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선수 11명만이 아니라 4700만 온 국민이 함께 뛰었다.
거리응원에 나선 420만 ‘붉은 악마’는 한국의 8강 신화가 확정되자 서로 부둥켜안았고 전국이 ‘대∼한민국’의 환호성으로 들썩거렸다.
이른 아침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과 가족·동료들과 TV를 보며 응원하던 국민들은 경기가 끝날 무렵인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과 연장 후반 안정환의 골든골이 연이어 터지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거리응원에 나선 420만 시민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감격에 취해 자리를 뜰 줄 몰랐고 TV응원을 하던 수십만 시민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제의 밤을 세웠다.
◇전국이 밤샘 축제 = 19일 아침까지 전국은 ‘위대한 한국’을 노래하는 축제가 이어졌다.
서울의 광화문과 종로, 대학로와 신촌, 압구정동 등은 수십만 시민들이 차량통행이 끊어진 거리를 행진하며 축제의 거리로 변했다.
대학로에서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길게 늘어서 지나가는 응원단과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대한민국·코리아’를 연호했다.
서대문역과 신촌, 종로 등지에는 북과 꽹과리 등을 치며 즉석 춤판을 연출했다. 지나가는 차량도 응원구호에 맞춰 크락션을 울리며 환호했다.
19일 출근한 시민들은 극적인 대역전극이 믿어지지 않는 듯 밤샘축제의 흥분이 이어졌다.
이홍주(37·서울 관악구 신림1동)씨는 “한국의 끈기와 저력을 과시한 날이었다”며 “모처럼 응집된 힘이 경제와 정치 등 사회 각 분야로 뻗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건국 이후 최대 인파 = 18일 길거리 응원에 나선 시민들은 420만명에 이르러 건국 이후 최대인파로 기록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시청광장과 광화문일대에 각각 55만명 등 39곳에서 177만명이 거리응원을 벌였으며 부산 28만여명, 인천 14만여명 등 전국 322곳에서 243명이 운집했다.
그러나 지난 포르투갈전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아파트단지와 교회·주택지 공터 등을 이용한 소규모 거리응원은 집계에서 빠진 수치여서 실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거리응원에 나선 420만 ‘붉은 악마’는 한국의 8강 신화가 확정되자 서로 부둥켜안았고 전국이 ‘대∼한민국’의 환호성으로 들썩거렸다.
이른 아침부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과 가족·동료들과 TV를 보며 응원하던 국민들은 경기가 끝날 무렵인 후반 43분 설기현의 동점골과 연장 후반 안정환의 골든골이 연이어 터지자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거리응원에 나선 420만 시민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감격에 취해 자리를 뜰 줄 몰랐고 TV응원을 하던 수십만 시민들도 거리로 쏟아져 나와 축제의 밤을 세웠다.
◇전국이 밤샘 축제 = 19일 아침까지 전국은 ‘위대한 한국’을 노래하는 축제가 이어졌다.
서울의 광화문과 종로, 대학로와 신촌, 압구정동 등은 수십만 시민들이 차량통행이 끊어진 거리를 행진하며 축제의 거리로 변했다.
대학로에서는 수천명의 시민들이 길게 늘어서 지나가는 응원단과 손바닥을 맞부딪치며 ‘대한민국·코리아’를 연호했다.
서대문역과 신촌, 종로 등지에는 북과 꽹과리 등을 치며 즉석 춤판을 연출했다. 지나가는 차량도 응원구호에 맞춰 크락션을 울리며 환호했다.
19일 출근한 시민들은 극적인 대역전극이 믿어지지 않는 듯 밤샘축제의 흥분이 이어졌다.
이홍주(37·서울 관악구 신림1동)씨는 “한국의 끈기와 저력을 과시한 날이었다”며 “모처럼 응집된 힘이 경제와 정치 등 사회 각 분야로 뻗어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건국 이후 최대 인파 = 18일 길거리 응원에 나선 시민들은 420만명에 이르러 건국 이후 최대인파로 기록됐다.
경찰청에 따르면 서울에서만 시청광장과 광화문일대에 각각 55만명 등 39곳에서 177만명이 거리응원을 벌였으며 부산 28만여명, 인천 14만여명 등 전국 322곳에서 243명이 운집했다.
그러나 지난 포르투갈전부터 확산되기 시작한 아파트단지와 교회·주택지 공터 등을 이용한 소규모 거리응원은 집계에서 빠진 수치여서 실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경찰은 추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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