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 배우기
이찬근 시립인천대 교수 무역학과 국제금융
네덜란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매우 단편적이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5 대 0으로 우리를 침몰시킨 나라, ‘더치 페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타이트한 상인정신, 역사책에서 배운 하멜의 동아시아 표류기, 그리고 손가락으로 물난리를 막았다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고작이 아닐까.
그러나 거스 히딩크로 인해 네덜란드는 어느새 우리에게 적지 않게 친근한 나라가 되었다. 특히 선수들간의 치열한 경쟁과 탄탄한 팀웍이란 두 개의 상충적인 조건을 잘 결합시킨 그의 지도력을 보면서 이 먼 나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증폭된다.
흥미롭게도 이 나라를 들여다보면 ‘경쟁과 팀웍’의 히딩크가 단지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는 누구보다도 시장원리에 철저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키워왔고, 다른 한편에선 국적있는 자본과 헌신적인 노동간의 팀웍과 연대를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시장의 효율과 사회의 통합을 그 이상으로 추구했다면, 네덜란드는 아마도 이를 대표적으로 구현한 나라로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철저한 시장원리로 국가경쟁력 키워
나라 안이 온통 16강 신화에서 8강 신화로 휩싸이던 중 필자는 세미나 참석차 마침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그리곤 잠시 틈을 내 만난 ING은행의 법률고문으로부터 이런 조화된 특성의 일단을 재확인했다. ING는 자사가 발행한 주식의 99%를 주식관리 신탁회사에 맡기고, 동 신탁회사는 접수한 주식을 근거로 투자자들에게 예탁증서(DR)를 발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ING 투자자에겐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일체 없고, 단지 이익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만이 부여될 뿐이다.
즉, ING는 주주의 횡포를 차단하기 위해 독특한 소유지배구조를 마련하고 있었다. 영미형 주주자본주의가 전세계 규범으로 자리잡았다는데 도대체 이게 왠일인가 싶어 캐물어보았다. 법률고문의 답은 명쾌했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2차대전 직후에 주식예탁증서 제도를 도입했고, 오늘날에는 두가지 측면에서 득을 보고 있다고 했다. 첫째,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로부터 국적은행의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이고, 둘째 은행의 공익적 사명에 비추어 주주의 이익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ING은행은 필립스?아홀드 등 네덜란드 유력기업의 주거래은행(hausbank)으로 이들 기업에 작게는 5% 크게는 10%의 지분을 출자하고 있는데, 이런 중요한 국적 은행을 외국자본이 맘만 먹으면 언제건 인수할 수 있도록 방치할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은행과 기업간의 연대는 도덕적 해이의 주범으로 무조건 깨야 하고, 어차피 세계화 시대인데 시중은행을 다수 외국자본에 넘겨도 무방하다고 아우성인 우리와는 큰 시각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또한 은행은 주주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은행의 종업원은 물론 고객기업의 종업원에 대해서도 일자리 안전 등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해야 하므로,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주주들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주야 언제든지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종업원은 어디까지나 조직과 운명을 함께 하므로, 일시적인 방문객에 불과한 주주의 이익이 결코 경영의 최대 목표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혹시 투자자들의 강한 압력으로 이 제도가 해체될 가능성이 없는가라는 마직막 질문에 종업원 직장평의회, 감독이사회, 그리고 주총을 거쳐 정관을 수정할 사항이므로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답했다.
시장과 국가간 역할분담 교훈 삼아야
네덜란드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차별적인 제도가 있다. 누구나 시장에 나가 경쟁을 하고, 이에 따른 상이한 보상을 감수한다는 점에선 우리와 동일하지만, 경쟁에 노출되기에 앞서 개개인이 기초적인 체력을 키우고 준비하도록 돕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책임이다. 교육과 의료 그리고 실업생계 및 취업교육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즉 시장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시장과 국가간에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엔 여러 가지 다른 얼굴이 있다. 영미형의 시장만능주의가 유일한 규범으로 지구촌을 관철해야 한다는 생각은 특정 집단의 이익 혹은 패권적 기도를 반영한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거스 히딩크의 신선한 충격이 줏대있는 세계화의 나라, 네덜란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해서 우리 몸에 맞는 제도를 창안하는 움직임으로 귀결되었으면 한다.
이찬근 시립인천대 교수 무역학과 국제금융
이찬근 시립인천대 교수 무역학과 국제금융
네덜란드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은 매우 단편적이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5 대 0으로 우리를 침몰시킨 나라, ‘더치 페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타이트한 상인정신, 역사책에서 배운 하멜의 동아시아 표류기, 그리고 손가락으로 물난리를 막았다는 어린 소년의 이야기가 고작이 아닐까.
