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과 비리를 쫓는 기자와 수사관의 차이는 무엇일까. 기자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종합하여 불법과 비리 현상을 기사화 하는데 비하여 수사관은 확실한 물증과 증언이 있어야 비로소 불법행위자에 대한 소추의 절차(혐의자의 연행-구속 등)를 밟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다. 하지만 기사의 근거를 이루는 정황들이 주관에 치우친 과장된 것이라면 독자들의 신뢰를 잃고 그런 일들이 되풀이 될 때 그 신문은 결국 황색지로 전락하고 만다. 수사관 역시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물증과 협박 혹은 고문의 방법으로 강제된 증인들을 법정에 내세운다면 그 자신이 쇠고랑을 차야 마땅하다. 이렇게 상이한 방법으로 정의를 추구한다 할지라도 기자와 수사관에게 똑같이 요구되는 것은 고도의 직업윤리다.
기자에게 요구되는 직업윤리 가운데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취재원을 보호하는 것이며, 이에 곁들여 취재 내용을 보도와 논평 및 저술 이외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은 절대 금기에 속한다.
‘취재원 보호’는 기자의 최고 직업윤리
이를테면 1960년대 미국 젊은이들의 베트남전쟁 반대시위가 한창일 무렵 미국의 FBI는 데모 현장을 취재한 사진 기자들에게 기사화하지 않은 필름을 돈을 주고 사들여 증거로 이용했다. 이런 사실이 들통이 나자 필름을 팔아먹은 기자들이 언론계에서 대거 추방된 일이 있었다.
해고된 기자들은 과격분자 색출에 협력한 것이 무슨 불법이냐는 요지의 소송을 제기하였으나 법원의 판결은 기자의 직업윤리가 정부 협력에 우선한다고 판시했다. 기자의 직업윤리 확립이 장기적 관점에서 사회에 더 기여한다는 이야기다.
지난 주 거대 인쇄 매체들의 1면을 크게 장식한 “동아일보 폐간 운운”의 기사와 그것의 정치적 쟁점화는 문제된 발언의 내용을 따지기에 앞서 기자의 직업윤리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다.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나선 노무현씨가 입에 담았다는 <동아일보> 폐간 관련 발언은 2001년 8월의 일로 보도되었는데 당시에는 전혀 기사화 되지 않았다. 왜 기사화하지 않았을까. 신문-방송 등 우리나라 전 매체들에 대한 대대적 세무 조사가 우리 사회에 중요한 쟁점이 된 시점이 아니었던가.
여러 가지 정황조건으로 미루어 기사화 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였던 발언 내용이 어떤 경로로 6개월이 지난 지금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대 진영에 전해졌는가가 매우 궁금하다. 더구나 이인제 진영은 “당시 술자리 참석자가 직접 제보를 했으며, 다른 사람들도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취재 기자 수첩의 메모 내용이 보도-논평 이외의 목적으로 악용된 또 하나의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다음은 발언 내용과 그 함축이다. 여기서 문득 떠오르는 것은 이른바 “종로 네거리 포살론”인데 한두 세대 전만 해도 사석에서 불의에 대한 분노를 “종로 네거리에서 포살 할 …”로 시작하는 화두로 곧잘 표현했다. 이런 표현은 형법에서 규정한 살인 예비음모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으로서 격한 감정을 꾸밈없이 토로하는 습관으로부터 연유하는 것인데 공석상에서는 물론 최대한 자제할 언사이긴 하다.
노무현씨가 했다고 일부에서 주장하는 문제 발언의 사실 여부가 아직 확인되지 않은 단계에서 조금 이른 감은 없지 않으나 그 발언이 설혹 사실이라 전제하더라도 당내 경선 과정에서 중요 쟁점으로 삼은 것은 치졸한 행동이다.
취재메모를 보도 논평 외에 사용해서는 안돼
2001년 8월의 노무현씨는 여당내의 언론 정책의 입안 혹은 집행자가 아니었을 뿐 더러 더구나 대선 후보자들 가운데서는 지금과 같은 정치적 비중을 누리지 못했던 것은 천하 공지의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몇몇 거대매체들이 사이비 쟁점에 펌프질과 부채질을 겹으로 하고 있는 모습은 너무나 속이 뻔히 들여다보인다. 세무조사로 인하여 집권당에 원한이 맺힌 매체들이 대통령 후보자로서 노무현 바람이 일고 있는 판이므로 “너 어디 두고 보자”는 보복적 심사가 터져 나온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이것은 사회적 공기로서 언론이 취할 자세가 아니다. 불편부당을 사시로 내걸고 있는 매체라면 더욱 그렇다.
민주국가에서 각급 선거에 임하는 후보자에 대한 평가는 최종적으로 투표권자가 내리는 것이다. 선거를 치르기 전에 미리 언론 매체가 특정 후보자를 죽이거나 살릴 수 있다면 선거는 하나마나가 아닌가. 언론매체가 유권자의 현명한 판단을 도울 생각이라면 후보자들의 중요 정책을 냉정하게 분석한 다음 가감 없이 이를 보도 논평하는 길뿐이다.
임재경 언론인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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