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서해도발과 ‘식물국회’
이경일 언론인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한달 이상 전국민을 열광케 했던 한일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이 기간동안 국민들은 한결같이 한국 축구팀의 선전에 환호하면서 답답한 일상으로부터 일탈(逸脫)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주말 북한이 서해상에서 무력도발을 저질러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전세계의 이목을 한반도의 냉혹한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이번 서해교전은 우발적 충돌이 아니다.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 NLL을 둘러싼 국제법적 문제, 교전수칙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항상 재발 가능성이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같이 한반도의 명운이 달린 북의 무력도발 사태속에서도 우리 국회는 문을 열지 않고 말문을 닫고 있다. 어느 나라 어느 하늘 아래 이런 ‘식물국회’가 또 있는지 묻고 싶다.
이 나라 정치권의 한심한 작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이 월드컵에 엄청난 열기를 쏟아부으면서도 중요한 참정권의 하나인 지방선거를 외면한 것은 그동안 정치인들이 보여준 한심한 작태에 대한 엄숙한 심판이 아닐 수 없다.
DJ정권은 민주화투쟁에 헌신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총리를 비롯한 정부요직과 정부 산하 기관장들에 민주화 과정에서 권위주의 정권들에 기생했거나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인사들을 대거 기용했다. 현 정권은 그것도 모자라 지방색을 탈피하겠다는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권력의 핵심적 자리에는 특정지역 인사들을 끊임없이 등용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통령 아들들이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어 2명이나 구속되어 국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국민들까지 부끄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전쟁’ 방불한 ‘서해 교전’에도 국회 개원 안해
정부·여당은 권력부패에 있어서 과거 정권들을 뺨치는 행태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과중한 부담과 불편을 안겨준 의약분업, 수많은 학부모와 입시생들을 당황하게 만든 ‘교육개혁’으로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정부와 민주당은 이같이 낙하산 인사, 부패와 무능 등으로 지방선거에 참패한 후에도 이렇다할 반성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했기 때문에 민주당 패배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선거패배의 책임을 청와대에 전가하면서 전면 개객, 박지원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의 교체, 아태재단 해체 등을 건의했다. 정부와 민주당은 서로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상대방을 삿대질하는 형국이다.
민주당이 선거패배와 탈DJ문제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한나라당 역시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데에서 비롯된 오만함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선거재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법부를 근거없이 매도하는가 하면 “좋은 학교를 나온 좋은 가문출신의 훌륭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한다”는 듣기에 따라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정치인들이 지난 한달여 동안 보여준 실망스런 행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16대 국회 후반기가 지난 5월말 시작됐는데도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국회를 ‘식물화’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싸고 줄기차게 샅바싸움을 벌였다. 따가운 국민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양당총무가 오는 8일 원구성에 일단 합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동안 식물국회를 방치해온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정부와 민주당은 우리 해군 장병 20여명이 사상한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서도 국민감정과는 동떨어진 태도를 보였다. 북한군의 일방적 공격으로 우리 고속정이 침몰하고 꽃다운 나이의 장병들이 더할 나위 없이 억울하게 산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민주당은 북한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서해사태 직후 대통령외 교안보수석비서관은 햇볕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될 것을 시사하는가 하면 통일부는 민간차원의 남북교류 협력을 예정대로 추친하고 금강산관광도 계속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같은 태도는 북한군의 의도적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국민감정이 격앙되면서 북한에 대해 더 이상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 야당의 주장이 설득력을 더해가는 현실을 외면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한쪽에서 북한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마당에 다른 한쪽에서 대북유화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들에게 혼란만을 가중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국회 즉각 소집해 북 도발 원인 대책 따져야
북한의 ‘서해만행’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예정대로 일본을 방문하고, 월드컵 성공축하 국민축제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순국한 장병 장례식에 총리 장관은 물론 국회의원도 참석하지 않았다.
북한은 서해만행을 자행하고서도 ‘남조선의 선제공격에 따른 자위적 조처’라고 강변하면서 이번 사건을 공동조사하자는 유엔사의 제의에 대해 북방한계선(NLL)을 먼저 제거해야 응할 수 있다는 고압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나아가서 남한의 월드컵 4강진출을 축하하는 이중적 양동작전을 펼쳐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즉각 국회를 소집하고 북한의 도발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정부도 햇볕정책을 조절함으로써 국민들의 격앙된 감정을 누그러뜨려야 할 책무가 있다.
