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금 없는 축제 되려면
최영희 상임이사
시청 앞 전광판의 월드컵 D- 숫자가 휙휙 줄어들어 시간의 속도감을 느끼게 하더니 드디어 온 국민이 월드컵 열기속으로 빠져든 듯하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분위기가 안 뜬다고 걱정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땀을 흘리며 축구공을 매달고 낑낑대는 자전거 홍보부대가 그렇게 안쓰러워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애써 외면한 듯 조용히 생업에만 종사한 국민들이 월드컵이 시작되자 또 뭔가를 보여주고 있다. 자가용 홀짝제뿐 아니라 개막식 때 직접 보니 경기장 관람 매너도 훌륭했다. 전반전 끝나고 쉬는 시간에 외국인들과 함께 어우러진 화장실 사용도 ‘한줄로서기’가 자연스럽게 되었고, 걱정하던 경기장주변 교통 혼잡이나 준공식 때처럼 경기장 입구 찾기 혼잡은 전혀 없었다. 훈련된 도우미들의 덕이었다. 모두 큰 일을 치르기 위해 합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16강 기원, 정치·장삿속 얽히면 순수성 잃어
프랑스와 그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의 경기는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월드컵에 마음이 쏠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보신탕 시비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식민지를 겪은 가난한 나라에 대한 자연스러운 지지였는지 세네갈 선수들은 마치 홈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한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세네갈 응원은 마치 우리 선수들이 출전한 듯했다.
화려하고, 그러면서도 감동적인 개막식 행사를 세계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서울·코리아 홍보가 실감났다. 쾅쾅 터지는 불꽃놀이를 뒤로하고 총총히 경기장을 나서는 사람들은 뿌듯해 보였다.
개막식뿐 아니라 상암동 경기장 주변을 둘러보면 대한민국 국민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버려진 땅 난지도 옆에 경기장을 짓는다고 얼마나 심란해 했던가. 개막일까지 경기장이 건설될지도 의문시됐다. 그러나 경기장뿐 아니라 월드컵 공원도 훌륭했다.
아직 얼기설기 흙더미 드러난 곳이 많아 잡초 한 포기도 아쉽고, 급히 하다보니 죽고 시들어가는 꽃나무도 많지만 달라진 난지도를 보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시냇물도 흐르고 징검다리도 있는 아름다운 공원덕분에 주변의 아파트 값 상승도 뉴스거리가 되었다.
어제까지 경주에서 훈련을 마친 한국 대표팀이 오늘 부산으로 이동해 내일 첫 대결인 폴란드전에 임한다. 드디어 우리 대표팀의 시합이 다가오는데 은근히 몇 가지 걱정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온 국민이 16강 진입을 원해 주부들 마라톤도, 청소년축제도, 심지어 어린이집 가족나들이까지도 16강기원이 주제였다. 그러나 16강 기원이 장사꾼들의 장삿속과 함께 얽혀 순수한 기원이 아닌 듯하다. 물론 정치장사꾼들도 기다린다. 여세를 몰아 대선출마 속셈도 있고, 16강 진출이 가져다줄 선거에서의 이익을 저울질하는 모습도 보인다. 돈으로, 해외여행상품으로 온갖 경품 내걸고 당첨에 혈안이 되도록 부추기고 있다. 백화점도 세일명분을 16강기원, 기업들의 마케팅도 모두 16강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16강에 진출하면 대상자 모두에게 혹은 추첨해서 푸짐한 경품이 주어지고 실패하면 모든 것이 헛것이 된다. 실제 추첨해서 혜택받을 사람은 몇 안 되지만 대상자는 많으니 모두에게 공짜 기다리게 하는 전략이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1998년 월드컵 후 ‘차범근 버리기’의 재탕이 될까봐 조마조마하다. 제발 16강, 아니 8강에 진출하면 오죽 좋겠는까마는 아니더라도 크게 격려하는 성숙한 국민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히딩크야 어차피 외국인이니 그는 돌아가겠지만 우리는 최악의 순간에도 멋진 국민이었으면 좋겠다.
