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을 여는 책 | 니그로] 아프리카와 흑인에 관한 짧은 이야기

지역내일 2013-09-13 (수정 2013-09-13 오후 2:40:09)

니그로우리는 아프리카와 흑인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실은 얼마나 모르는지도 모를 정도로 모르고 있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전에는 이름조차 생소했던 버락 오바마가 2008년 마치 땅속에서 불쑥 솟아난듯이 급작스럽게(?) 대선주자로 부각되면서 마침내 대통령직을 쟁취했을 때 우리는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나왔다며 세계와 함께 놀라고 신기해했다. 하지만 우리 한국인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상식은 상당 부분 미 대륙중심, 그것도 아프리카계 미국인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그래서 남북 전쟁이나 흑인 민권운동의 배경은 이해하고 공감해도 그것은 인도주의나 평등주의를 바탕으로한 상식적 소견의 범주에 머무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검은 대륙 아프리카"에 대해서는 그와는 좀 별도의, 매우 낮은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 증거로 쿠데타나 내란, 학살 같은 분쟁뉴스와 신생국 독립이나 사이코 독재자의 등장같은 정치적 '사건' 중심의 아프리카 뉴스는 일시적으로 반짝 국제적 관심사에 오르곤 하지만 평생 국제뉴스만 다뤄온 언론인들조차도 어느 나라가 어느 나라인지 정확한 지리나 역사조차 아리송해 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아프리카는 그 오랜 문명의 역사와 문화유산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노예공급지에서 현재의 자원공급지로 역할만 바뀌었을 뿐, 지구촌의 영원한 "을(乙) "의 위치에 머물러 있다. 오랜 식민주의 수탈에서 살아남았지만 정치적 독립 후에도 갖가지 교묘한 수탈과 낙후된 삶에서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더 많다.

"인종장벽의 문제"갈파한 흑인학자
이 책 "니그로"(The Nigro)는 이미 100년전에 "20세기의 문제는 인종장벽의 문제다"라고 선언하며 미국 최초로 미국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를 창설하고 범아프리카주의의 이론을 주창한 최초의 흑인 학자, 민권운동가인 윌리엄 에드워드 버그하트 듀보이스의 많은 저작물중 1915년에 출간된 고전이다. 그는 이 책 외에도 "필라델피아의 니그로"(1899) "흑인의 영혼"(1903) "니그로 백과사전"(1946) "평화를 위한 전투"(1952)등을 남겼다.

1868년 미국 매사츠세츠주 그레이트베링턴 태생의 그는 링컨대통령의 노예해방선언 5년후 태어나 아직 흑인에 대한 편견이 만연한 정치적 격동기를 살며 일찍 인종주의 장벽을 간파한 대단한 혜안과 학식, 용기를 겸비한 흑인 선각자이기도 했다.

피스크대학과 베를린대학에서 수학하고 흑인 최초로 하버드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듀보이스는 아틀랜타대 교수로 역사학과 사회학, 경제학을 가르쳤고 1905년 나이아가라 운동을 결성하여 인종분리와 공민권 박탈에 맞서 미국 최초의 흑인민권 운동에 앞장섰다.

나중에 신생공화국 가나의 은크루마 대통령 초청으로 아프리카로 이주, 1962년엔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가나 국적을 취득한뒤 1963년 93세로 사망할 때까지 아프리카에 살았다.

"니그로"는 미국사회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사라진 말이다. 노예시대의 유산으로 흑인을 모욕하는 뉘앙스가 강해서다. '니거'(nigger)란 비속어도 마찬가지다. 요즘은 점잖게(?) "n자로 시작하는 말"( 'n' word)이라며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다는 듯이 표현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오히려 현대 미국사회에서도 얼마나 인종차별이 완강하게 뿌리 내리고 있으며 흑인들의 깊은 상처와 예민한 반응이 일상화 되어있는지를 말해준다.

"완벽한 흑인 역사를 말하기에는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 아프리카에 대한 고고학적 연구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이고, 아라비아어나 포르투갈어 같은 다른 언어에 대한 이해도 아직 보잘 것 없다. 오늘날 아프리카인을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이른바 교양인들조차 피부색이 더 검은 사람들에 대한 인종적 편견이 너무 심하다....학구적 논점을 명확하게 하려면, 훨씬 더 전문적이고 역사적, 과학적인 연구를 축적할 필요가 있다"고 그는 이 책의 서문을 시작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은 아직 엄연한 현실로 남아있다. 다만 흑인 비하나 차별이 '공식적으로' 법을 통해 금지되어 있고 개인이나 집단의 편견 속으로 내면화되었을 뿐이다.

듀보이스가 이 '짧은 책'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프리카와 흑인에 대해 전혀 무지한, 그리고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조차 힘들었던 미국 사회에 대한 "뼈있는 한마디"와 학자다운 정보제공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책의 각 장은 아프리카, 흑인의 도래, 에티오피아와 이집트(아프리카 문명 발상지), 니제르 강과 이슬람, 기니와 콩고(고대문명과 번영기), 그레이트 레이크와 짐바브웨, 땅 끝에서 벌어진 인종전쟁 (남아프리카 부시먼의 수난), 아프리카 문화, 노예무역, 서인도제도와 라틴아메리카, 미국의 니그로, 니그로문제등의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인종편견은 노예무역 등 역사 탓
듀보이스는 인간의 피부색에 대한 현대인의 편견의 원인은 신체나 문화적 요인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에서 찾아야 하며, 그 대답은 현대 니그로 노예제도와 노예무역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입증하기 위해 그는 '8장 아프리카 문화'에서 니그로가 기질적으로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며 예식과 호의가 삶의 특성임을 리빙스턴을 비롯한 탐험가들의 말을 통해 예시했다. 또한 서구 지식인사회의 아프리카, 아프리카인에 대한 오해와 경멸에도 불구하고 고대바빌론에서 현대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세계 문명을 이끈 지도자들, 과학자들, 문학과 음악, 예술 방면에서 뛰어난 흑인들을 예시한다.

결국 '니그로'가 열등한 종족으로 알려진 것은 뛰어나거나 업적을 이룬 흑인, 재능있는 흑인들은 모두 니그로가 아니라는 전제로 니그로에서 뺐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특히 미국사회에서 흑인노예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과 학대에서 비롯된 편견은 정치적 박해와 인권침해, 테러 같은 만행을 상당히 오랫동안 당연시하게 만들었다.

지구상의 인류중 대부분은 피부가 하얗지 않으니 미래의 세상은 유색인이 만드는 세계가 될 터인데 이제는 인간을 짐승처럼 사냥하는 시대로부터 이성과 선의가 승리하는 인권시대로 가야한다고 듀보이스는 말한다.

이 책의 번역은 한국에서는 거의 유일한 듀보이스 전공자 황혜성교수(한성대)가 맡았다. 그의 말대로 책에서 드러나는 듀보이스의 "시대를 뛰어넘는 예지와 혜안"에 감명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역시 인종의 차이는 우열의 문제가 아님을 재확인 시켜주는 값진 책이다.

삼천리
W.E.B. 듀보이스 지음
황혜성 옮김
1만5000원

차미례 언론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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