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경선, 국가경영 비전 보여줘야
이성춘 언론인
1970년 3선개헌안이 공화당에 의해 날치기로 통과된 후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지진이 발생했다. 김영삼(YS), 김대중(DJ) 의원과 이철승 전 의원이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제기한 것이다.
한민당 이래 철저히 원로·장로체제로 운영되어온 전통야당으로서는 가히 혁명적 사건이었다. 때문에 유진산 당수는 “젖비린내 나는 것들이 감히 …”라는 표현으로 심히 못마땅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었다.
YS와 DJ의 후보대결은 주류가 당세를 70%정도 장악하고 있어 비주류까지도 YS의 압승을 점칠 정도였지만 DJ는 투표전날인 1970년 9월 29일 밤늦게까지 부인 및 김상현 의원들과 함께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줄 뻔히 알면서 대의원들을 찾아 한 표의 지지를 호소했다.
1차투표에서 압승을 거둔다는 전략아래 여유만만했던 1차투표에서 대의원 재석 885표 중 YS 421, DJ 382표로 과반수에 미달되자 크게 당황했다. 반면 기사회생의 가능성을 감지한 DJ는 휴식시간 동안 서울 시민회관 2층 화장실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이철승 전 의원 측에게 간곡히 협조를 요청했다. DJ가 명함뒷면에다 “후보로 밀어주면 형님을 당수로 밀겠다”고 쓴 약속명함을 건넨 것도 이 때였다.
2차투표 결과 재석 대의원 884명 중 DJ 458, YS 410표로 DJ가 극적으로 역전승했다. 누구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던 DJ의 바람, 돌풍이 시작됐고 7개월 뒤 박정희 대통령은 100만표 차이로 3선은 했지만 예기치 않은 DJ의 돌풍으로 곤욕을 치렀던 것이다.
노무현 돌풍의 실체에 정치권 당혹
바람의 종류는 많다. 태풍, 강풍, 훈풍, 미풍, 춘풍, 추풍, 돌풍, 광풍, 순풍, 질풍 등등 여러 가지다. 배경과 성격을 다르지만 32년전 DJ의 바람을 연상케 하는 ‘노무현 후보의 바람’은 ‘갑자기 세게 부는 바람’인 돌풍이라고 할 수 있다.
3월9일 제주에서 첫 지역경선이 시작되기 최소한 보름 전까지만해도 여론조사 결과 당내에서 예비후보들 중에서 이인제 후보보다 상당히 낮은 2~3위를 기록했던 노 후보가 울산과 광주에서 예상을 깨고 1위 돌풍을 일으키자 당원들도 놀랐고 이인제 후보도 놀랐고 강 건너의 이회창씨도 놀랐으며, 아마도 노 후보 자신도 놀랐을 것이다.
지난 수년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보다는 뒤지지만 당내에서는 줄곧 선두를 달려온 이인제 후보측은 느닷없는 노 후보 돌풍에 김심의 작용, DJ의 아들인 김홍일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청의 조직적 개입과 편들기에 의구심을 갖고 ‘노 후보를 DJ의 꼭두각시’라고 공격했으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당심(黨心)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소위 진보적인 20·30대 각계인사들이 주축이 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사이버 네트워크를 통한 지원과 기성 정치체제에 불만을 가진 인사들의 반발 등이 노 후보 돌풍의 배경으로 파악되고 있고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민주당의 앞으로 남은 시도경선은 전체 선거인 수의 45.5%를 차지하고 있는 부산, 경기, 서울 3곳이다. 현재 1위를 하고 있는 노 후보는 출신지인 부산에서 압승을 하고 경기 서울에서도 여세를 몰아 많은 득표로서 후보지명을 획득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이인제 후보 측은 부산에서 최선을 다하고 지사를 지낸 경기, 그리고 서울에서 큰 표를 얻어 대역전극을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사실 민주당의 후보경선은 노 후보의 돌풍에 따른 각 지역별 득표수에 보다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 정책공방 색깔 및 이념 논쟁 등은 실질적으로 심도 있게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제 민주당의 지역별 후보경선이 막바지에 접어들게 된 만큼 후보들은 정치 경제 노동 사회 교육 남북관계 등에 관해 분명한 정책기조와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정계개편, 대북 주적개념, 대북 지원의 한계, 국가보안법 문제, 노동정책, 재벌규제, 언론사 국유화 여부, 교육정책, 3대 게이트, DJ 아들 3형제의 의혹에 대한 수사방법, 사회변혁, 집단소송제의 채택여부, 교육 및 복지정책, 의약분업 등등에 대해 분명한 정책적 입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치에는 민심이 있을 뿐이다
이제 경선 막바지를 앞두고 민주당의 후보들은 머리를 식히고 중요한 국가적 이슈와 분야에 대해 정책적 입장을 분명히 밝혀 국민이 선택하고 선거인단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소위 정계 개편구상만 해도 그렇다. 정계개편의 구상이 노 후보의 독자안인지 일부에서 의구심을 갖듯이 ‘보이지 않는 큰손’의 그림인지 국민들은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경선은 막바지 대회전을 남겨놓고 있다. 노무현 이인제 정동영 세 후보는 국가경영의 큰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당원과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제기한 주장과 발언들에 관해서는 마땅히 두고두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정치에 기적은 없는 것이다. 오직 정확한 당심(黨心) 민심(民心)만 있을 뿐이다.
이성춘 언론인
이성춘 언론인
1970년 3선개헌안이 공화당에 의해 날치기로 통과된 후 야당인 신민당에서는 깜짝 놀랄만한 지진이 발생했다. 김영삼(YS), 김대중(DJ) 의원과 이철승 전 의원이 1971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를 선언, 이른바 40대 기수론을 제기한 것이다.
