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저병에 강한 고추 세계최초 개발 … 주름개선 탁월한 레티놀, 결핵치료제 등 미생물 이용 개발
사람의 유전체(게놈)를 해독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세계가 흥분한 때가 있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진행한 이 프로젝트에는 10년간 2조원 이상이 투입됐다. 하지만 곧 11만원(1000달러)에 인간 유전체를 해독할 수 있게 된다. 지난 2005년부터 상용화된 차세대 염기서열분석장비(NGS) 덕분이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 따르면 인간 1명의 유전체분석 비용은 2003년 27억달러에서 2010년 9000달러로 대폭 줄었고 오는 2016년에는 10000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유전체분석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의약·농축산업 등 맞춤서비스를 지향하는 생물정보의 상용화도 대폭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2월 기준 유전체를 완전히 해독한 종수는 전 세계에서 3123종이다. 유전체 해독을 진행 중인 것이 9239종에 이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용 생물의 유전체 비밀이 급속히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일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열고 생명공학시장의 이런 변화를 반영해 농진청이 제출한 '제3차 농업생명공학육성 중장기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진행한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해 오는 2016년까지 10년 계획으로 진행 중이던 '제2차 농업생명공학육성 중장기 기본계획'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농진청은 사업의 전반기인 2017년까지 5년간 6566억원의 예산을 투자하기로 했다. 매년 1200억원 이상을 투입한다. 이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간 4153억원을 투입, 매년 700억원도 투입하지 못했던 것에 비해 70% 이상 증가한 규모다.
'3차계획 보고서'를 작성한 박종석 농진청 농업연구관은 "전 세계에서 유전체 정보를 특허로 바꾸고 있다"며 "우리도 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내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보건복지부 등이 범부처 차원에서 유전체해독사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사진: 농촌진흥청은 농업생명공학의 필수자원인 종자유전자원 34만5866종을 보유하고 있다.세계 6위다. 농진청은 이를 세계 5위권으로 올리기 위해 각국과 농업협력 연구를 하면서 우리 농업기술을 제공하고 종자를 구하는 등 다양한 농업유전자원을 세계 곳곳에서 수집하고 있다. 농진청 연구원이 14일 이곳을 찾은 농림축산식품부 출입기자단에 현황을 설명하고 있다. 수원 = 정연근 기자>
◆기후변화 대응한 새로운 품종 개발 = 농진청은 대한민국 농생명공학 연구의 중심이다. 농진청은 농생명공학 연구비 중 80%를 대학교수 등과 산·학·연 공동연구로 수행한다. 농진청의 연구인력은 물론 연구설비도 함께 사용한다.
육종 및 생명공학인프라 제조기업인 (주)고추와 육종은 지난해 농진청의 '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에 참여, 탄저병에 강한 고추를 개발했다. 세계 최초다. 탄저병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고추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병으로 해마다 우리나라 고추농가의 20~30%가 피해를 입고 있다. 피해액도 1000억원대에 이른다.
탄저병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발생하는데 여름철 장마나 태풍이 지나간 뒤에 주로 일어난다. 세계적인 기상변화를 고려하면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병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탄저병 저항성 고추품종은 개발되지 못했다.
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의 식물분자육종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고희종 교수(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는 "우리가 개발하기 전까지 탄저병에 강한 고추를 개발하지 못한 이유는 탄저병 저항성 유전자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농진청과 '고추와 육종'팀은 국·내외 유전자원에 대한 끈질긴 탐색연구를 통해 마침내 남미에서 탄저병 저항성 유전자를 찾아냈고, 이를 활용해 탄저병 저항성 고추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탄저병에 강한 고추품종은 아시아종묘와 한국다끼에서 기술이전을 받아 종자를 개발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농민에게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이 운영하고 있는 농업유전자원센터 배양실의 영하 196도 기구에서 실험종자를 꺼내고 있는 연구원. 수원 = 정연근 기자>
◆비타민A 부족한 빈곤국가 도울 '레티놀' 대량생산 = 농생명공학은 농업·식품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농진청(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 시스템합성 농생명공학사업단)은 지난 3월 주름개선 기능에 탁월한 효능을 갖는 레티놀(비타민 A)을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개발해 화제가 됐다. 레티놀은 주름개선 화장품의 주요 원료지만 화학합성을 통해 만들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한 해에 1300억원 이상을 주고 레티놀을 전량 수입하고 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레티놀은 동물성 식품성분으로 동물과 식물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비타민A의 기초가 되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식물을 초식동물이 먹으면 만들어지는 식이다. 육식동물은 이런 초식동물을 먹어서 비타민A를 보충한다.
