, 아니면 간첩이라고 해도 이젠 별 볼 일 없기 때문인가? 실제 예전 간첩의 주업무였던 주요시설 탐지는 평양에 앉아서도 구글 어스나 네이버 지도로 상세히 검색할 수 있으니, 공작원 임무에서 폐기됐을 터이고, 공개 장소에서 어설픈 간첩질이라도 시도하다간 스마트폰에 찍혀 체포되기 십상이다. 60년대도 아니고 물가는 또 얼마나 비싼가! 요즘은 간첩들이 '돈질'하기 힘든 판국이다.

아무튼 이러저런 이유로 저자는 "대남 공작 지도부가 정세 분석과 판단에서 오류를 범했고 과거의 전술을 답습해 공작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1995년 스님으로 위장 활동해온 '봉화 1호'와 접선하러 갔다 총상을 입고 경찰에 검거됐다.

저자는 1962년 황해남도 용연 출생으로 81~85년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일명 130연락소)을 다녔고, 대학 입학 후 15년 동안 북한 노동당 대외연락부 대남공작원으로 활동했다. 95년 9월 제주도 온평리 해안을 통해 2차 침투에 성공, 공작임무를 수행하다 경찰과의 총격전 끝에 다리에 관통상을 입고 10월 체포됐다. 그 후 전향해 국군기무사령부 분석관(99년 4월~2006년 12월)을 지냈고, 2008년 10월부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1월 북한대학원대학교에서 북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한국에 오고서야(전향을 하고서야) 자유로운 삶, 평범한 삶을 살게 됐다"고 했다.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기파랑 김동식 지음
1만6000원

윤재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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