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 주겠다" 약속해놓고 대금 안 주고 버텨
피해업체 "갑 중의 갑 횡포에 맞서 싸울 것"
인천에서 철근 자재업체를 운영하는 김 모(44)씨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말만 믿고 성지건설이 시공하는 아파트공사에 수억원어치 철근을 납품하고도 대금을 하나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공사를 발주한 LH는 자재대금을 직접 지급하겠다는 '하도급대금 직접지급 합의서'까지 써놓고 대금지급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2009년 LH가 발주한 성지건설의 안양지역 아파트 건설공사에 철근을 납품하다가 성지건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자재 값을 못 받을 것을 우려, 2010년 4월 납품을 중단했다. 이후 철근납품 지연으로 공사가 지연된 원청사 성지건설은 LH에 '철근대금 직불'을 요구했고 LH는 김씨에게 '성지건설이 철근자재대금을 직불해 줄 것을 요청하여 이를 승인하였으니 업무에 참고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직불합의서에도 서명했다.
공기업인 LH의 약속을 믿은 김씨는 그해 5월부터 공사현장에 다시 철근을 공급했다. 이 때 추가로 공급한 자재대금만 2억원 가까이 된다. 김씨는 "당시 성지건설의 부도설이 나돌았지만 국가기관인 LH의 직불합의서를 믿고 자재를 납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그해 6월 성지건설이 회생신청을 하자 LH는 성지건설과의 도급계약을 해지하는 한편 김씨가 직불합의서를 믿고 공급을 재개한 철근대금 지급을 거부했다. 성지건설에 이미 지급한 미정산 선급금에 철근대금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LH는 성지로부터 만약의 경우 선지급금을 회수하기 위해 선급금 보증증권을 받아뒀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하청사에 자재대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LH는 이런 절차를 무시했다.
마땅히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던 김씨는 결국 LH를 상대로 법정다툼에 들어갔다. 건설현장에서는 금기시된 '갑 중의 갑'과 맞서 싸우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김씨는 LH를 상대로 한 물품대금 지급청구 소송에서 1·2심 모두 승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판결이 선급금으로 충당하고 남은 공사대금이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려졌다며 원심법원에 파기환송했다.
결국 김씨는 2년여에 걸친 법정싸움을 다시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못 받은 자재 값도 문제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을'들을 위해서라도 싸움을 멈출 수 없다는 것. 파기환송된 기존 재판과는 별도로 당시 LH 현장사업소장을 사기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김씨는 "LH가 철근 공급 대금을 직접 지급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공기를 맞출 목적으로 하청사에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선급금 지급 사실을 알리지 않은 당시 LH 현장사업소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이 일에 책임이 있는 임원진에 대한 추가 고소와 감사원 감사청구 등을 통해 반드시 LH의 비상식적인 행태에 맞서겠다"고 덧붙였다.
김씨처럼 LH에 철근을 공급한 회사는 모두 6곳. 이들은 모두 LH의 직불합의서를 믿고 철근을 공급했다 대금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 가운데 2곳은 부도가 났다. LH와 다른 거래관계가 있는 한 곳을 뺀 두 개 회사가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확인서를 써줬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원청사의 부도 등 긴급상황에서 하청사를 보호하기 위한 직불합의서가 휴지조각이 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건설업계에 악습으로 굳어져 있다"며 "이러한 비정상적 상황이 국가기관인 LH에도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하청사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현행 제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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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업체 "갑 중의 갑 횡포에 맞서 싸울 것"
인천에서 철근 자재업체를 운영하는 김 모(44)씨는 요즘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말만 믿고 성지건설이 시공하는 아파트공사에 수억원어치 철근을 납품하고도 대금을 하나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공사를 발주한 LH는 자재대금을 직접 지급하겠다는 '하도급대금 직접지급 합의서'까지 써놓고 대금지급은 나 몰라라 하고 있다.
김씨는 지난 2009년 LH가 발주한 성지건설의 안양지역 아파트 건설공사에 철근을 납품하다가 성지건설이 자금난을 겪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자재 값을 못 받을 것을 우려, 2010년 4월 납품을 중단했다. 이후 철근납품 지연으로 공사가 지연된 원청사 성지건설은 LH에 '철근대금 직불'을 요구했고 LH는 김씨에게 '성지건설이 철근자재대금을 직불해 줄 것을 요청하여 이를 승인하였으니 업무에 참고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직불합의서에도 서명했다.
공기업인 LH의 약속을 믿은 김씨는 그해 5월부터 공사현장에 다시 철근을 공급했다. 이 때 추가로 공급한 자재대금만 2억원 가까이 된다. 김씨는 "당시 성지건설의 부도설이 나돌았지만 국가기관인 LH의 직불합의서를 믿고 자재를 납품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그해 6월 성지건설이 회생신청을 하자 LH는 성지건설과의 도급계약을 해지하는 한편 김씨가 직불합의서를 믿고 공급을 재개한 철근대금 지급을 거부했다. 성지건설에 이미 지급한 미정산 선급금에 철근대금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특히 LH는 성지로부터 만약의 경우 선지급금을 회수하기 위해 선급금 보증증권을 받아뒀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하청사에 자재대금을 지급할 수 있었다. 하지만 LH는 이런 절차를 무시했다.
마땅히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던 김씨는 결국 LH를 상대로 법정다툼에 들어갔다. 건설현장에서는 금기시된 '갑 중의 갑'과 맞서 싸우기로 한 것이다.
다행히 김씨는 LH를 상대로 한 물품대금 지급청구 소송에서 1·2심 모두 승소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판결이 선급금으로 충당하고 남은 공사대금이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내려졌다며 원심법원에 파기환송했다.
결국 김씨는 2년여에 걸친 법정싸움을 다시 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김씨는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못 받은 자재 값도 문제지만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수많은 '을'들을 위해서라도 싸움을 멈출 수 없다는 것. 파기환송된 기존 재판과는 별도로 당시 LH 현장사업소장을 사기 혐의로 추가 고소했다. 김씨는 "LH가 철근 공급 대금을 직접 지급할 수 없는 상황임을 알면서도 공기를 맞출 목적으로 하청사에 거짓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선급금 지급 사실을 알리지 않은 당시 LH 현장사업소장을 사기 혐의로 고소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이 일에 책임이 있는 임원진에 대한 추가 고소와 감사원 감사청구 등을 통해 반드시 LH의 비상식적인 행태에 맞서겠다"고 덧붙였다.
김씨처럼 LH에 철근을 공급한 회사는 모두 6곳. 이들은 모두 LH의 직불합의서를 믿고 철근을 공급했다 대금을 받지 못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 가운데 2곳은 부도가 났다. LH와 다른 거래관계가 있는 한 곳을 뺀 두 개 회사가 김씨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실확인서를 써줬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원청사의 부도 등 긴급상황에서 하청사를 보호하기 위한 직불합의서가 휴지조각이 되는 비정상적 상황이 건설업계에 악습으로 굳어져 있다"며 "이러한 비정상적 상황이 국가기관인 LH에도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LH 관계자는 "하청사의 상황은 안타깝지만 현행 제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김신일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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