농진청은 레티놀의 생산물질인 베타-카로틴과 레티놀의 생합성 경로가 각각 식물과 동물로 나눠져 있어 자연상태에서 레티놀을 일괄 생합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극복했다. 연구팀은 '대사재설계'라는 최첨단 합성생물학 기술을 이용해 식물과 동물에 가각 나눠져 있는 레티놀 생산경로를 하나의 미생물에 통합하는 데 성공, 레티놀을 대량 생산하는 '미생물 세포공장'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우선 주름방지 및 개선 기능에 사용할 수 있다. 수입하고 있는 화학합성 레티놀은 1g 약 15만원이지만 이 기술을 통해 개발한 레티놀은 4000원 수준이다. 이 기술은 항염증, 항산화 및 항노화 효능이 있는 레티날, 레티노인산 및 레티닐 에스터 등과 같은 레티노이드의 맞춤형 생산에 응용할 수 있어 건강기능식품, 사료첨가제 및 의료용 제재 등 다양한 분야의 핵심소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허건양 농진청 연구정책국장은 "이번 연구결과로 대량생산된 레티놀을 육류섭취가 힘들어 비타민A 결핍환자가 많은 빈곤국가에 제공해 그들의 건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지난 4월 미생물에서 결핵치료용 신물질도 개발했다. 현재 사용하는 결핵치료 항생제는 대부분 1950~60년대에 개발한 것으로 긴 투여기간, 부작용 등의 약점이 있어 새로운 결핵치료제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결핵은 해마다 2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다. 우리나라도 2011년 기준 10만명당 97명이 결핵에 걸리고 5.4명이 사망했다.
농진청이 새롭게 개발한 '미생물유래 결핵치료용 신물질'은 결핵치료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잠복기 결핵균'에 대한 약효평가에서 기존 결핵치료제인 카프레오마이신보다 8배 강했다. 동물실험에서 거의 독성이 나타나지 않아 안전물질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국내의 토양에서 분리한 6만6000개의 희귀 방선균 추물출을 초고속 스크리닝시스템(HTS)을 이용해 결핵균에 강한 균주를 선발했다. 박종석 연구관은 "추출한 물질을 기계에 넣어 돌리면 결핵치료제 효과가 있는 물질이 피크를 나타낸다"며 "이런 방식으로 미생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연구 인프라와 인력이 왜 중요한지 다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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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유전체(게놈)를 해독하는 '인간게놈프로젝트'에 세계가 흥분한 때가 있었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진행한 이 프로젝트에는 10년간 2조원 이상이 투입됐다. 하지만 곧 11만원(1000달러)에 인간 유전체를 해독할 수 있게 된다. 지난 2005년부터 상용화된 차세대 염기서열분석장비(NGS) 덕분이다.
국가과학기술심의회에 따르면 인간 1명의 유전체분석 비용은 2003년 27억달러에서 2010년 9000달러로 대폭 줄었고 오는 2016년에는 10000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유전체분석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의약·농축산업 등 맞춤서비스를 지향하는 생물정보의 상용화도 대폭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2월 기준 유전체를 완전히 해독한 종수는 전 세계에서 3123종이다. 유전체 해독을 진행 중인 것이 9239종에 이른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유용 생물의 유전체 비밀이 급속히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 2일 국가과학기술심의회를 열고 생명공학시장의 이런 변화를 반영해 농진청이 제출한 '제3차 농업생명공학육성 중장기 기본계획'을 확정했다. 이 계획은 2013년부터 2022년까지 10년간 진행한다.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해 오는 2016년까지 10년 계획으로 진행 중이던 '제2차 농업생명공학육성 중장기 기본계획'을 수정·보완한 것이다.
농진청은 사업의 전반기인 2017년까지 5년간 6566억원의 예산을 투자하기로 했다. 매년 1200억원 이상을 투입한다. 이는 2007년부터 2012년까지 6년간 4153억원을 투입, 매년 700억원도 투입하지 못했던 것에 비해 70% 이상 증가한 규모다.
'3차계획 보고서'를 작성한 박종석 농진청 농업연구관은 "전 세계에서 유전체 정보를 특허로 바꾸고 있다"며 "우리도 이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내년부터 농림축산식품부, 농촌진흥청, 보건복지부 등이 범부처 차원에서 유전체해독사업을 시작한다"고 말했다.

◆기후변화 대응한 새로운 품종 개발 = 농진청은 대한민국 농생명공학 연구의 중심이다. 농진청은 농생명공학 연구비 중 80%를 대학교수 등과 산·학·연 공동연구로 수행한다. 농진청의 연구인력은 물론 연구설비도 함께 사용한다.
