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따낸 ‘응원 우승컵’ 놓치지 말자
최영희 상임이사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 광화문 쪽으로 가는 차선은 정지되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걸어오는지 양쪽 인도는 붉은 악마들이 끝없이 몰려간다.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면서.
건너편 인도에 깐 좌판에서 T셔츠, 태극기, 꼬레아 띠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며 괜히 신이 나고, 누군가 길에서 주차 문제로 큰소리를 치는 것도 ‘대~한민국’으로 들린다. 환청 현상이다.
세상의 변함에 새삼 놀란다. 15년전 6월, 명동에서, 시청앞에서, 종로에서 쫓고 쫓기며 몰려다닐 때다. 젊은 학생들이 붉은 삼각 수건을 마스크처럼 입에 두르고 시위를 하면 우리는 설득해서 붉은 수건을 벗겼다. 실제로 붉은 수건만 클로즈업 시켜 카메라에 잡아 시위대를 모두 빨갱이라고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민생 외면해 국민 웃음 빼앗아간 정치를 응징
아픈 역사도 새 장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붉은 악마의 상당수가 여자라는 것도 놀랍고, 드러낸 배에 그려 넣은 태극기도 귀엽다.
솔직히 말해 난 축구 경기 자체보다 붉은 악마가 된 국민들의 자발적 응원이 더 흥미진진하고 관심이 간다. 경기 승전보와 상관없이 국민적 성원과 응원전은 일찌감치 폴란드 전에서 우승컵을 거머쥐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려했던 미국 전에서 보여준 빗속 응원전과 사후처리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 국민임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뒷얘기도 풍성하다. 50억으로 수십 배의 효과를 냈다는 붉은 악마 후원기업의 잇속도 배아프지 않다. 아이디어 하나로 온 국민을 붉은 악마로 만들어 세계의 신문과 TV화면을 붉은 색 사진으로 채우게 했으니까. 12만 벌의 T셔츠를 배포했다는데 자기돈 내고 사 입은 사람들이 10배가 넘으니 이런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붉은 옷을 입고 걸어서 걸어서 몰려드는 사람들. 거리를 메우고 얼싸안고 뛰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이들을 보며 전혀 정치를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 순간에 왜 우리는 정치를 생각하는가. 이렇게 쉽게 기뻐하고 감격하며 하나 되는 국민들인데….
고개 숙인 사죄도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당선됐다고 웃지마라! 꽃다발 들고 두 손 치켜들 자격 없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축구 열기 때문에 관심이 덜해 투표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마라. 대한민국이 잘 되기를 온몸으로 기원하는 국민들이었다. 이들은 철저히 외면해서 국민의 웃음을 빼앗아간 정치를 응징했다. 투표한 사람들도 모두 생각은 같다. 정말 찍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비족도 당선됐고 브로커도 당선됐다. 사기성이 농후한 선거 홍보 팜플렛 내용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며 투표장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제, 서로가 놀란 12번째 선수들의 힘을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승화시킬까를 모두들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의 각 부처는 부처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요즈음 학교 폭력 대책 문제로 고민하는 나 자신도 책가방을 맨 채 혹은 붉은 티를 입은 채 스크럼을 짜고 거리를 메운 청소년들을 보면서 힘있는 아이도 힘없는 아이도 키 큰 아이도 키 작은 아이도 모두 태극전사, 함성 속에 하나인데 어떻게 학교를 하나 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내일 8강 결전의 날, 어떤 경우에도 성숙함 보여주자
이제 내일이면 8강 진출을 놓고 이탈리아팀과 단판 게임을 치른다. 안타깝게도 지난 포르투갈 전이 끝나고 옥에 티가 생겼다 한다. 너무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 경찰에게 집단 행패를 부리고 차가 찌그러지는 등 약간의 불상사가 생겨 우려를 낳고 있다. 훌리건과 다른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했더니 자랑이 끝나기도 전에 그럴 수는 없다.
11명선수들의 능력으로 펼치는 경기보다 세계가 인정한 4천 7백만 국민들이 펼쳐 따낸 멋진 우승컵을 놓칠 수는 없다. 러시아 크렘린 광장에서 벌어진 난동은 러시아 축구팀의 경기 패배보다 훨씬 더 큰 패전보를 세계에 타전하고 말았다. 선수들은 한번의 경기에서 졌지만 러시아 국민은 몇 번의 경기에서 진 꼴이 된 것이다.
선수들이 8강에 들어가든 못 들어가든, 끝까지 세계만방에 성숙함을 보여준‘대~한민국’ 국민들은 경기 우승컵보다 더 훌륭한 이미 따낸 붉은 악마의 ‘응원 우승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최영희 상임이사
최영희 상임이사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자 광화문 쪽으로 가는 차선은 정지되어 있었다. 어디서부터 걸어오는지 양쪽 인도는 붉은 악마들이 끝없이 몰려간다. ‘대~한민국’과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면서.
