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종 칼럼] 일자리, 월급만 받는 곳이 아니다

지역내일 2013-10-07
언론인 전 한국일보 주필

삼성전자의 3분기(7~9월) 영업이익이 10조원을 넘어서 사상 최대 기록을 세웠다. 올해 영업이익이 40조원에 육박할 전망이니 가히 경이적이다. 얼핏 이 수치만 보면 한국 사회가 번영의 사다리를 가파르게 타는 듯하고 젊은이들이 희망에 벅차오를 일만 남은 것 같다.

그러나 청년세대는 어둡다. 삼성전자의 성장만큼 실업의 그림자는 짙다. 삼성그룹이 올 가을 5500명의 신입사원을 선발하는데 10만명이 지원했다. 웬만한 대기업의 입사경쟁률이 100대 1이 넘는다. 또 9급 공무원 2000~3000명 뽑는 데 20만명이 몰린다. 일자리를 못 찾아 절망에 빠져가는 청년 숫자가 누적되어 가고 있다.

이런 청년실업 사태를 보면서 40년 전 영국의 경제사상가 E. F. 슈마허가 그의 책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에서 역설했던 일(노동)의 역할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슈마허는 이 책 앞부분에서 '불가(佛家)의 경제학'이란 흥미로운 항목을 다루면서 팔정도(八正道)의 정명(正命)을 언급했다. 팔정도란 불교에서 해탈하는 길로 안내하는 8가지 생활지침이다. 그 중에 먹고사는 문제, 즉 올바른 경제생활의 지혜를 다룬 것이 '정명'이다. 불교의 노동관(勞動觀)도 여기에서 유례하지 않았나 싶다.

슈마허는 1955년 불교 국가 미얀마(버마)의 경제발전을 돕기 위한 고문으로 파견되었다. 미얀마 정부가 그를 불러들인 이유는 서구식 경제발전 모델을 도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슈마허는 미얀마에 파견된 지 몇 달 만에 경제고문직을 중단하고 말았다. 미얀마는 나름의 좋은 농업경제 시스템을 갖고 있으므로 서구식 경제개발 모델이 필요하지 않다고 슈마허는 인식했던 것이다. 이때 그가 미얀마 경제를 관찰하고 쓴 논문이 '불가의 경제학' (Buddhist economics)이다. 서구의 경제 시스템처럼 자원을 고갈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자원의 순환을 중시하는 지속가능한 경제가 그 근간이다.

일은 자기 존재의 정체성
경제학자가 대부분 그렇겠지만 슈마허는 일(노동)의 본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사람인 것 같다. 그는 불교의 관점에서 노동 또는 일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관찰했고, 일자리를 갖는다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의미가 있다고 정리했다.

첫째, 일은 한 개인에게 그의 능력과 재능을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둘째, 일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공동 작업에 참여함으로서 한 개인으로 하여금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하게 해준다. 셋째, 일은 사람의 생계에 필요한 물자와 서비스를 얻게 해준다.

슈마허는 이런 불교적 노동관에 상당한 호감을 가졌던 것 같다. 당시 서구 경제학자들의 눈에 비친 노동은 고용주에게는 비용이고, 노동자에게는 자기희생이었으니, 이런 불교적 관점이야 말로 서구 자본주의 노동관과 완전히 대척점에 있었던 것이다.

사람은 일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절망적인 상황에 빠진다. 슈마허는 그 이유를, 일이란 단순한 생계수단일 뿐 아니라 자기 능력을 함양하고 활성화하는 요소라는 관점에서 찾았다. 슈마허가 지적하지 않더라도 또는 불교 사회가 아니더라도, 일은 단순한 생계수단을 넘어서는 자기 존재의 정체성임을 누구나 인식할 수 있다.

슈마허가 제기했던 일의 역할이 오늘의 한국 사회에 던지는 시사점은 적잖은 것 같다. 일각에선 한국인들이 너무 배불리 먹고 잘 산다는 얘기도 하지만, 조금만 주위를 살펴보면 2030세대 청년실업과 4050세대의 조기실직 문제가 심각하다. 특히 청년실업은 통계로만 말할 수 없는 짙은 그림자가 있다.

서울여성가족재단이 근래 서울에 거주하는 미혼자 2030세대 103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바에 따르면, 4명 중 1명이 스스로를 "생산성 없는 잉여세대"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1/4이 "난 생산성 없는 잉여세대"
응답자의 76%가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며 불안한 생계를 유지했거나 취업을 해도 고용 불안정을 경험한 사람들이다. 취업과 구직에서 겪은 좌절감이 2030세대의 심리를 지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사회의 고용추세는 '생산성 없는 잉여세대'가 적체되어갈 수밖에 없다. 단순히 입에 풀칠하는 차원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이나 재능을 발전시키고 활용하는 동기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로 가득차 가는 한국사회가 희망을 말할 수 있을까 싶다.

입시전쟁으로 공교육이 다 망가져서 회복불능상태에 있고, 이제 입사전쟁으로 젊은이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영혼이 고갈되고 정신이 피폐해진 2030세대가 100만명으로, 200만명으로 불어난다면, 100만명을 먹여 살릴 천재적 엔지니어가 몇명 나온다고 한들 사회가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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