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사람들 6- 김우석 감사

IMF 오일쇼크 등 위기극복에 기여

지역내일 2002-04-05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1주일 전인 1997년 11월 16일 캉드쉬 총재가 극비리에 우리나라를 방문했다. IMF체제로 넘어가기에 앞서 기술조사단 파견 여부 등을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이미 동남아 외환시장이 폭락했고, 국내 시장도 술렁거리고 있었다. 어느 때보다도 보안이 중요했던 상황이었다.
이때 우리측 대표로 캉드쉬 총재를 마중 나갔던 사람이 바로 김우석 현 한국은행 감사다. 당시 직책은 재경원 국제금융증권심의관.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렌트카로 이동, 숙소인 힐튼호텔로 안내했다. 이곳에서 캉드쉬 총재와 강경식 부총리, 이경식 한은총재, 엄낙용 차관보와 함께 김우석 감사는 1박 2일 동안 협상을 벌여야 했다. 다음날 아침 김 감사는 김포공항으로 배웅을 나가며 차안에서 캉드쉬와 마지막 문안을 점검했다.
철저한 보안 덕분에 IMF 구제금융 신청 전 캉드쉬가 비밀리에 다녀갔었다는 사실은 한참 지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순간들”
이 때부터 김우석 감사는 텔레비전 뉴스 시간 때마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됐다. 11월 21일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한 직후 정부는 비공식적으로 직제를 개편, 그동안 나뉘어져 있던 외환관리와 국제기구업무를 하나로 통합했고 이 역할을 맡은 것이 바로 김우석 감사였기 때문이다.
물론 텔레비전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영광스러운 일은 아니었다.
“하루하루가 고통의 순간이었습니다. 걱정이 많다보니 ‘국가 부도는 안내야할텐데…’하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습니다.”
한편으로는 외환위기에 미리 대처하지 못한 관료라는 죄책감과 다른 한편으론 불리한 입장에서 협상에 임해야하는 중압감이 김 감사를 짓눌렀다.
“IMF 구제금융을 신청한다고 발표하면 외환시장이 진정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11월 한달간 100억달러 이상의 자금이 빠져나가는 등 시장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그만큼 IMF가 요구하는 개혁의 강도도 높아졌다. 협상이 타결될만하면 새로운 조건을 붙여왔다. 결국 시장개방, 금리수준, 부실금융기관 처리문제에서 우리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없었다.
협상 초기만 해도 최대한 고통을 줄이겠다는 자세로 임했지만 급격히 줄어드는 외환고를 체크하며 허탈해하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김 감사는 아직도 안타까움을 느낀다.
가정법이 통하지 않는 것이 역사라지만 ‘다만 몇 달만이라도 돌려놓을 수 있다면…’ 하는 생각을 가지게끔 만들었던 순간이기도 했다. 위기가 닥치기 전인 8월말 정부가 채무지급보증 선언을 했을 때 보다 강도높게 대처를 했더라면 상황이 조금은 나아졌으리라는 아쉬움이 남기 때문이었다.
“국제금융시장의 자금이동이 단기화되고 유동성이 커졌다는 사실을 간파하지 못했습니다. 또 그동안 외채를 빌리면서 한푼도 떼어먹지 않았기 때문에 국제적인 신용을 얻고 있다는 환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당시 책임 있는 경제관료로서 밝히는 솔직한 자기반성이다.

외평채 발행해 40억 달러 빌리기도
그러나 돌이켜보면 외환위기를 전후한 시기는 김우석 감사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협상이 어느 정도 매듭지어진 후 김 감사가 전력했던 부분은 단기채권을 만기연장시키는 일이었다. 명색이 국제금융국장이었지만 세계 200여 금융기관에 통사정을 해야했다. 당시 한국은행, 시중은행들과 함께 부지런히 설득한 결과 단기채무의 90% 이상 만기연장시킬 수 있었다.
또 98년 4월, 외평채 발행을 통해 당시 목표였던 30억 달러보다 많은 40억달러를 빌릴 수 있었던 것도 김 감사에게는 큰 보람이다. 당시 외평채 발행은 월스트리트 저널에 대서특필로 보도됐고 그해 연말 유러머니 등 세계 유수의 경제지 6곳에서 인상적인 채권발행으로 선정될 정도로 획기적인 일이었다.
외환위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직책을 맡았었고, 또 정권이 바뀌는 와중이었는데도 김 감사가 위기수습 전면에 배치됐던 것도 이같은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정작 김 감사는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 다행”이라고 겸손해한다.
97년 활약상만큼 알려져 있지 않지만 김 감사는 79년 2차 오일쇼크 때에도 위기수습에 참여했었다. 당시 직책은 재무부 국제수지 담당 사무관.
특히 1, 2차 오일쇼크를 거치며 필요성이 제기된 환율 현실화 작업을 맡았다. 고정환율제도를 변동제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이 역시 극도의 보안을 요하는 사항이었고, 상사와 부하들을 속여가며 호텔, 여관 등지에서 작업을 해야 했다. 각종 자료 활용과 협의를 위해 한국은행과 많이 접촉했던 것도 이때다.
최규하 대통령이 환율제도 변경과 관련 전문가들의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서 공개돼 그동안 지켜왔던 보안이 허사가 됐지만 김 감사에게는 국가경제정책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순간으로 남아있다.
사실 대학 3년때 전망 좋던 공인회계사에 합격해 은행에 입사한뒤 뒤늦게 행시를 준비한 것도 나라 발전에 기여해보겠다는 막연한 ‘충성심’때문이었다.

재경부, 한은 모두 평판 좋아
재경부에서 김우석 감사는 ‘입지전적 인물’로 통한다. 특별한 학연이나 정치적 배경없이 실력만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뒤늦게 공부한 행정고시에서 수석으로 합격할 정도로 명석하고 성실하다는 평을 받고 있다.
처음 발령받은 국세청에서는 딱딱한 문서위주의 브리핑 대신 한 눈에 보기 좋은 차트를 만들어 행정가에 소위 ‘병풍식 차트 브리핑’유행을 일으키기도 했다.
한국은행과 긴장관계인 재경부 출신이지만 한은 내부평판도 좋다. 직원들의 경조사를 잘 챙기는 등 부드러운 성격도 그렇지만 감사실무에 밝다는 평가다. 감사부임 후 단 한건의 사고도 없었고, 그만큼 한국은행의 대외 신뢰를 제고시키는 데 기여해 왔다.
지난번 금융감독원 부원장 인사 물망에 올랐을 때에는 한은측에서 반대하기도 했다. 임기가 끝나지 않은 한은 감사를 정부가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는 데 대한 반발이었지만 내부적으로는 ‘김 감사만큼 적격인 사람도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다는 게 한은 직원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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