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게 즐거움 주는 정치
최윤선 영산대학교 교수 국제학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세간의 화제다. 시작한 지 만 4주가 되어가는 요즘도 사람들은 주말마다 경선장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다.
정치계란 원래 화제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 가운데 일부는 오랜 동안 국민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이 점에서 민주당 경선은 여느 정치적 사건과 별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민주당 경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상당히 따뜻하고 흐뭇하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에게 정치는 무엇이었는가?
정치는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싸움판이었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난장판이었다.
정치계는 겉으로 국민을 내걸지만 실제로는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혐오스러운 장(場)이었다. 오죽했으면 한때 “먹고 사는 것은 국민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제발 정치가 방해나 하지 말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정치인들이란 입장도 원칙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존재들이었다. 당이 시키는 대로 손을 들고 시정잡배 마냥 몸싸움에 욕설을 해대기 일쑤였으며, 그러다가도 더 큰 유혹이 있으면 미련 없이 정당을 바꾸곤 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믿지 못할 사람이 정치인이었다.
국민에 잘 보이기전 보스에 충성한 정치
한국의 정당이란 이념적 공동체라기보다 지역색을 핵심 메커니즘으로 하여 1인의 보스가 지배하는 위계적 구조였다. 의원들은 유권자에 잘 보이기 이전에 보스에 잘 보여야 정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에 국민을 뒤로 밀쳐놓고 보스에 충성 경쟁을 벌여야 했다.
이것이 우리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정치의 모습이었다. 이러다 보니 정치적 사건들이란 것도 말로는 무엇이라고 하건 결국 제 밥그릇 키우기 위한 추악한 속셈에서 비롯된 꼴보기 싫은 ‘까마귀들의 싸움판’으로 비쳤다.
‘정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몫을 챙기기 위한 다툼의 장일 뿐이었다. 이런 판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후보를 고르기란 너무나 어려웠다. 국민들은 결국 좋아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보기 싫은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표하곤 했다.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진영은 “이인제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는 구호까지 내걸지 않았던가.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이러하니 누가 선거에 자원봉사를 하고 싶겠는가. 말이 자원봉사지, 후보가 마음에 들어서 제 돈 내며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후보로부터 돈 받거나 아니면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야 움직였다. 후보들을 지지하는 조직이란 것도 대부분 잘 되면 보상이 따를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데 참으로 오랜만에 국민들이 마음속에 희망을, 입가에 미소를 담고 정치판을 지켜보고 있다. 으레 그러려니 하던 짜증스러운 예상을 깨뜨리는 결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자발적으로 헌신 봉사하는 선거운동원들도 나타났다. 그 속에서 이제 더 꼴 보기 싫은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한 소극적인 선택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아 적극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민주당 경선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유이다.
민주당 경선은 결과를 떠나 이미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다만 이념논쟁, 상호비방, 인신공격 등 구태가 보이지만 국민을 위한 정책대결로 방향을 잡는다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여기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국민의 의견이 방영된 후보 선출 방식, 지역주의 타파의 가능성, 구태를 극복할 새로운 정치 행태의 등장 등등. 그러나 이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는 이제 정치가 더 이상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움과 희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정치인 모두가 국민에게 즐거움 느끼게 해야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당 경선이 ‘뜻밖에’ 즐거운 정치적 사건이 된 것은 노무현 후보 때문이다. 노 후보의 선전이 즐거운 정치적 사건을 만들었고, 정치판이 즐거워짐으로써 다시 그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싫든 좋든 정치는 우리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짜증스러운 정치는 사람들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듦으로써 다시 정치가 사람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악순환이 그동안 되풀이 되었다.
노 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되든 안 되든, 나아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정치판은 이제부터 즐거운 희망의 판이 되어야 한다. 다른 후보들도 국민들이 정치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들이 사는 길이고, 국민들도 사는 길이며,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길이다.
최윤선 영산대학교 교수 국제학부
최윤선 영산대학교 교수 국제학부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이 세간의 화제다. 시작한 지 만 4주가 되어가는 요즘도 사람들은 주말마다 경선장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다.
정치계란 원래 화제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 가운데 일부는 오랜 동안 국민들의 관심을 사로잡는다. 이 점에서 민주당 경선은 여느 정치적 사건과 별다르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놀라운 점은 민주당 경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이 상당히 따뜻하고 흐뭇하다는 것이다.
