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만 해도 시골 농촌에서는 소를 팔기 위해 서울 동대문까지 소를 몰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날이 저물면 주막에 들러 소에게 쇠죽을 쑤어 먹이고 여정을 풀었다가 다음날 아침 길을 떠나는 모습은 시골마을마다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집에서 먹인 암소 한 마리가 온 식구의 살림밑천이고, 전 재산이었던 만큼 소 아끼는 마음도 지극 정성이어서, 행여나 자갈길에 소발굽이 상할까 싶어 짚신에 물을 묻혀 갈아 신기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서울 장터에 나가 소를 팔던 시절, 아직도 그 시절의 추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반세기 역사의 선산 우(牛)시장
매달 닷새 간격으로 열리는 5일장 선산 우시장은 세월의 무게도 잊은 채 여전히 소를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분주히 아침을 연다. 아침 7시에 장이 섰다가 2시간이 채 못돼 파하는 게 보통이다.
우시장이라고 해서 소만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닭, 오리, 토끼, 흑염소, 개 등 가축을 사고 팔려는 사람들도 한 켠에 자리를 차고앉아 흥정을 벌인다. 우시장에서 그리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왁자지껄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선산재래시장도 우시장이 서는 날 함께 연다.
“예전에는 선산 뿐 아니라, 해평, 장천, 인동, 도계, 옥성, 무을, 산동 등 각 면마다 장이 설 정도로 소를 사고 파는 일이 흔했죠. 요즘은 예전과 달라서 장날 풍경도 많이 변했습니다.”
60여년 넘게 소를 키워오고 있다는 옥성면 덕촌리의 하송희씨(75)는 예전 우시장의 향수에 아직도 흠뻑 젖어있는 듯 했다. 이곳 선산 우시장은 지난 1955년 지금의 화조리 선산소방서 터에서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장이 열리다가, 선산시장상가자리를 거쳐 지난해 자리를 옮겨왔다.
빨간 모자 중개인, 10년 전엔 밀매단 감시활동도
매달 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 닷새 간격으로 열리는 선산 우시장의 중개인은 총 11명. 빨간 모자를 쓴 이들 중개인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원만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격절충을 돕는 일을 주로 한다. 중개인들을 관리하고 지도하는 일은 구미축협 선산지점에서 맡고 있다.
중개인의 역할도 많이 달라졌다. 불과 10여년 전까지 중개인은 시청 공무원, 축협 직원들과 함께 밀매단 단속도 맡았었다. 당시 축산법 상 우시장을 통하지 않은 거래는 모두 밀거래 규정하고, 소를 판 사람과 산 사람 모두 벌금을 물어야 했다.
30년 경력의 중개인 송춘국(선산읍 농소리·68)씨는 한 눈에 좋은 소를 알아보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
“소의 나이는 치아의 개수와 마모정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예전에는 500kg을 넘는 소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육우사육이 늘고, 기술도 발달해서 700kg이 넘는 소들도 많습니다. 예전에는 털의 빛깔에 연황색이 도는 소가 고품종이었던 것과는 달리 요즘은 붉은기가 돌아야 육질이 좋습니다.”
서울까지 소 팔러 다니던 시절, 소 발굽에 짚신까지
흐른 세월만큼 달라진 게 있다면 우선 장에서 사고 파는 소의 물량 자체가 줄었다. 우시장에서 거래되는 소들은 대부분 번식을 위한 어미소와 송아지들인데, 식용을 위한 육우는 식육점 상인들과의 직거래나, 축협을 통해 출하되는 게 보통이다.
이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소를 직접 몰고 서울까지 올라가 파는 사람은 없다. 서울에 소를 운반해야 할 상황에서도 트럭이라는 유용한 운송수단 덕분에 더 이상 소에게 신길 짚신이 필요 없게 됐다.
“선산에서 서울 동대문까지 소를 몰고 걸어가면 가는 데만 꼬박 8박9일이 걸렸죠. 서울 장에 가면 값을 후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려도 소 한 마리 값은 족히 뽑을 수 있었습니다.”
60년대∼70년대에 소를 몰며 서울 장에 올라 다녔다는 김정욱(선산읍 교리·57)씨는 65년도 당시 암소 한 마리 값을 5500원∼6000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소에 신기는 짚신도 서울까지 가려면 10죽은 족히 있어야 했단다.
“불과 3시간이면 서울까지 달려갈 수 있고, 예전처럼 시세 차이가 크지도 않고 소파는 일로만 본다면야 이젠 아주 좋은 세상이 온 겁니다.”
소는 여전히 농촌살림의 주요 밑천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서 좋아지기만 한 건 아니다. 농가에서는 쇠고기수입개방으로 들썩거리는 육류가격과 수입고기 한우둔갑문제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요즘 한우 암소의 가격은 생체 1kg당 8500원 정도인데, 지난 11월만 해도 1만500원까지 치솟았을 만큼 불안정한 상태.
중개인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지칠복 회장(해평면 낙성리·64)은 소 값에 울고 웃는 축산농의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하나다.
“5공 시절에는 소 값 폭락으로 자살하는 축산농가들이 생겨나기도 했었습니다. 한우는 쌀과 함께 우리 농촌경제를 지탱하는 큰 기둥이죠.”
