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로 1차경고 → 실세비서진 앞세워 압박 … '책임장관제' 공염불 될 판
박근혜정부 들어 세인의 입질에 올랐던 대표적 장면은 '받아쓰기'였다. 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말하면 장관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받아적기 바쁜 장면이 연일 방송을 통해 전해진 것. 적자생존이란 말이 유행어가 됐다. "(박 대통령의) 말을 적지않으면 도태된다"는 얘기였다. 박 대통령과 장관들간의 '특수한 관계'가 압축된 말이었다. 소통이 화두로 떠오르고, 스탠딩회의가 일반화된 시대에는 어색한 장면이 분명했다.
청와대와 부처관계는 여기까지였다. 부처에 목소리 높이는 건 박 대통령 뿐이었고, "국무회의는 언제 가도 항상 긴장된다"(모 부처장관)는 건 장관 뿐이었다. 실제 청와대 비서진과 부처의 상황은 달랐다. 비서진은 음지의 조용한 '서포터즈' 에 머물렀고, 부처는 장관과 달리 느긋한 분위기였다. 관료에 애착이 큰 박 대통령의 심기보좌만 잘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급해진 건 박 대통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임 반년을 앞둔 박 대통령은 가시적인 성과가 절실하다. 그동안은 정권의 기초를 닦는 기간이었고 국민도 인내를 갖고 기다렸다. 외부요인(대북과 방미, 방중) 덕분에 지지율도 괜찮게 나왔다.
하지만 후반기엔 상황이 다르다. 국민의 인내가 바닥날 시점이고 외부요인의 도움도 더 받기 어렵다. 후반기를 앞둔 박 대통령으로선 빠른 시일내에 국민 앞에 뭔가를 내놓아야 할 강박에 시달릴 법하다. 이런 인식은 박 대통령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참모들에게 "국민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선 국민에게 성과로 보여줘야한다. 경제와 복지, 안보, 문화, 교육 어느 것 하나가 아니라 두루두루 잘해서 종합선물세트를 안겨야 한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결국 부처를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장관에게 지시하는 것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음직하다.
이런 측면에서 박 대통령의 8·5 청와대 참모진 개편은 부처를 겨냥한 1차경고로 해석된다. "무능력·무기력하면 바로 교체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인사에 목매는 공직사회에 카운트펀치를 날릴 셈이다.
다음 압박은 비서진이 직접 나서 부처 장악력을 높이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두루 거친 75세의 김기춘 비서실장을 내세웠다. 김 비서실장은 당정청 실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원로급'이다. 김 비서실장은 '윗분의 뜻'을 받들어 '아래'를 관리하는 데는 능통하다는 평을 듣는다. 박 대통령은 수석 4명을 새로 앉히면서 관료출신을 더 중용했다. 수석들이 장관의 그늘에 머물게 아니라, 직접 나서 부처를 성과로 내몰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8일 새 비서진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 비서실은 국정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 몸의 중추기관과 같다"며 "청와대 비서실이 모든 것을 풀어야 나라 전체도 조화롭게 갈 것"이라고 말해, 비서진에 힘을 실어줬다.
박 대통령이 만들어낸 '적자생존'에 이어 실세 비서실장과 수석들의 부처 장악력이 커지면, 새 정부 국정운영의 효율성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후반기에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면 박 대통령 지지율 관리에 힘이 될 것이다.
다만 '적자생존'과 '왕실장-수석 시대'가 시너지효과를 낼 경우 그렇잖아도 존재감없는 장관들이 '실종 상태'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건 책임장관제와 배치되는 것일 뿐더러 공직사회의 자율성을 무너뜨리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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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정부 들어 세인의 입질에 올랐던 대표적 장면은 '받아쓰기'였다. 박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말하면 장관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받아적기 바쁜 장면이 연일 방송을 통해 전해진 것. 적자생존이란 말이 유행어가 됐다. "(박 대통령의) 말을 적지않으면 도태된다"는 얘기였다. 박 대통령과 장관들간의 '특수한 관계'가 압축된 말이었다. 소통이 화두로 떠오르고, 스탠딩회의가 일반화된 시대에는 어색한 장면이 분명했다.
청와대와 부처관계는 여기까지였다. 부처에 목소리 높이는 건 박 대통령 뿐이었고, "국무회의는 언제 가도 항상 긴장된다"(모 부처장관)는 건 장관 뿐이었다. 실제 청와대 비서진과 부처의 상황은 달랐다. 비서진은 음지의 조용한 '서포터즈' 에 머물렀고, 부처는 장관과 달리 느긋한 분위기였다. 관료에 애착이 큰 박 대통령의 심기보좌만 잘 하면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급해진 건 박 대통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취임 반년을 앞둔 박 대통령은 가시적인 성과가 절실하다. 그동안은 정권의 기초를 닦는 기간이었고 국민도 인내를 갖고 기다렸다. 외부요인(대북과 방미, 방중) 덕분에 지지율도 괜찮게 나왔다.
하지만 후반기엔 상황이 다르다. 국민의 인내가 바닥날 시점이고 외부요인의 도움도 더 받기 어렵다. 후반기를 앞둔 박 대통령으로선 빠른 시일내에 국민 앞에 뭔가를 내놓아야 할 강박에 시달릴 법하다. 이런 인식은 박 대통령 입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참모들에게 "국민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선 국민에게 성과로 보여줘야한다. 경제와 복지, 안보, 문화, 교육 어느 것 하나가 아니라 두루두루 잘해서 종합선물세트를 안겨야 한다"고 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통령은 성과를 내기 위해선 결국 부처를 압박하는 수밖에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장관에게 지시하는 것으로만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음직하다.
이런 측면에서 박 대통령의 8·5 청와대 참모진 개편은 부처를 겨냥한 1차경고로 해석된다. "무능력·무기력하면 바로 교체대상이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인사에 목매는 공직사회에 카운트펀치를 날릴 셈이다.
다음 압박은 비서진이 직접 나서 부처 장악력을 높이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행정부와 입법부를 두루 거친 75세의 김기춘 비서실장을 내세웠다. 김 비서실장은 당정청 실세 누구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원로급'이다. 김 비서실장은 '윗분의 뜻'을 받들어 '아래'를 관리하는 데는 능통하다는 평을 듣는다. 박 대통령은 수석 4명을 새로 앉히면서 관료출신을 더 중용했다. 수석들이 장관의 그늘에 머물게 아니라, 직접 나서 부처를 성과로 내몰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박 대통령은 8일 새 비서진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청와대 비서실은 국정운영을 하는 데 있어서 우리 몸의 중추기관과 같다"며 "청와대 비서실이 모든 것을 풀어야 나라 전체도 조화롭게 갈 것"이라고 말해, 비서진에 힘을 실어줬다.
박 대통령이 만들어낸 '적자생존'에 이어 실세 비서실장과 수석들의 부처 장악력이 커지면, 새 정부 국정운영의 효율성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후반기에 구체적 성과로 이어지면 박 대통령 지지율 관리에 힘이 될 것이다.
다만 '적자생존'과 '왕실장-수석 시대'가 시너지효과를 낼 경우 그렇잖아도 존재감없는 장관들이 '실종 상태'로 내몰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는 박 대통령이 대선 당시 내건 책임장관제와 배치되는 것일 뿐더러 공직사회의 자율성을 무너뜨리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는 지적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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