그러나 거스 히딩크로 인해 네덜란드는 어느새 우리에게 적지 않게 친근한 나라가 되었다. 특히 선수들간의 치열한 경쟁과 탄탄한 팀웍이란 두 개의 상충적인 조건을 잘 결합시킨 그의 지도력을 보면서 이 먼 나라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증폭된다.
흥미롭게도 이 나라를 들여다보면 ‘경쟁과 팀웍’의 히딩크가 단지 우연히 나온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네덜란드는 누구보다도 시장원리에 철저함으로써 국가경쟁력을 키워왔고, 다른 한편에선 국적있는 자본과 헌신적인 노동간의 팀웍과 연대를 잘 살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유럽의 사회민주주의가 시장의 효율과 사회의 통합을 그 이상으로 추구했다면, 네덜란드는 아마도 이를 대표적으로 구현한 나라로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철저한 시장원리로 국가경쟁력 키워
나라 안이 온통 16강 신화에서 8강 신화로 휩싸이던 중 필자는 세미나 참석차 마침 네덜란드를 방문했다. 그리곤 잠시 틈을 내 만난 ING은행의 법률고문으로부터 이런 조화된 특성의 일단을 재확인했다. ING는 자사가 발행한 주식의 99%를 주식관리 신탁회사에 맡기고, 동 신탁회사는 접수한 주식을 근거로 투자자들에게 예탁증서(DR)를 발행하고 있었다. 따라서 ING 투자자에겐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는 일체 없고, 단지 이익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만이 부여될 뿐이다.
즉, ING는 주주의 횡포를 차단하기 위해 독특한 소유지배구조를 마련하고 있었다. 영미형 주주자본주의가 전세계 규범으로 자리잡았다는데 도대체 이게 왠일인가 싶어 캐물어보았다. 법률고문의 답은 명쾌했다. 네덜란드는 일찍이 2차대전 직후에 주식예탁증서 제도를 도입했고, 오늘날에는 두가지 측면에서 득을 보고 있다고 했다. 첫째, 외국자본의 적대적 인수로부터 국적은행의 경영권을 지킬 수 있는 안전장치이고, 둘째 은행의 공익적 사명에 비추어 주주의 이익이 과도하게 작용하는 것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ING은행은 필립스?아홀드 등 네덜란드 유력기업의 주거래은행(hausbank)으로 이들 기업에 작게는 5% 크게는 10%의 지분을 출자하고 있는데, 이런 중요한 국적 은행을 외국자본이 맘만 먹으면 언제건 인수할 수 있도록 방치할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은행과 기업간의 연대는 도덕적 해이의 주범으로 무조건 깨야 하고, 어차피 세계화 시대인데 시중은행을 다수 외국자본에 넘겨도 무방하다고 아우성인 우리와는 큰 시각 차이가 아닐 수 없다.
그는 또한 은행은 주주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은행의 종업원은 물론 고객기업의 종업원에 대해서도 일자리 안전 등 중요한 사회적 기능을 해야 하므로,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주주들로부터 일정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주주야 언제든지 주식을 팔고 떠나면 그만이지만, 종업원은 어디까지나 조직과 운명을 함께 하므로, 일시적인 방문객에 불과한 주주의 이익이 결코 경영의 최대 목표일 수 없다는 생각이다.
혹시 투자자들의 강한 압력으로 이 제도가 해체될 가능성이 없는가라는 마직막 질문에 종업원 직장평의회, 감독이사회, 그리고 주총을 거쳐 정관을 수정할 사항이므로 아마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답했다.
시장과 국가간 역할분담 교훈 삼아야
네덜란드엔 이외에도 여러 가지 차별적인 제도가 있다. 누구나 시장에 나가 경쟁을 하고, 이에 따른 상이한 보상을 감수한다는 점에선 우리와 동일하지만, 경쟁에 노출되기에 앞서 개개인이 기초적인 체력을 키우고 준비하도록 돕는 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의 책임이다. 교육과 의료 그리고 실업생계 및 취업교육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즉 시장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함으로써 시장과 국가간에 역할을 분담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자본주의엔 여러 가지 다른 얼굴이 있다. 영미형의 시장만능주의가 유일한 규범으로 지구촌을 관철해야 한다는 생각은 특정 집단의 이익 혹은 패권적 기도를 반영한 이데올로기가 아닐까. 거스 히딩크의 신선한 충격이 줏대있는 세계화의 나라, 네덜란드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우리로 하여금 상상력을 발휘해서 우리 몸에 맞는 제도를 창안하는 움직임으로 귀결되었으면 한다.
이찬근 시립인천대 교수 무역학과 국제금융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