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지압 장군 12일 국장 엄수

지역내일 2013-10-07 (수정 2013-10-07 오후 1:57:38)
베트남 독립영웅 102세로 4일 별세 … 디엔비엔푸 전투 승리 주역

지압장군외세에 맞서 베트남의 독립을 수호한 전쟁영웅 보 구엔 지압 장군(사진)이 지난 4일 102세로 별세했다. 하노이대학을 졸업하고 1930년 공산당에 입당한 지압 장군은 1930년대 말부터 1940년까지 중국에서 호찌민의 지휘하에 활동했다. 1941년 베트남에 잠입해 베트민을 결성한 후 여러 성에 혁명세력의 근거지를 만들어 항일 게릴라부대를 지휘했다. 1945년 독립과 함께 내무장관, 국방장관, 부총리 등을 역임했다. 퇴임 후에도 청빈한 생활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지압 장군의 장례식은12~13일 국장으로 치러지며 시신은 고향인 꽝빈역 지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역사를 전공한 지압 장군은 한 번도 정식 군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만 강대국을 상대로 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전쟁영웅이다. 그는 1954년 디엔비엔푸전투에서 승리해 프랑스를 상대로 항복을 받아낸 것을 비롯해, 1966년 역시 같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미 해병 2개연대를 몰살시켰고, 1968년 구정 총공습작전을 지휘해 미국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1986년에 중국과의 국경전쟁에서 중국군 3개연대를 풍비박살 낸 뛰어난 전쟁 지휘관이다.

특히 식민지 지배를 받는 국가가 제국주의 강대국을 처음으로 물리친 1954년 디엔비엔푸전투는 세계 역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항복하자, 베트남에 20만명에 달하는 중국군이 진주했다. 베트민은 이를 견제하기 위해 프랑스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중국군이 물러가자 프랑스는 노골적으로 베트남을 지배하려는 야욕을 보였다.

베트남에 친프랑스 정부를 세워 베트남을 수탈하는 한편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받아 디엔비엔푸지역에 대규모 요새를 건설했다. 비행장을 건설하고 1만5000명이 넘는 병력과 야포 전차, 비행중대 등을 배치해 베트남 장악을 위한 기지로 삼는다는 전략을 세웠다.

베트남군을 이끌고 있던 호찌민과 군사령관 지압 장군은 이 요새를 공격해 프랑스군을 몰아내기로 결단을 내렸다. 프랑스군이 기지건설에 한창이던 1953년 겨울, 베트남군에게 디엔비엔푸지역으로 총결집하라는 이동명령이 떨어졌다. 멀리 1000km떨어진 곳에서부터 낮에는 프랑스군의 70여대의 항공기 순찰을 피해 주로 야간에 이동하며 베트남군은 병력과 무기를 이동시켰다.

특히 베트남군은 한국전쟁 때 중국이 노획한 미국의 105mm 포를 지원받았다. 지압 장군은 약 100여대의 포를 수백km나 되는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포를 분해해 베트남인들의 도움을 받아 야간에 하루 평균 800m씩 이동하는 상상할 수 없는 고난의 행군을 통해 이동시켰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국민이 모두 나섰다. 직접 포탄을 머리에 이고 나르는 일도 있었고, 경사진 언덕으로 한 발 한 발 대포를 끌어 올리기도 했다. 드디어 진지가 구축되고 총 5만 명에 이르는 병력이 요새를 포위하자 1954년 3월 12일 베트남군은 맹렬한 포격으로 프랑스군의 요새를 향한 공격을 시작했다.

기습공격에 당한 프랑스군은 하늘을 통한 물자와 병력 공수작전에 의존했으나, 베트남군은 활주로를 파괴하고 외부로부터의 보급로를 차단했다. 하늘에서 강하를 통한 병력 증원과 물자수송을 하려 했으나 이 역시 베트남군의 대공포와 총격에 차례로 격추되고 사살됐다.

결국 외부로부터의 보급이 끊긴 채 저항하던 프랑스군은 1954년 5월 7일 베트남군에 공식 항복했다. '백기는 들지 않겠다'는 조건부 항복을 베트남군 지휘부는 호탕하게 웃으며 받아들였다. 베트남군 공격이 시작된 지 55일 만이다. 제국주의 세력들이 최초로 식민지 국가에 항복한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써 디엔비엔푸 전투는 피압박민족 해방전쟁의 세계사적인 성지가 됐고, 그 중심에 지압 장군이 있었다.

베트남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7일 "베트남 독립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전쟁 영웅이며, 베트남을 지탱해온 정신적 지주 같은 인물"이라고 평가하며 "중국의 세력 확장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을 정도로 자주 독립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장병호 김기수 기자 bh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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