육종 및 생명공학인프라 제조기업인 (주)고추와 육종은 지난해 농진청의 '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에 참여, 탄저병에 강한 고추를 개발했다. 세계 최초다. 탄저병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고추에 가장 큰 피해를 주는 병으로 해마다 우리나라 고추농가의 20~30%가 피해를 입고 있다. 피해액도 1000억원대에 이른다.
탄저병은 고온다습한 환경에서 발생하는데 여름철 장마나 태풍이 지나간 뒤에 주로 일어난다. 세계적인 기상변화를 고려하면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병이지만 전 세계적으로 탄저병 저항성 고추품종은 개발되지 못했다.
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의 식물분자육종사업단을 이끌고 있는 고희종 교수(서울대 식물생산과학부)는 "우리가 개발하기 전까지 탄저병에 강한 고추를 개발하지 못한 이유는 탄저병 저항성 유전자원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농진청과 '고추와 육종'팀은 국·내외 유전자원에 대한 끈질긴 탐색연구를 통해 마침내 남미에서 탄저병 저항성 유전자를 찾아냈고, 이를 활용해 탄저병 저항성 고추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탄저병에 강한 고추품종은 아시아종묘와 한국다끼에서 기술이전을 받아 종자를 개발하고 있다"며 "내년에는 농민에게 보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비타민A 부족한 빈곤국가 도울 '레티놀' 대량생산 = 농생명공학은 농업·식품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농진청(차세대바이오그린21사업 시스템합성 농생명공학사업단)은 지난 3월 주름개선 기능에 탁월한 효능을 갖는 레티놀(비타민 A)을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개발해 화제가 됐다. 레티놀은 주름개선 화장품의 주요 원료지만 화학합성을 통해 만들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한 해에 1300억원 이상을 주고 레티놀을 전량 수입하고 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레티놀은 동물성 식품성분으로 동물과 식물의 결합을 통해 만들어진다. 비타민A의 기초가 되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한 식물을 초식동물이 먹으면 만들어지는 식이다. 육식동물은 이런 초식동물을 먹어서 비타민A를 보충한다.
농진청은 레티놀의 생산물질인 베타-카로틴과 레티놀의 생합성 경로가 각각 식물과 동물로 나눠져 있어 자연상태에서 레티놀을 일괄 생합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극복했다. 연구팀은 '대사재설계'라는 최첨단 합성생물학 기술을 이용해 식물과 동물에 가각 나눠져 있는 레티놀 생산경로를 하나의 미생물에 통합하는 데 성공, 레티놀을 대량 생산하는 '미생물 세포공장'을 개발했다.
이 기술은 우선 주름방지 및 개선 기능에 사용할 수 있다. 수입하고 있는 화학합성 레티놀은 1g 약 15만원이지만 이 기술을 통해 개발한 레티놀은 4000원 수준이다. 이 기술은 항염증, 항산화 및 항노화 효능이 있는 레티날, 레티노인산 및 레티닐 에스터 등과 같은 레티노이드의 맞춤형 생산에 응용할 수 있어 건강기능식품, 사료첨가제 및 의료용 제재 등 다양한 분야의 핵심소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허건양 농진청 연구정책국장은 "이번 연구결과로 대량생산된 레티놀을 육류섭취가 힘들어 비타민A 결핍환자가 많은 빈곤국가에 제공해 그들의 건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농진청은 지난 4월 미생물에서 결핵치료용 신물질도 개발했다. 현재 사용하는 결핵치료 항생제는 대부분 1950~60년대에 개발한 것으로 긴 투여기간, 부작용 등의 약점이 있어 새로운 결핵치료제 개발이 절실한 상황이다. 결핵은 해마다 200만명의 생명을 앗아간다. 우리나라도 2011년 기준 10만명당 97명이 결핵에 걸리고 5.4명이 사망했다.
농진청이 새롭게 개발한 '미생물유래 결핵치료용 신물질'은 결핵치료에 가장 큰 장애가 되는 '잠복기 결핵균'에 대한 약효평가에서 기존 결핵치료제인 카프레오마이신보다 8배 강했다. 동물실험에서 거의 독성이 나타나지 않아 안전물질로 확인됐다.
연구팀은 국내의 토양에서 분리한 6만6000개의 희귀 방선균 추물출을 초고속 스크리닝시스템(HTS)을 이용해 결핵균에 강한 균주를 선발했다. 박종석 연구관은 "추출한 물질을 기계에 넣어 돌리면 결핵치료제 효과가 있는 물질이 피크를 나타낸다"며 "이런 방식으로 미생물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연구 인프라와 인력이 왜 중요한지 다시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연근 기자 yg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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