막대한 돈 투입된 거대 경기장, 활용방법 고민을
다음은 올림픽보다도 더 긴 한 달 동안이나 치러지는 월드컵 기간동안, 사실 개막 폐막 전후 합하면 50여일을 오직 월드컵으로만 살 수는 없다. 월드컵 아닌 다른 삶이 온통 묻혀버린 듯하다. 그 중요한 지자체 선거도, 국회도, 경제도, 모두 건성이다. 모두 제자리에서 월드컵을 즐기게 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흥분된 분위기를 타고 얻어지는 반사 이익이 갑자기 몇 천억에서 십수조원까지 천문학적 숫자가 제시되기도 한다. 물론 그만한 이익이 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숫자 부풀리기보다는 투하된 돈을 단기적 계산으로 뽑아내긴 어렵다 해도 그 거대한 경기장들 어떻게 활용할 지도 고민했으면 한다. 행사 치를 때마다 또 짓고 또 지어 일년에 몇 번 문 열고 만다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아도 개막식 때 뻥뻥 뚫려있는 스탠드를 보니 외국인들이 별로 안 들어와 우리끼리 제 닭 잡아먹고 좋다고 하는 잔치가 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성공적인 월드컵이란 이런 것들을 모두 감안해야 행사가 끝나도 앙금 없는 신나는 축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영희 상임이사
최영희 상임이사
시청 앞 전광판의 월드컵 D- 숫자가 휙휙 줄어들어 시간의 속도감을 느끼게 하더니 드디어 온 국민이 월드컵 열기속으로 빠져든 듯하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분위기가 안 뜬다고 걱정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땀을 흘리며 축구공을 매달고 낑낑대는 자전거 홍보부대가 그렇게 안쓰러워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애써 외면한 듯 조용히 생업에만 종사한 국민들이 월드컵이 시작되자 또 뭔가를 보여주고 있다. 자가용 홀짝제뿐 아니라 개막식 때 직접 보니 경기장 관람 매너도 훌륭했다. 전반전 끝나고 쉬는 시간에 외국인들과 함께 어우러진 화장실 사용도 ‘한줄로서기’가 자연스럽게 되었고, 걱정하던 경기장주변 교통 혼잡이나 준공식 때처럼 경기장 입구 찾기 혼잡은 전혀 없었다. 훈련된 도우미들의 덕이었다. 모두 큰 일을 치르기 위해 합심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16강 기원, 정치·장삿속 얽히면 순수성 잃어
프랑스와 그들의 식민지였던 세네갈의 경기는 축구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도 월드컵에 마음이 쏠리게 하는 데 충분했다. 보신탕 시비도 무시할 수 없었겠지만 식민지를 겪은 가난한 나라에 대한 자연스러운 지지였는지 세네갈 선수들은 마치 홈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한 것으로 착각했을 것이다. 한국인들의 세네갈 응원은 마치 우리 선수들이 출전한 듯했다.
화려하고, 그러면서도 감동적인 개막식 행사를 세계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서울·코리아 홍보가 실감났다. 쾅쾅 터지는 불꽃놀이를 뒤로하고 총총히 경기장을 나서는 사람들은 뿌듯해 보였다.
개막식뿐 아니라 상암동 경기장 주변을 둘러보면 대한민국 국민들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버려진 땅 난지도 옆에 경기장을 짓는다고 얼마나 심란해 했던가. 개막일까지 경기장이 건설될지도 의문시됐다. 그러나 경기장뿐 아니라 월드컵 공원도 훌륭했다.
아직 얼기설기 흙더미 드러난 곳이 많아 잡초 한 포기도 아쉽고, 급히 하다보니 죽고 시들어가는 꽃나무도 많지만 달라진 난지도를 보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 시냇물도 흐르고 징검다리도 있는 아름다운 공원덕분에 주변의 아파트 값 상승도 뉴스거리가 되었다.
어제까지 경주에서 훈련을 마친 한국 대표팀이 오늘 부산으로 이동해 내일 첫 대결인 폴란드전에 임한다. 드디어 우리 대표팀의 시합이 다가오는데 은근히 몇 가지 걱정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온 국민이 16강 진입을 원해 주부들 마라톤도, 청소년축제도, 심지어 어린이집 가족나들이까지도 16강기원이 주제였다. 그러나 16강 기원이 장사꾼들의 장삿속과 함께 얽혀 순수한 기원이 아닌 듯하다. 물론 정치장사꾼들도 기다린다. 여세를 몰아 대선출마 속셈도 있고, 16강 진출이 가져다줄 선거에서의 이익을 저울질하는 모습도 보인다. 돈으로, 해외여행상품으로 온갖 경품 내걸고 당첨에 혈안이 되도록 부추기고 있다. 백화점도 세일명분을 16강기원, 기업들의 마케팅도 모두 16강과 연결되어 있다. 특히 16강에 진출하면 대상자 모두에게 혹은 추첨해서 푸짐한 경품이 주어지고 실패하면 모든 것이 헛것이 된다. 실제 추첨해서 혜택받을 사람은 몇 안 되지만 대상자는 많으니 모두에게 공짜 기다리게 하는 전략이다.
문제는 이런 분위기가 1998년 월드컵 후 ‘차범근 버리기’의 재탕이 될까봐 조마조마하다. 제발 16강, 아니 8강에 진출하면 오죽 좋겠는까마는 아니더라도 크게 격려하는 성숙한 국민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히딩크야 어차피 외국인이니 그는 돌아가겠지만 우리는 최악의 순간에도 멋진 국민이었으면 좋겠다.
막대한 돈 투입된 거대 경기장, 활용방법 고민을
다음은 올림픽보다도 더 긴 한 달 동안이나 치러지는 월드컵 기간동안, 사실 개막 폐막 전후 합하면 50여일을 오직 월드컵으로만 살 수는 없다. 월드컵 아닌 다른 삶이 온통 묻혀버린 듯하다. 그 중요한 지자체 선거도, 국회도, 경제도, 모두 건성이다. 모두 제자리에서 월드컵을 즐기게 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월드컵이 시작되면서 흥분된 분위기를 타고 얻어지는 반사 이익이 갑자기 몇 천억에서 십수조원까지 천문학적 숫자가 제시되기도 한다. 물론 그만한 이익이 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숫자 부풀리기보다는 투하된 돈을 단기적 계산으로 뽑아내긴 어렵다 해도 그 거대한 경기장들 어떻게 활용할 지도 고민했으면 한다. 행사 치를 때마다 또 짓고 또 지어 일년에 몇 번 문 열고 만다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지 않아도 개막식 때 뻥뻥 뚫려있는 스탠드를 보니 외국인들이 별로 안 들어와 우리끼리 제 닭 잡아먹고 좋다고 하는 잔치가 되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성공적인 월드컵이란 이런 것들을 모두 감안해야 행사가 끝나도 앙금 없는 신나는 축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최영희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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