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와 진보, 누가 옳은가
유팔무 한림대학교 교수 사회학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소장
민주당 대통령후보 예비경선을 계기로 우리사회에서는 보수와 진보에 관한 논쟁이 한층 더 가속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는 “당신의 색깔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 제기될 뿐 아니라, 자신의 이념적 색깔과 성향을 떳떳이 밝히는 새로운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다. “나는 보수주의자다.”(김종필, 김용갑) “나는 민주당이 그렇듯이 중도개혁적이다.”(노무현, 이인제) “나는 개혁적 보수의 입장이다.”(이회창) 대단히 흥미로운 현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적인 논쟁의 과정에서 스스로 진보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점, 그래서 진보가 애매하게 평가되거나 범죄 혹은 나쁜 일처럼 매도되는 공백이 크다는 점이다.
그러나, 진보는 애매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좋은 것이며, 떳떳하게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보수가 비밀스러워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보수라고 하는 것은 현상유지, 즉 현재의 사회질서와 사회체제, 기득권 등을 그대로 보존, 유지하는 것이 좋고 옳다는 입장이다. 결코 애매한 뜻이 아니다. 진보 역시 그 반대이기 때문에, 즉 현재의 사회질서와 체제, 기득권 등을 바꾸자는 입장, 바꾸는 것이 좋고 옳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애매한 뜻이 아니다.
진보의 목소리 더 당당하고 떳떳해야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현재의 사회질서가 좋고 바람직한 것인가, 따라서 보존, 유지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재벌이 지배하는 체제와 사회질서, 빈익빈부익부가 지속되는 우리사회, 동서간의 지역, 남북간의 이념으로 갈라져 갈등, 반목하는 ‘분단현실’, 남녀 특권층의 권위적 지배의 문제, 부정부패, 환경파괴와 오염, 망국적 입시교육과 과외열풍 등등 오늘날 한국의 사회질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사회질서를 바로잡아 우리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 그리고 ‘함께 잘 사는 사회’로 바꾸어 나가자는 입장이 진보이다. 반면에 그런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 보존하자는 입장이 보수이다. 과연 어느 쪽이 옳고 떳떳한가. 그 답은 사실 명백하다. 누가 정의의 편인지도 분명하다.
그런데 왜 보수 쪽의 목소리는 크고, 진보 쪽의 목소리는 우물쭈물하고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가.
복지제도를 만들자고 하면, 보수주의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다. 아니, 사회주의다.” 재벌을 해체하고 서울대를 해체하자는 진보 쪽 주장에 대해, 보수는 곧바로 이를 ‘위험한 발상’이라든가, ‘사회주의’라든가, 우리사회를 전복시키려는 ‘좌경세력의 음모’라는 식으로 입을 막아 버린다. 그러면 진보는 대개 공포에 질려 “그게 아니라…”하는 식으로 물러나곤 한다. 사실 누가 옳고 그른지, 누가 정의 편인지를 따져 보면,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가. 보수는 옳고 말을 잘하는데, 진보는 잘못이고 말이 달리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크게 보아 다음 두 가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보수도 그렇지만 진보에는 불법을 감수하는 입장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모든 진보가 불법으로 단속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보수적이며, 힘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힘에 속한다. 그 법을 과연 누가 만들었느냐, 누구의 뜻에 따라, 누구의 힘에 의해 그 법이 만들어졌느냐, 또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느냐 하는 등에 따라, 사실 법도 법 나름이지만, 법의 내용은 대체로 보수적이고 현상유지적이다. 상속법이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 그 예이다.
법과 달리, 진보는 현실과 질서를 바꾸려는 쪽이기 때문에 법과 충돌하거나 법에 위배되는 일을 감수하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한다. 군대징집거부, 납세거부, 불법시위, 불법파업, 불법혁명운동 같은 경우들이 그 예이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 어느 쪽이 옳은가”를 평가하고 선택하기 위해서는 보수도 그렇지만, 진보도 각각 두 가지로, 즉 합법적 보수와 불법적(혹은 비합법적) 보수, 합법적 진보와 비합법적(혹은 불법적) 진보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의 경우, 개혁적 진보와 좌파는 합법적인 방법을 취하는 입장이고, 혁명적인 진보와 좌파는 불법 혹은 비합법을 감수하는 입장이라고 다시 구분할 수 있다. 합법적-개혁적인 진보와 좌파를 대표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이며, 불법적 보수의 대표는 미국의 KKK, 유럽의 신나치, 이승만 시절의 극우백색테러주의이다.
진보는 법과 충돌하는 일 감수해야
보수의 목소리가 크고, 진보의 목소리를 기어들게 하는 다른 하나의 이유, 어쩌면 더 큰 이유는 힘의 관계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늘날까지 보수가 진보에 비해 현실적으로 힘이 더 크고, 그래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보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고 또 힘으로 작용한다. 진보의 목소리가 죽어 들어가는 것은 진보의 힘이 작고, 밀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일반국민들은 누구 편을 들어야 할 것인가. 만일 보수도 진보도 아닌 ‘제3의 공정하고 초월적인 심판관’이 있다면 누구 손을 들어주어야 할 것인가. 그 정답은 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흔히 말하듯, 정의의 편에 서자니 처자식이 울고, 기득권 보수 쪽에 서자니 양심이 우는 형국, 바로 그것이 오늘날 한국사회 이념논쟁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유팔무 한림대학교 교수 사회학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소장
유팔무 한림대학교 교수 사회학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소장
민주당 대통령후보 예비경선을 계기로 우리사회에서는 보수와 진보에 관한 논쟁이 한층 더 가속화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는 “당신의 색깔은 무엇이냐” 하는 질문이 제기될 뿐 아니라, 자신의 이념적 색깔과 성향을 떳떳이 밝히는 새로운 현상들도 나타나고 있다. “나는 보수주의자다.”(김종필, 김용갑) “나는 민주당이 그렇듯이 중도개혁적이다.”(노무현, 이인제) “나는 개혁적 보수의 입장이다.”(이회창) 대단히 흥미로운 현상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공적인 논쟁의 과정에서 스스로 진보를 자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점, 그래서 진보가 애매하게 평가되거나 범죄 혹은 나쁜 일처럼 매도되는 공백이 크다는 점이다.
