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몰려왔다. 담임선생의 학급운영을 놓고 한 달을 고민하다가 달려 온 것이다. 처음에 모둠활동을 한다고 학급 조직을 편성해 놓고는 담임이 꿩 궈 먹은 소식처럼 아무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이따금 책임자인 모둠장을 불러 “왜 청소, 학급 지킴이, 싱어롱 모둠 등 주제별로 활발한 활동을 하지 않느냐”고 닦아세우는 억지를 내내 참다가는 마침내 항의단을 조직한 것이다. 모둠장들로 구성된 항의단 6명은 학급운영 개선을 건의하는 항목을 문서로 작성하여 담임에게 조목조목 따져가며 물었다.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선도활동을 하기로 되어 있는 지킴이 모둠은 성격상 위원 개인의 성실성을 생각하여 선정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담임이 지명하여 구성한 것이 문제였다. 선도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다음과 같은 아이들로 위원을 대폭 교체해야 한다.”
“싱어롱 모둠이 종례시간에 음악 활동을 짜임새 있게 하려면 곡목 선정에서 악기를 빌리는 일까지 미리 계획을 갖고 시작했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으니까 활동을 쉬고 있다.”
“학교에서 지정한 학급 간부들과 담임이 지정한 주제별 모둠의 위원들이 서로 해야 할 일의 영역이 중복되어 충돌을 일으킨다. 새로 짜야 한다.”
항의단의 지적은 담임에게 뼈아픈 충고로 인식되었다. 그만큼 학급운영을 주먹구구식으로 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덧붙여 담임의 태도까지 주문하였다. ‘자주 삐지지 말 것’, ‘담임을 그만 둔다고 협박하지 말 것’,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자기들의 조직적인 반란에 담임 선생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도록 웃음과 애교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일주일에 걸친 대화를 통해 나는 아이들의 개혁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 대부분을 실행하는 것도 아이들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스스로 고민하고 계획했던 일이었기에 아이들의 학급운영 개선 조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임원진을 새로운 모둠에 편성시키고, 모둠을 재구성하고 모둠원의 역할을 새롭게 부여하였다. 학급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그랬다. 아이들이 요구한 것은 ‘자율’과 ‘자존심’이었다. 좀 느리게 가더라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의 자존심을 존중받으면서 학급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국화빵처럼 모든 것을 지정해주는 학교의 규칙에 대해 아이들은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임원의 구성이나 학급회의의 주제조차 학교에서 획일적으로 정해주고 거기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는 더 이상 교육적이지 않다. 아이들의 작은 반란은 그러한 가르침의 개혁이 지금 절실하게 필요함을 일깨워준 것이다. 교사와 아이가 서로에게 ‘가르침을 배우고 배움을 가르치는’ 사이가 될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무엇을 배려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 김대유 서문여중 교사
“학교폭력을 예방하고 선도활동을 하기로 되어 있는 지킴이 모둠은 성격상 위원 개인의 성실성을 생각하여 선정해야 하는데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담임이 지명하여 구성한 것이 문제였다. 선도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다음과 같은 아이들로 위원을 대폭 교체해야 한다.”
“싱어롱 모둠이 종례시간에 음악 활동을 짜임새 있게 하려면 곡목 선정에서 악기를 빌리는 일까지 미리 계획을 갖고 시작했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지 않으니까 활동을 쉬고 있다.”
“학교에서 지정한 학급 간부들과 담임이 지정한 주제별 모둠의 위원들이 서로 해야 할 일의 영역이 중복되어 충돌을 일으킨다. 새로 짜야 한다.”
항의단의 지적은 담임에게 뼈아픈 충고로 인식되었다. 그만큼 학급운영을 주먹구구식으로 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덧붙여 담임의 태도까지 주문하였다. ‘자주 삐지지 말 것’, ‘담임을 그만 둔다고 협박하지 말 것’,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자기들의 조직적인 반란에 담임 선생이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도록 웃음과 애교를 아끼지 않았다. 결국 일주일에 걸친 대화를 통해 나는 아이들의 개혁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그 대부분을 실행하는 것도 아이들의 손에 맡기기로 했다. 스스로 고민하고 계획했던 일이었기에 아이들의 학급운영 개선 조치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임원진을 새로운 모둠에 편성시키고, 모둠을 재구성하고 모둠원의 역할을 새롭게 부여하였다. 학급은 모처럼 활기가 넘쳤다.
그랬다. 아이들이 요구한 것은 ‘자율’과 ‘자존심’이었다. 좀 느리게 가더라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스스로의 자존심을 존중받으면서 학급생활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국화빵처럼 모든 것을 지정해주는 학교의 규칙에 대해 아이들은 거부 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임원의 구성이나 학급회의의 주제조차 학교에서 획일적으로 정해주고 거기에 따르도록 강요하는 행위는 더 이상 교육적이지 않다. 아이들의 작은 반란은 그러한 가르침의 개혁이 지금 절실하게 필요함을 일깨워준 것이다. 교사와 아이가 서로에게 ‘가르침을 배우고 배움을 가르치는’ 사이가 될 수 있으려면 우리 사회가 진정으로 무엇을 배려해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 김대유 서문여중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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