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기념관’의 모순율과 역사현상(김삼웅 2002.05.15)

지역내일 2002-05-15
‘기념관’의 모순율과 역사현상
김삼웅 언론인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역사는 가끔 코미디보다 더 짓궂을 때가 있다. 창과 방패, 우산과 나막신을 함께 자랑하는 모순율의 경우도 적지 않다. 헤겔의 변증법 이론에서 정(正)보다 반(反) 즉 안티테제가 현실을 지배하기 일쑤다. 지금 짓고 있는 (또는 짓지 않고 있는) ‘기념관’은 모순율과 안티의 극치이다. 왜곡된 역사현상이기도 하다.
절세의 애국자 백범 김구 선생의 기념관과 일본군 출신 박정희 전대통령의 기념관이 나란히 세워지고 있는 현실은 확실히 코미디보다 더 짓궂다. 그리고 창과 방패 나막신과 우산 장수의 논리보다 더 모순이다. 안티 테제가 여전히 주름잡는다.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테니스장 부지에 대지면적 5500여평, 연건평 2920평의 지하 1층, 지상 2층의 우람한 백범 기념관이 10월 완공을 앞두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이다. 국고 지원금 160억원, 국민모금 20억원 등 총 180억원이 투입되고 기념관에는 백범의 애국으로 일관한 생애의 모든 자료가 전시된다. 필자는 기념관건립위원과 자료 전시기획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식민지시대에 백범과 같은 지도자가 없었다면 우리의 항일투쟁사나 망명정부의 운명은 어찌됐을까 되돌아 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백범·박정희기념관의 역설
세계 역사상 26년 동안이나 망명정부를 이끌고 민족해방 투쟁을 벌인 식민지 국가는 우리 외에는 없었다. 그 중심에 백범이 있었다. 그런데 해방 반세기도 훨씬 지난 이제야 백범기념관이 세워지고 있는 것이다.
백범 기념관이 국민적 축복 속에서 건립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박정희 기념관은 처음부터 격렬한 반대 여론에도 다분히 ‘정치적’으로 결정되고 막대한 국고가 투입되어 최근 도둑고양이처럼 착공되었다. 서울 상암동에 국고 200억원과 성금 500억원으로 짓겠다던 당초의 약속과는 달리 모금은 형식에 불과하고 막대한 국고를 들여 독재자의 기념관을 짓겠다는 배짱이다.
전교조가 박정희기념관 건립 반대 시위를 벌이면서 “박전대통령은 스스로 일본군인이 되어 독립군 압살에 앞장섰고 5·16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 씨를 뿌린 4·19 혁명을 짓밟으며 군부독재로 민중의 인권을 짓밟는 장본인”으로 “청산될 인물이지 결코 기념할 인물이 아니다”고 지적한 것은 기념관이 세워져서는 안 되는 이유를 극명하게 대변한다.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에 직면해 친일 역사를 청산하고 왜곡된 현대사를 바로잡아야할 우리가 친일·군사 독재자의 기념관을 지어서 어쩌자는 것일까. 그렇지 않아도 친일세력, 군사독재세력과 이들의 후손·아류들이 판치는 사회에서 아예 그들의 ‘우상’을 국민의 세금으로 짓겠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우리사회의 구조적 모순의 극치는 청산의 대상이 ‘주류세력(Main Stream)’으로 행세해온 ‘괴이’한 현상이다. 과거에 대한 엄격한 심판과 청산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가치관이 전도되고 사회정의가 땅에 떨어졌다.
정부와 국회가 보다 정직하고 이성적이라면 국고를 들여 지어야할 기념관은 따로 있다. 의병기념관과 민주화기념관이 그것이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교사가 의병 관련자료를 찾아오라는 숙제를 냈더니 학생이 자기 집에는 술병과 약병은 있어도 의병은 없더라고 했다는 것이다. 우스개인지 사실인지 모르겠지만 의병에 대한 인식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한말 일제 침략기에 궐기한 의병은 일본군 2개사단과 맞서 피의 전쟁을 치렀다. 1895년부터 1914년까지 19년동안 15만명의 희생자를 낸 의병전쟁은 기득 세력이 대부분 친일파로 변신할 때 농민과 지방 선비들로 구성된 민군(民軍)으로서 “민족의 정수(精髓)이고 국성(國姓)이었다”(박은식, <한국독립운동지혈사>).

의병기념관과 민주기념관 짓자
일제는 의병을 학살하면서 ‘삼광작전(三光作戰)’ 즉 모조리 죽이고 모조리 약탈하고 모조리 불지르는 초토화 작전을 전개했다. 우리 의병은 주로 화승총이나 죽창으로 현대식 병기와 맞서 싸웠다. 엄청난 희생 끝에 만주와 노령 해삼위로 밀려가 그곳에서 독립군·광복군·의열단의 인적, 사상적 토대가 되었다. 이러한 의병의 자료와 기록과 일제의 만행을 담는 기념관이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자유와 권리를 누리면서 살게된 것은 독재정권과 싸우다 희생된 민주열사들의 공이 가장 크다. 옥고·고문·실직 등 수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었지만 생명을 바친 이들에 비할 바 아니다.
이들을 모시는 민주공원과 민주화운동의 모든 자료를 모아 전시하는 민주기념관의 건립이 시급하다. 박정희기념관을 짓기로 한 정부와 국회, 서울시는 참회하는 뜻에서 의병기념관과 민주기념관부터 짓는 양식의 회복을 바란다. 민족정기와 사회정의가 바로서지 못한 국가는 항상 비틀거리게 된다.



김삼웅 언론인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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