그러나, 진보는 애매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좋은 것이며, 떳떳하게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보수가 비밀스러워 해야 할 일일 것이다.
보수라고 하는 것은 현상유지, 즉 현재의 사회질서와 사회체제, 기득권 등을 그대로 보존, 유지하는 것이 좋고 옳다는 입장이다. 결코 애매한 뜻이 아니다. 진보 역시 그 반대이기 때문에, 즉 현재의 사회질서와 체제, 기득권 등을 바꾸자는 입장, 바꾸는 것이 좋고 옳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애매한 뜻이 아니다.
진보의 목소리 더 당당하고 떳떳해야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현재의 사회질서가 좋고 바람직한 것인가, 따라서 보존, 유지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점이다.
그러나 재벌이 지배하는 체제와 사회질서, 빈익빈부익부가 지속되는 우리사회, 동서간의 지역, 남북간의 이념으로 갈라져 갈등, 반목하는 ‘분단현실’, 남녀 특권층의 권위적 지배의 문제, 부정부패, 환경파괴와 오염, 망국적 입시교육과 과외열풍 등등 오늘날 한국의 사회질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사회질서를 바로잡아 우리사회를 ‘보다 나은 사회’, 그리고 ‘함께 잘 사는 사회’로 바꾸어 나가자는 입장이 진보이다. 반면에 그런 기존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 보존하자는 입장이 보수이다. 과연 어느 쪽이 옳고 떳떳한가. 그 답은 사실 명백하다. 누가 정의의 편인지도 분명하다.
그런데 왜 보수 쪽의 목소리는 크고, 진보 쪽의 목소리는 우물쭈물하고 속으로 기어들어 가는가.
복지제도를 만들자고 하면, 보수주의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사회주의적인 발상이다. 아니, 사회주의다.” 재벌을 해체하고 서울대를 해체하자는 진보 쪽 주장에 대해, 보수는 곧바로 이를 ‘위험한 발상’이라든가, ‘사회주의’라든가, 우리사회를 전복시키려는 ‘좌경세력의 음모’라는 식으로 입을 막아 버린다. 그러면 진보는 대개 공포에 질려 “그게 아니라…”하는 식으로 물러나곤 한다. 사실 누가 옳고 그른지, 누가 정의 편인지를 따져 보면,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는가. 보수는 옳고 말을 잘하는데, 진보는 잘못이고 말이 달리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크게 보아 다음 두 가지인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는 보수도 그렇지만 진보에는 불법을 감수하는 입장이 일부 포함되어 있으며, 이로 인해 모든 진보가 불법으로 단속될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법이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질서를 지키기 위한 것이므로 보수적이며, 힘이기 때문에 보수적인 힘에 속한다. 그 법을 과연 누가 만들었느냐, 누구의 뜻에 따라, 누구의 힘에 의해 그 법이 만들어졌느냐, 또 누구를 위해 만들어졌느냐 하는 등에 따라, 사실 법도 법 나름이지만, 법의 내용은 대체로 보수적이고 현상유지적이다. 상속법이나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 같은 것이 그 예이다.
법과 달리, 진보는 현실과 질서를 바꾸려는 쪽이기 때문에 법과 충돌하거나 법에 위배되는 일을 감수하는 경우들이 종종 발생한다. 군대징집거부, 납세거부, 불법시위, 불법파업, 불법혁명운동 같은 경우들이 그 예이다.
그래서 “보수와 진보, 어느 쪽이 옳은가”를 평가하고 선택하기 위해서는 보수도 그렇지만, 진보도 각각 두 가지로, 즉 합법적 보수와 불법적(혹은 비합법적) 보수, 합법적 진보와 비합법적(혹은 불법적) 진보로 구분하여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 진보의 경우, 개혁적 진보와 좌파는 합법적인 방법을 취하는 입장이고, 혁명적인 진보와 좌파는 불법 혹은 비합법을 감수하는 입장이라고 다시 구분할 수 있다. 합법적-개혁적인 진보와 좌파를 대표하는 것은 사회민주주의이며, 불법적 보수의 대표는 미국의 KKK, 유럽의 신나치, 이승만 시절의 극우백색테러주의이다.
진보는 법과 충돌하는 일 감수해야
보수의 목소리가 크고, 진보의 목소리를 기어들게 하는 다른 하나의 이유, 어쩌면 더 큰 이유는 힘의 관계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오늘날까지 보수가 진보에 비해 현실적으로 힘이 더 크고, 그래서 누가 옳고 그른지를 떠나 보수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고 또 힘으로 작용한다. 진보의 목소리가 죽어 들어가는 것은 진보의 힘이 작고, 밀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과연 일반국민들은 누구 편을 들어야 할 것인가. 만일 보수도 진보도 아닌 ‘제3의 공정하고 초월적인 심판관’이 있다면 누구 손을 들어주어야 할 것인가. 그 정답은 뻔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흔히 말하듯, 정의의 편에 서자니 처자식이 울고, 기득권 보수 쪽에 서자니 양심이 우는 형국, 바로 그것이 오늘날 한국사회 이념논쟁의 현주소라고 할 수 있다.
유팔무 한림대학교 교수 사회학 한국사회민주주의연구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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