건너편 인도에 깐 좌판에서 T셔츠, 태극기, 꼬레아 띠가 불티나게 팔리는 것을 보며 괜히 신이 나고, 누군가 길에서 주차 문제로 큰소리를 치는 것도 ‘대~한민국’으로 들린다. 환청 현상이다.
세상의 변함에 새삼 놀란다. 15년전 6월, 명동에서, 시청앞에서, 종로에서 쫓고 쫓기며 몰려다닐 때다. 젊은 학생들이 붉은 삼각 수건을 마스크처럼 입에 두르고 시위를 하면 우리는 설득해서 붉은 수건을 벗겼다. 실제로 붉은 수건만 클로즈업 시켜 카메라에 잡아 시위대를 모두 빨갱이라고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민생 외면해 국민 웃음 빼앗아간 정치를 응징
아픈 역사도 새 장으로 바뀌고 있음을 보여준다. 붉은 악마의 상당수가 여자라는 것도 놀랍고, 드러낸 배에 그려 넣은 태극기도 귀엽다.
솔직히 말해 난 축구 경기 자체보다 붉은 악마가 된 국민들의 자발적 응원이 더 흥미진진하고 관심이 간다. 경기 승전보와 상관없이 국민적 성원과 응원전은 일찌감치 폴란드 전에서 우승컵을 거머쥐게 한 것이나 다름없다. 우려했던 미국 전에서 보여준 빗속 응원전과 사후처리 모습을 보며 대한민국 국민임이 이렇게 자랑스러울 수 없었다.
뒷얘기도 풍성하다. 50억으로 수십 배의 효과를 냈다는 붉은 악마 후원기업의 잇속도 배아프지 않다. 아이디어 하나로 온 국민을 붉은 악마로 만들어 세계의 신문과 TV화면을 붉은 색 사진으로 채우게 했으니까. 12만 벌의 T셔츠를 배포했다는데 자기돈 내고 사 입은 사람들이 10배가 넘으니 이런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붉은 옷을 입고 걸어서 걸어서 몰려드는 사람들. 거리를 메우고 얼싸안고 뛰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이들을 보며 전혀 정치를 생각하고 싶어하지 않는 그 순간에 왜 우리는 정치를 생각하는가. 이렇게 쉽게 기뻐하고 감격하며 하나 되는 국민들인데….
고개 숙인 사죄도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당선됐다고 웃지마라! 꽃다발 들고 두 손 치켜들 자격 없다.’라고 말해 주고 싶다. 축구 열기 때문에 관심이 덜해 투표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마라. 대한민국이 잘 되기를 온몸으로 기원하는 국민들이었다. 이들은 철저히 외면해서 국민의 웃음을 빼앗아간 정치를 응징했다. 투표한 사람들도 모두 생각은 같다. 정말 찍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비족도 당선됐고 브로커도 당선됐다. 사기성이 농후한 선거 홍보 팜플렛 내용을 보며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며 투표장으로 갔다는 것이다.
이제, 서로가 놀란 12번째 선수들의 힘을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 승화시킬까를 모두들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정부의 각 부처는 부처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요즈음 학교 폭력 대책 문제로 고민하는 나 자신도 책가방을 맨 채 혹은 붉은 티를 입은 채 스크럼을 짜고 거리를 메운 청소년들을 보면서 힘있는 아이도 힘없는 아이도 키 큰 아이도 키 작은 아이도 모두 태극전사, 함성 속에 하나인데 어떻게 학교를 하나 되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된다.
내일 8강 결전의 날, 어떤 경우에도 성숙함 보여주자
이제 내일이면 8강 진출을 놓고 이탈리아팀과 단판 게임을 치른다. 안타깝게도 지난 포르투갈 전이 끝나고 옥에 티가 생겼다 한다. 너무 지나치면 화가 되는 법, 경찰에게 집단 행패를 부리고 차가 찌그러지는 등 약간의 불상사가 생겨 우려를 낳고 있다. 훌리건과 다른 ‘대~한민국’ 국민임을 자랑했더니 자랑이 끝나기도 전에 그럴 수는 없다.
11명선수들의 능력으로 펼치는 경기보다 세계가 인정한 4천 7백만 국민들이 펼쳐 따낸 멋진 우승컵을 놓칠 수는 없다. 러시아 크렘린 광장에서 벌어진 난동은 러시아 축구팀의 경기 패배보다 훨씬 더 큰 패전보를 세계에 타전하고 말았다. 선수들은 한번의 경기에서 졌지만 러시아 국민은 몇 번의 경기에서 진 꼴이 된 것이다.
선수들이 8강에 들어가든 못 들어가든, 끝까지 세계만방에 성숙함을 보여준‘대~한민국’ 국민들은 경기 우승컵보다 더 훌륭한 이미 따낸 붉은 악마의 ‘응원 우승컵’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최영희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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