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캠퍼스 밖 맴도는 한국의 대학교수(고세훈 2002.03.11)

지역내일 2002-03-12
캠퍼스 밖 맴도는 한국의 대학교수
고세훈 고려대학교 교수 경제행정학부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에게 고시야말로 출세의 지름길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말속엔 지식과 권력 그리고 명예와 금력이 난마처럼 얽히던 시대의 그늘이 서려있다. 고시정원이 늘어나고 취업전망은 요원하며 사회가 민주화된 만큼 고시의 원래 의미도 많이 ‘퇴색’했을 것이다. 그러나 캠퍼스마다 불어 치는 고시열풍을 바라보는 심사가 고약하기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사회는 지식(인) 위주의 보상체계가 두드러진 사회이다. 고시공부와 인격적 연마가 별무상관인 반면, 그 과정이 길고 외롭고 고단할수록 훗날의 보상에 대한 집착은 비례적으로 클 터이니, 농축된 이기심 속에 어떤 고급한 일확천금의 심리가 더불어 자라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최근의 신지식인 소동 속에서 기능인으로 평가 절하된 바 있던 대학교수라는 지식인 부류도 있다. 박사학위에 이르는 절차탁마의 그 고달픈 과정 역시 이 땅에서의 ‘교수됨’이 주는 보상을 위한 외줄기 집념의 시간들은 아니었는지. 지식시장의 담장이 저리 아득한 것도 일단 획득된 기득권에 대한 본능적 집단의식의 소산일 터이지만, 권력과 명예의 언저리에서 서성이는 지식인의 모습이야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식사회의 오만한 군중심리 유감
그래도 과거 권위주의 시절엔 모시는 쪽에서의 삼고초려라는 체면 세워주기의 형식이나마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들어가려는 쪽에서 노심초사의 간절함을 먼저 신호할 정도에 이르렀으니, 격세지감이라면 이 또한 민주화의 위력일지 모른다. 그런데 저마다 진입의 변은 거창할지언정, 퇴진은 거의 변함없이 불명예의 강제 퇴진이니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교수됨’에 권력과 명예가 따른다면, 그것은 대학교수에게 교육과 연구를 통해 지식의 시공간적 이월(移越)을 책임지는 전권(全權)이 위임되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풍성함이란 것도 구태여 따진다면 연구실의 고독한 충일(充溢)이 자연스럽게 보편성과 연대를 획득한 결과이다. 물론 교수들도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발언하며 다양한 방식으로 정치에 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예컨대 대학교수들이 특정정치인이나 언론매체가 조직한 대외용 포럼에 집단적으로 참여하거나, 돌연 시대적 책임 운운하며 전시용 포럼을 조직하여 구태의연한 이데올로기를 선전하고 조잡한 정책내용으로 대안을 왜곡하는 등, 무더기로 캠퍼스 밖을 기웃거리는 일은 이른바 선진국에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다. 대학교수들이 특별히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한 사회가 그들에게 특별히 허용한 여가와 직업적 안정이란 그렇게 활용하라고 준 것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 지식인 포럼이 특정 주요 매체의 주도로 출범하면서 국민소득 몇 만불의 사회를 첫 번째 담론으로 선택한 것은 해당 언론의 성장주의적 논지를 그대로 추인 하는 것 같아 이만저만 실망스럽지 않다. 지식 위주의 사회적 보상체계나 유인체계가 뻔히 변함없는 데, ‘잘 살아보세’의 양양한 미래를 위해 느닷없이 ‘튀는’ 괴짜를 고무하는 방법론적 개인주의는 따라서 무슨 의도인가. 그 언론매체의 정체성에 대한 지식사회 일각의 논란이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은 접어두자. 매체가 곧 권력이라는 말도 진부하다. 그러나 기존의 보상구조 속에서 탄탄대로를 걸어온 사람들이 다음 세대를 향해 너희만은 큰 길 아닌 곁길을 택하라고 충고하는 용기는 무슨 객기인가. 칼 만하임의 “부유(浮遊)하는 지식인”이란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위한 지식인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수사였으며, 지금처럼 캠퍼스 밖을 부유하며 양명(揚名)을 획책하기에 바쁜 지식인 상을 지칭한 것은 아니었다. 무슨 독립운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민주화투쟁을 위해 새삼스럽게 비장한 것도 어색한 시절에, 이러한 집단적 결속력을 과시하려 드는 지식사회의 오만한 군중심리는 도대체 무엇인가.

물욕보다 강한 것이 명예욕
지식(인)은, 재물이 그런 것처럼, 사회적으로 소비되어야 한다. 지식과 재산은 모두 사회적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사회구조, 제도, 관행, 문화를 변화시킴으로써 개개인의 잠재력과 품성이 최대한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데 기여해야 한다. 개인들을 향한 도덕적 외침이 설득력을 발휘하는 것은, 개인들의 도덕적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는 구조개혁에 대한 부단한 노력이 선행 또는 병행될 때 비로소 정당성을 띠는 것이다. 도덕적 개인과 비도덕적 사회를 대비시킨 라인홀드 니버의 통찰이 여기에서 빛나거니와, 장구한 세월동안 뒤틀리고 왜곡된 구조 속에서 개인들의 희생을 강요해 온 한국사회의 경우는 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
명심보감에 무욕이(無慾易)요 무명난(無名難)이라 했다. 과연 명예욕을 누르기란 물욕 보다 훨씬 어려운가 보다. 운 좋으면 명예란 것에도 종종 권력이 따라 붙을 수 있고, 심심치 않게 물질의 욕구까지 채워준다면, 이 또한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고세훈 고려대학교 교수 경제행정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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