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미례의 발차기] 교과서를 너무 우습게 안다

지역내일 2013-09-17
언론인.번역가

학창시절의 악몽을 손꼽으라면 누구나 '단체기합'을 얘기한다. 그 중에서도 나쁜 기억은 어떤 한명의 사소한 잘못으로 전체가 손바닥을 맞는 체벌이다. 맞을 짓을 한 기억이 없는데 손바닥에 떨어지는 대나무 자나 회초리의 맛은 억울한 만큼 더 쓰리고 아프다.

더 최악의 사건은 교실 내 도난사고가 났을 때의 단체 처벌이다. "지금 이 교실 안에 도둑X이 있다"는 말로 아이들을 싸잡아 용의자로 만든 선생님은 모두 눈을 감게 하고 범인(?)을 색출한다. 말이나 표정, 태도를 보고 범인을 알아낸다는 말에 아이들은 겁에 질려 말이 어색하게 나가고 태도는 안절부절 못하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은 단체 '타작'으로 끝나고 수색은 성과 없이 끝난다. 돈 잃어버린 아이에 대한 미움과 도둑 취급당한 자존심의 상처만 아이들의 가슴에 가득 남긴 채…. 아이들은 그렇게 미움과 굴욕을 배운다.

친일, 독재미화와 오류투성이 내용 때문에 '부실교과서'로 지목돼 말썽을 빚고 있는 한국사교과서(교학사)와 함께 다시 내용을 검증한다며 교육부의 수정권고를 받은 나머지 한국사 교과서7종의 집필진이 교육부 권고를 따르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지난달 검정을 통과한 이들 7개출판사(금성출판사, 두산동아, 리베르스쿨, 미래엔, 비상교육, 지학사, 천재교육) 집필자들이 협의회를 결성해 기자회견을 갖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교육부의 절대적 권위에 대해 국정교과서시대에서 검인정 교과서 시대로 이행한 이후 첫 공식적 저항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들은 교학사 교과서가 논란을 일으키자 교육부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 8종 전체에 대해 수정할 부분이 있는지 검증하겠다고 밝힌 것은 사실상 검정을 다시 하겠다는 것이라며 "부실교과서와 같은 취급에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문제교과서 '잘못'도 물타기 하나
더구나 정부의 수정 지시는 2008년 정부가 전문가협의회를 구성해 고교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에 대해 수정지시를 내린 조처가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례가 이미 나왔으므로 위법하다는 주장이다. 교육부는 과거의 실수에서 배우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의 법원 판례부터 존중하는 준법정신부터 배워야 할 것이다.

특히 이미 검정을 통과해서 내년 쓸 교과서를 채택하기 위해 배포된 8종 교과서를 모두 검토한 뒤 수정보완 권고를 하고 이를 반영한 새로운 전시본을 만들어 11월중 다시 배포할 경우 추가비용이 2억~3억까지 들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교육부는 이를 정부가 부담한다니 결국 부실교과서 하나 때문에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는 셈이 된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문제의 교학사 집필진은 뉴라이트 계열의 극우 보수 시각을 교과서에 주입하는 데 몰입한 나머지 가장 기초적인 사실관계 확인이나 자료 검증도 제대로 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애초에 교과서 집필을 할 수준에 미달했거나 경험이 미비했는지도 모른다.

필자는 10명이 공동 집필하는 방송대학 교과서의 한 장(章)을 맡아서 쓴 적이 있었는데 내용에 삽입할 자료사진 하나 하나의 저작권 문제까지 거듭 확인시키는 것을 보고 신문사에서 예사롭게 자료사진을 뽑아 쓰던 버릇에 대해 반성하고 긴장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대학교재보다 더욱 엄정한 검증이 필요한 고교 국사 교과서인데도 교학사 책의 경우 '학도병 이우근'의 사진이 이우근이 아닌 병사의 사진으로 잘못 실렸고 출처도 '구글'로 표시해 유족들이 "울분을 금할 수 없다"며 항의하기도 했다니(경향신문) 사진 게재의 기본 중의 기본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오류투성이 교과서가 어떻게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증을 통과했는지 수수께끼가 아닐 수 없다.

부실의 극치, 사진조차 오류
결국 2008년 당시 이명박정부가 금성출판사의 교과서 내용을 정부 입맛대로 뜯어고치기 위해 전문가협의회라는 기구를 급조해서 수정명령을 내렸다가 위법 판결을 받은 전철을 고스란히 밟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교학사 검증과정을 재검증하고 이런 사태가 되풀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할 것이다.

교육부는 "재검증이 아니라 사실관계의 오류를 재검토해서 수정 보완하라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지만 그 차이에 대해 수긍할 집필자나 출판사가 과연 있을까. 수능과 연결될지도 모르는 교과서가 이렇게 흔들리고 사실 아닌 것이 가득한 책까지 있으니 학생들은 또 얼마나 혼란스러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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