한민당 이래 철저히 원로·장로체제로 운영되어온 전통야당으로서는 가히 혁명적 사건이었다. 때문에 유진산 당수는 “젖비린내 나는 것들이 감히 …”라는 표현으로 심히 못마땅해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냉엄한 현실이었다.
YS와 DJ의 후보대결은 주류가 당세를 70%정도 장악하고 있어 비주류까지도 YS의 압승을 점칠 정도였지만 DJ는 투표전날인 1970년 9월 29일 밤늦게까지 부인 및 김상현 의원들과 함께 ‘계란으로 바위 치기’인줄 뻔히 알면서 대의원들을 찾아 한 표의 지지를 호소했다.
1차투표에서 압승을 거둔다는 전략아래 여유만만했던 1차투표에서 대의원 재석 885표 중 YS 421, DJ 382표로 과반수에 미달되자 크게 당황했다. 반면 기사회생의 가능성을 감지한 DJ는 휴식시간 동안 서울 시민회관 2층 화장실에서 캐스팅보트를 쥔 이철승 전 의원 측에게 간곡히 협조를 요청했다. DJ가 명함뒷면에다 “후보로 밀어주면 형님을 당수로 밀겠다”고 쓴 약속명함을 건넨 것도 이 때였다.
2차투표 결과 재석 대의원 884명 중 DJ 458, YS 410표로 DJ가 극적으로 역전승했다. 누구도 불가능한 것으로 여겼던 DJ의 바람, 돌풍이 시작됐고 7개월 뒤 박정희 대통령은 100만표 차이로 3선은 했지만 예기치 않은 DJ의 돌풍으로 곤욕을 치렀던 것이다.
노무현 돌풍의 실체에 정치권 당혹
바람의 종류는 많다. 태풍, 강풍, 훈풍, 미풍, 춘풍, 추풍, 돌풍, 광풍, 순풍, 질풍 등등 여러 가지다. 배경과 성격을 다르지만 32년전 DJ의 바람을 연상케 하는 ‘노무현 후보의 바람’은 ‘갑자기 세게 부는 바람’인 돌풍이라고 할 수 있다.
3월9일 제주에서 첫 지역경선이 시작되기 최소한 보름 전까지만해도 여론조사 결과 당내에서 예비후보들 중에서 이인제 후보보다 상당히 낮은 2~3위를 기록했던 노 후보가 울산과 광주에서 예상을 깨고 1위 돌풍을 일으키자 당원들도 놀랐고 이인제 후보도 놀랐고 강 건너의 이회창씨도 놀랐으며, 아마도 노 후보 자신도 놀랐을 것이다.
지난 수년간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의 이회창 후보보다는 뒤지지만 당내에서는 줄곧 선두를 달려온 이인제 후보측은 느닷없는 노 후보 돌풍에 김심의 작용, DJ의 아들인 김홍일 의원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연청의 조직적 개입과 편들기에 의구심을 갖고 ‘노 후보를 DJ의 꼭두각시’라고 공격했으나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당심(黨心)을 돌리지 못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소위 진보적인 20·30대 각계인사들이 주축이 된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의 사이버 네트워크를 통한 지원과 기성 정치체제에 불만을 가진 인사들의 반발 등이 노 후보 돌풍의 배경으로 파악되고 있고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작용’은 여전히 미궁에 빠져있다.
민주당의 앞으로 남은 시도경선은 전체 선거인 수의 45.5%를 차지하고 있는 부산, 경기, 서울 3곳이다. 현재 1위를 하고 있는 노 후보는 출신지인 부산에서 압승을 하고 경기 서울에서도 여세를 몰아 많은 득표로서 후보지명을 획득한다는 전략이다. 반면 이인제 후보 측은 부산에서 최선을 다하고 지사를 지낸 경기, 그리고 서울에서 큰 표를 얻어 대역전극을 펼치겠다는 구상이다.
사실 민주당의 후보경선은 노 후보의 돌풍에 따른 각 지역별 득표수에 보다 많은 관심이 집중되었을 뿐 정책공방 색깔 및 이념 논쟁 등은 실질적으로 심도 있게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 따라서 이제 민주당의 지역별 후보경선이 막바지에 접어들게 된 만큼 후보들은 정치 경제 노동 사회 교육 남북관계 등에 관해 분명한 정책기조와 입장을 밝힐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로는 정계개편, 대북 주적개념, 대북 지원의 한계, 국가보안법 문제, 노동정책, 재벌규제, 언론사 국유화 여부, 교육정책, 3대 게이트, DJ 아들 3형제의 의혹에 대한 수사방법, 사회변혁, 집단소송제의 채택여부, 교육 및 복지정책, 의약분업 등등에 대해 분명한 정책적 입장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정치에는 민심이 있을 뿐이다
이제 경선 막바지를 앞두고 민주당의 후보들은 머리를 식히고 중요한 국가적 이슈와 분야에 대해 정책적 입장을 분명히 밝혀 국민이 선택하고 선거인단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소위 정계 개편구상만 해도 그렇다. 정계개편의 구상이 노 후보의 독자안인지 일부에서 의구심을 갖듯이 ‘보이지 않는 큰손’의 그림인지 국민들은 궁금해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경선은 막바지 대회전을 남겨놓고 있다. 노무현 이인제 정동영 세 후보는 국가경영의 큰 문제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혀 당원과 국민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제기한 주장과 발언들에 관해서는 마땅히 두고두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정치에 기적은 없는 것이다. 오직 정확한 당심(黨心) 민심(民心)만 있을 뿐이다.
이성춘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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