그 동안 우리에게 정치는 무엇이었는가?
정치는 우리를 짜증나게 하는 싸움판이었고,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은 난장판이었다.
정치계는 겉으로 국민을 내걸지만 실제로는 참가자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우는 혐오스러운 장(場)이었다. 오죽했으면 한때 “먹고 사는 것은 국민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제발 정치가 방해나 하지 말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정치인들이란 입장도 원칙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존재들이었다. 당이 시키는 대로 손을 들고 시정잡배 마냥 몸싸움에 욕설을 해대기 일쑤였으며, 그러다가도 더 큰 유혹이 있으면 미련 없이 정당을 바꾸곤 했다. 말과 행동이 다른, 믿지 못할 사람이 정치인이었다.
국민에 잘 보이기전 보스에 충성한 정치
한국의 정당이란 이념적 공동체라기보다 지역색을 핵심 메커니즘으로 하여 1인의 보스가 지배하는 위계적 구조였다. 의원들은 유권자에 잘 보이기 이전에 보스에 잘 보여야 정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에 국민을 뒤로 밀쳐놓고 보스에 충성 경쟁을 벌여야 했다.
이것이 우리 머리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정치의 모습이었다. 이러다 보니 정치적 사건들이란 것도 말로는 무엇이라고 하건 결국 제 밥그릇 키우기 위한 추악한 속셈에서 비롯된 꼴보기 싫은 ‘까마귀들의 싸움판’으로 비쳤다.
‘정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선거도 마찬가지였다. 선거란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몫을 챙기기 위한 다툼의 장일 뿐이었다. 이런 판에서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싶은 후보를 고르기란 너무나 어려웠다. 국민들은 결국 좋아하는 후보에게 표를 주는 것이 아니라, 더 보기 싫은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해 투표하곤 했다. 97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 진영은 “이인제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는 구호까지 내걸지 않았던가.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이러하니 누가 선거에 자원봉사를 하고 싶겠는가. 말이 자원봉사지, 후보가 마음에 들어서 제 돈 내며 자발적으로 운동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후보로부터 돈 받거나 아니면 다른 이해관계가 얽혀야 움직였다. 후보들을 지지하는 조직이란 것도 대부분 잘 되면 보상이 따를 것이라는 기대에 따라 만들어지곤 했다.
그런데 참으로 오랜만에 국민들이 마음속에 희망을, 입가에 미소를 담고 정치판을 지켜보고 있다. 으레 그러려니 하던 짜증스러운 예상을 깨뜨리는 결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자발적으로 헌신 봉사하는 선거운동원들도 나타났다. 그 속에서 이제 더 꼴 보기 싫은 후보가 당선되는 것을 막기 위한 소극적인 선택이 아니라 마음에 드는 후보를 찾아 적극적인 선택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았다. 즐거운 마음으로 민주당 경선을 관심 있게 지켜보는 이유이다.
민주당 경선은 결과를 떠나 이미 한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소리까지 들린다. 다만 이념논쟁, 상호비방, 인신공격 등 구태가 보이지만 국민을 위한 정책대결로 방향을 잡는다면 그렇다는 얘기이다. 여기에는 많은 뜻이 담겨 있다. 국민의 의견이 방영된 후보 선출 방식, 지역주의 타파의 가능성, 구태를 극복할 새로운 정치 행태의 등장 등등. 그러나 이 못지않게 중요한 의미는 이제 정치가 더 이상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즐거움과 희망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정치인 모두가 국민에게 즐거움 느끼게 해야
정확히 말하자면 민주당 경선이 ‘뜻밖에’ 즐거운 정치적 사건이 된 것은 노무현 후보 때문이다. 노 후보의 선전이 즐거운 정치적 사건을 만들었고, 정치판이 즐거워짐으로써 다시 그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다.
싫든 좋든 정치는 우리들의 삶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짜증스러운 정치는 사람들이 정치를 외면하게 만듦으로써 다시 정치가 사람들의 삶을 더욱 힘들게 만드는 악순환이 그동안 되풀이 되었다.
노 후보가 민주당 후보가 되든 안 되든, 나아가 대통령이 되든 안 되든 정치판은 이제부터 즐거운 희망의 판이 되어야 한다. 다른 후보들도 국민들이 정치에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들이 사는 길이고, 국민들도 사는 길이며, 정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길이다.
최윤선 영산대학교 교수 국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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