소 한 마리면 살림밑천 된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른 말이 아닌 듯 싶다. 소에 웃고, 소에 우는 우리지역 축산농민들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선산 우시장. 아련한 향수에 젖어 음매음매 언덕에서 풀을 뜯는 누렁소를 떠올리며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집에서 먹인 암소 한 마리가 온 식구의 살림밑천이고, 전 재산이었던 만큼 소 아끼는 마음도 지극 정성이어서, 행여나 자갈길에 소발굽이 상할까 싶어 짚신에 물을 묻혀 갈아 신기기도 여러 번이었다. 그렇게 서울 장터에 나가 소를 팔던 시절, 아직도 그 시절의 추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반세기 역사의 선산 우(牛)시장
매달 닷새 간격으로 열리는 5일장 선산 우시장은 세월의 무게도 잊은 채 여전히 소를 팔고 사는 사람들로 분주히 아침을 연다. 아침 7시에 장이 섰다가 2시간이 채 못돼 파하는 게 보통이다.
우시장이라고 해서 소만 거래되는 것은 아니다. 닭, 오리, 토끼, 흑염소, 개 등 가축을 사고 팔려는 사람들도 한 켠에 자리를 차고앉아 흥정을 벌인다. 우시장에서 그리 얼마 멀지 않은 곳에 왁자지껄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선산재래시장도 우시장이 서는 날 함께 연다.
“예전에는 선산 뿐 아니라, 해평, 장천, 인동, 도계, 옥성, 무을, 산동 등 각 면마다 장이 설 정도로 소를 사고 파는 일이 흔했죠. 요즘은 예전과 달라서 장날 풍경도 많이 변했습니다.”
60여년 넘게 소를 키워오고 있다는 옥성면 덕촌리의 하송희씨(75)는 예전 우시장의 향수에 아직도 흠뻑 젖어있는 듯 했다. 이곳 선산 우시장은 지난 1955년 지금의 화조리 선산소방서 터에서 40년 가까운 세월동안 장이 열리다가, 선산시장상가자리를 거쳐 지난해 자리를 옮겨왔다.
빨간 모자 중개인, 10년 전엔 밀매단 감시활동도
매달 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 닷새 간격으로 열리는 선산 우시장의 중개인은 총 11명. 빨간 모자를 쓴 이들 중개인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에서 원만한 거래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가격절충을 돕는 일을 주로 한다. 중개인들을 관리하고 지도하는 일은 구미축협 선산지점에서 맡고 있다.
중개인의 역할도 많이 달라졌다. 불과 10여년 전까지 중개인은 시청 공무원, 축협 직원들과 함께 밀매단 단속도 맡았었다. 당시 축산법 상 우시장을 통하지 않은 거래는 모두 밀거래 규정하고, 소를 판 사람과 산 사람 모두 벌금을 물어야 했다.
30년 경력의 중개인 송춘국(선산읍 농소리·68)씨는 한 눈에 좋은 소를 알아보는 베테랑 중의 베테랑.
“소의 나이는 치아의 개수와 마모정도를 보면 쉽게 알 수 있죠. 예전에는 500kg을 넘는 소를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요즘은 육우사육이 늘고, 기술도 발달해서 700kg이 넘는 소들도 많습니다. 예전에는 털의 빛깔에 연황색이 도는 소가 고품종이었던 것과는 달리 요즘은 붉은기가 돌아야 육질이 좋습니다.”
서울까지 소 팔러 다니던 시절, 소 발굽에 짚신까지
흐른 세월만큼 달라진 게 있다면 우선 장에서 사고 파는 소의 물량 자체가 줄었다. 우시장에서 거래되는 소들은 대부분 번식을 위한 어미소와 송아지들인데, 식용을 위한 육우는 식육점 상인들과의 직거래나, 축협을 통해 출하되는 게 보통이다.
이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소를 직접 몰고 서울까지 올라가 파는 사람은 없다. 서울에 소를 운반해야 할 상황에서도 트럭이라는 유용한 운송수단 덕분에 더 이상 소에게 신길 짚신이 필요 없게 됐다.
“선산에서 서울 동대문까지 소를 몰고 걸어가면 가는 데만 꼬박 8박9일이 걸렸죠. 서울 장에 가면 값을 후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에 힘들고 시간이 많이 걸려도 소 한 마리 값은 족히 뽑을 수 있었습니다.”
60년대∼70년대에 소를 몰며 서울 장에 올라 다녔다는 김정욱(선산읍 교리·57)씨는 65년도 당시 암소 한 마리 값을 5500원∼6000원으로 기억하고 있다. 소에 신기는 짚신도 서울까지 가려면 10죽은 족히 있어야 했단다.
“불과 3시간이면 서울까지 달려갈 수 있고, 예전처럼 시세 차이가 크지도 않고 소파는 일로만 본다면야 이젠 아주 좋은 세상이 온 겁니다.”
소는 여전히 농촌살림의 주요 밑천
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고 해서 좋아지기만 한 건 아니다. 농가에서는 쇠고기수입개방으로 들썩거리는 육류가격과 수입고기 한우둔갑문제 때문에 마음 편할 날이 없다. 요즘 한우 암소의 가격은 생체 1kg당 8500원 정도인데, 지난 11월만 해도 1만500원까지 치솟았을 만큼 불안정한 상태.
중개인협회의 회장을 맡고 있는 지칠복 회장(해평면 낙성리·64)은 소 값에 울고 웃는 축산농의 모습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 중 하나다.
“5공 시절에는 소 값 폭락으로 자살하는 축산농가들이 생겨나기도 했었습니다. 한우는 쌀과 함께 우리 농촌경제를 지탱하는 큰 기둥이죠.”
소 한 마리면 살림밑천 된다는 옛말이 하나도 그른 말이 아닌 듯 싶다. 소에 웃고, 소에 우는 우리지역 축산농민들의 따뜻한 체온을 느낄 수 있는 선산 우시장. 아련한 향수에 젖어 음매음매 언덕에서 풀을 뜯는 누렁소를 떠올리며 들러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홍정아 리포터 tojoung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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