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까치밥과 아름다운 차점(임재경 2002.03.29)

지역내일 2002-04-02
까치밥과 아름다운 차점
임재경 언론인


요즈음 가는 곳마다 화제는 단연 노무현이다.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를 뽑기 위한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선거인단의 반응과 그것이 미친 차기 대통령 감들 사이의 인기 변화는 가히 돌풍에 비할 만 하다. ‘예선 이인제, 본선 이회창’이라는 것이 지난 1~2년간의 이른바 ‘대세론’이였는데 3월 중반 이후의 여론조사들에서는 그 ‘대세론’이 보기 좋게 무너졌다. ‘노무현 돌풍 현상’에 대한 분석 역시 거품론에서 음모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일고 있지만 나의 느낌으로는 모두 헛짚고 있다. 왜냐면 매스컴을 타는 여론분석가들은 열이면 아홉, 대세론자들이고 그들의 공통점은 국민을 내려다보는 습성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기성체제에 대한 해묵은 염증 일시 폭발
여론 조사들에 나타난 노무현 지지의 급상승은 기성 체제(establishment)에 대한 광범위한 거부감과 해묵은 염증이 일시에 폭발한 것이다. 기성체제는 정치는 물론이고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를 망라하는 것으로서 지연 학벌 문벌 패거리 중심으로 작동하는 것이었는데, 국민경선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거치면서 한쪽 모서리에서 파열음이 울린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은 지난 30여 년간 기성 정치체제의 도전세력으로 알게 모르게 식자들의 기대를 모아오던 운동권 주류의 ‘대안 기성체제’(counter-establishment)가 노무현 현상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한 점이다. 두 번째 주목할 사실은 거대 언론매체와 정면으로 부딪치면 끝장이라는 정치계의 금기를 노무현이 깨버린 것이다. 현직 대통령들은 물론이고 유력한 대통령 후보들이 거대 매체의 눈치를 살피느라 허둥대는 목불인견이 연출되었던 것은 우리가 익히 본 대로다.
세 번째는 초대 대통령 이승만 이래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들은 예외 없이 미국 조야에 줄을 대는 사대(事大)의 성의를 다하였고 최근에 와서는 일본과 중국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는데 노무현은 적어도 그런 행태와는 무연한 존재다. 이 점이 본선진출 시 그의 앞길에 순탄치 않은 장애로 작용할는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우리 국민의 자주적 신념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현실과 관련하여 확실히 괄목할 변화이다.
대통령으로서의 자질을 시험 답안지 작성하듯이 일목요연하게 들어 내보일 수는 없으나 기성체제의 기준으로 한다면 노무현은 미지의 부분이 많은 정치인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당선이 확실시되는 출신지역의 선거 기반을 버리고 지역감정 극복에 스스로 나선 결단, 명분 없는 ‘3당 합당’에 반대하여 세력 보스와 결별한 용기 같은 것은 정치 지도자로서 성장할 결정적 중요 덕목이다.
특히 그가 대전지역의 경선에서 경쟁자의 지역 몰표를 눈앞에 두고 “나에게도 까지밥을 조금 남겨 달라”고 한 것은 그에 대한 국민의 신뢰감을 두텁게 한 뛰어난 유머 감각이다. 살벌하기 그지없는 대통령 후보자 경선에서 유머 순발력을 낼 수 있다는 것은 각박한 듯한 그의 언행 뒷켠에 세상이 미처 몰랐던 여유가 깃들여 있음을 말해준다.
7명의 후보자로 출발한 민주당의 국민 경선에서 중반을 넘기지 못하고 4명이 탈락한 것이 음모설의 시비거리가 된 것이야말로 기성 체제의 가장 타기할 정치 노름의 한 단면이다. 7명의 후보자 전부가 정책과 비전이 있어서 나왔던 것이 아님은 누가 보아도 능히 짐작할 일이었다.

국민 저변의 저항의지 올바로 읽어야
하지만 “아름다운 꼴찌로 남겠다”는 말로 일찌감치 경선을 포기한 김근태가 훗날을 기약한 것처럼 아름다운 차점자로 마지막 순간까지 선전 분투하는 후보자에게 언젠가 국민의 후한 평가의 보상이 따를 것이다. 민주당의 국민 경선에서 조성된 노무현 돌풍으로 말미암아 정작 혼선에 빠진 것은 사이비 대세론의 본고장인 한나라당이다. 그런데도 인기 상승 돌풍을 일으킨 민주당 내부의 이상스런 이념 대결은 지긋지긋한 색깔론의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벌어지고 있다. 정책 대결이 사상 대결로, 그것이 다시 국시론으로 변모한다면 우리는 6월 항쟁 이전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
변화무쌍한 것이 여론이긴 하지만 기성체제가 불신의 대상이 된 것은 하루 이틀, 혹은 한 두 해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 노무현 현상은 기성체제의 가장 근저에 있는 견고한 기성 이익, 편견, 차별에 대한 국민 저변의 항의이자 미래에 대한 희망의 분출이다. 여야를 아울러 기성 정치체제가 일대 자기 성찰을 행할 시점에 와 있다.


임재경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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