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상황을 놓고 정부 부처간에도 이견이 노출되고 있다. 논쟁의 시발은 박 승 한국은행 총재의 ‘금리인상 가능’발언에서 비롯됐다. 한은은 올해 성장전망치를 당초 3.9%에서 5.7%로 올려 잡았다. 한은 특히 하반기에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6.2%의 성장이 예견된다며 과잉유동성과 물가상승에 따른 경기과열 우려를 공식 제기했다.
이에 대해 전윤철 신임 경제부총리는 “수출과 설비투자 회복을 좀 더 지켜봐야 하며 1분기 경기지표가 나오는 5월 20일 쯤 하반기 정책운용 기조를 결정하겠다”며 “당장 경기가 ‘과열이다’또는 ‘아니다’라고 판단하기는 이르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밝혔다.
재경부는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경기를 섣부르게 거시정책을 변경, 죽일 이유가 없다며 당분간 ‘성장’에 정책의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반면 한은은 지난 3월 총유동성(M3)이 연간 감시범위 상한선 12%를 웃도는 과잉유동성 상태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또 하반기부터 양대선거와 월트컵 특수 등이 겹쳐 물가상승을 감안한 적정성장률인 잠재성장률을 웃도는 경기과열을 우려가 있다며 ‘안정’에 정책의 중심을 두겠다는 포석을 폈다.
현 경제상황을 두고 정부 당국자 간에도 이처럼 입장차가 드러나는 것은 한국경제의 고질인 ‘양극화 현상’이 최근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는 IMF 이후 계층간 빈익빈 부익부라는 양극화 현상이 미국 수준에 가깝게 진행되고 있다. 지니계수와 소득배율 통계들이 우리 사회의 소득 양극화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 하나의 양극화는 수도권과 지방간의 격차이다.
이 같은 계층간 지역간 격차에 이어 최근 정부의 내수 진작 정책에 따른 경기부양으로 산업간의 격차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내수진작을 위한 건설업의 부양에 의해 부동산 투기가 재연되고 덩달이 집값 전세값이 오르면서 경제의 심각한 왜곡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경기회복 자료를 연일 언론을 통해 발표하고 있는 이면에는 가계부채의 증가와 신용카드 남발에 의한 개인 빚 증가라는 ‘가계 및 개인파산’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97년 IMF가 기업빚 증가에 따른 외환유동성 위기였다면 이제 한국은 가계파산 사태라는 IMF 후유증을 염려해야하는 사태를 맞게 됐다.
KDI에 따르면 지난해 가계부문의 부채규모가 한 해 벌어들인 소득에서 세금 등을 내고 실제 쓸 수 있는 가처분 수준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가계부문 부채가 명목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65%에 달하는 등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특히 자금순환표상 가계부문 부채의 가처분소득 비중은 지난해 99.8%로 전년도 86.9%에 비해 12.9% 포인트 높아졌다. 이 지표를 해석해보면 가계부문 부채에 대한 가처분소득 비중이 99.8%에 달한다는 것은 가계가 연간 소득에서 세금, 이자 등 지출이 불가피한 비용을 제외하면 나머지 돈을 모두 빚을 갚기 위해 써야한다는 의미이다. 또 가계부문의 GDP비중은 81년 19.3%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64.8%에 달해 20년새 45.5% 포인트나 증가했다. 외환위기 직후인 98년과 2000년 56.2%에 비해서도 각각 13.9%포인트, 8.6%포인트가 각각 늘었다. 이처럼 금융이라고 하는 ‘자원’이 생산적인 부분이 아닌 소비에 집중되면서 금융권 자체로는 수익을 냈을지 모르지만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데는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권에서 나간 가계대출은 그렇다면 다 어디에 가 있는가.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대출 17조 4350억원의 절반 이상이 주택매입 자금으로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택매입에 56.1%의 가계대출용 금융이 쏟아져 들어간 것이다. 이 같은 주택매입용 대출자 가운데 91.4%는 유주택자이며 무주택자는 8.6%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주택매입이 서민들의 주거난을 해결하기 위한 것보다도 유주택자들이 부동산투자용으로 금융을 이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김대중 정부의 경기 진작을 위한 내수 부양책은 건설경기를 자극시키고 그 결과 부동산 투기를 일으켜 경제의 양극화와 ‘망국병’을 불러들이고 말았다. 오른 집값과 전세값을 감당하기 위해 근로자를 비롯한 일하는 사람들은 이제 반드시 임금인상을 요구하게 돼있고 그것은 노사분규를 비롯 각종 사회적 불안이라는 비용을 치르게 돼있다. 올해 스포츠 행사와 선거가 끝나는 내년이 걱정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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