이경일 언론인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이경일 언론인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한달 이상 전국민을 열광케 했던 한일월드컵이 막을 내렸다. 이 기간동안 국민들은 한결같이 한국 축구팀의 선전에 환호하면서 답답한 일상으로부터 일탈(逸脫)하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난 주말 북한이 서해상에서 무력도발을 저질러 월드컵 열기에 찬물을 끼얹고 전세계의 이목을 한반도의 냉혹한 현실로 되돌려 놓았다.
이번 서해교전은 우발적 충돌이 아니다. 남북한의 정치적 상황, NLL을 둘러싼 국제법적 문제, 교전수칙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항상 재발 가능성이 있는 중대한 사안이다. 이같이 한반도의 명운이 달린 북의 무력도발 사태속에서도 우리 국회는 문을 열지 않고 말문을 닫고 있다. 어느 나라 어느 하늘 아래 이런 ‘식물국회’가 또 있는지 묻고 싶다.
이 나라 정치권의 한심한 작태는 이뿐만이 아니다. 국민들이 월드컵에 엄청난 열기를 쏟아부으면서도 중요한 참정권의 하나인 지방선거를 외면한 것은 그동안 정치인들이 보여준 한심한 작태에 대한 엄숙한 심판이 아닐 수 없다.
DJ정권은 민주화투쟁에 헌신했다고 자부하면서도 총리를 비롯한 정부요직과 정부 산하 기관장들에 민주화 과정에서 권위주의 정권들에 기생했거나 기회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인사들을 대거 기용했다. 현 정권은 그것도 모자라 지방색을 탈피하겠다는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고 권력의 핵심적 자리에는 특정지역 인사들을 끊임없이 등용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통령 아들들이 부정과 비리에 연루되어 2명이나 구속되어 국가의 권위를 실추시키고 국민들까지 부끄럽게 만들었던 것이다.
‘전쟁’ 방불한 ‘서해 교전’에도 국회 개원 안해
정부·여당은 권력부패에 있어서 과거 정권들을 뺨치는 행태를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과중한 부담과 불편을 안겨준 의약분업, 수많은 학부모와 입시생들을 당황하게 만든 ‘교육개혁’으로 무능함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정부와 민주당은 이같이 낙하산 인사, 부패와 무능 등으로 지방선거에 참패한 후에도 이렇다할 반성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측은 대통령이 민주당을 탈당했기 때문에 민주당 패배에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선거패배의 책임을 청와대에 전가하면서 전면 개객, 박지원 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의 교체, 아태재단 해체 등을 건의했다. 정부와 민주당은 서로 ‘내 탓이 아니라 네 탓’이라고 상대방을 삿대질하는 형국이다.
민주당이 선거패배와 탈DJ문제를 놓고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한나라당 역시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데에서 비롯된 오만함을 은연중에 드러냈다. 선거재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사법부를 근거없이 매도하는가 하면 “좋은 학교를 나온 좋은 가문출신의 훌륭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한다”는 듣기에 따라 국민들에게 위화감을 조장할 수 있는 발언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정치인들이 지난 한달여 동안 보여준 실망스런 행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그들은 16대 국회 후반기가 지난 5월말 시작됐는데도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국회를 ‘식물화’하고 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국회의장단과 상임위원장 배분을 둘러싸고 줄기차게 샅바싸움을 벌였다. 따가운 국민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양당총무가 오는 8일 원구성에 일단 합의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그동안 식물국회를 방치해온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정부와 민주당은 우리 해군 장병 20여명이 사상한 서해교전 사태에 대해서도 국민감정과는 동떨어진 태도를 보였다. 북한군의 일방적 공격으로 우리 고속정이 침몰하고 꽃다운 나이의 장병들이 더할 나위 없이 억울하게 산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민주당은 북한에 대해 단호한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
서해사태 직후 대통령외 교안보수석비서관은 햇볕정책이 일관되게 유지될 것을 시사하는가 하면 통일부는 민간차원의 남북교류 협력을 예정대로 추친하고 금강산관광도 계속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이같은 태도는 북한군의 의도적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국민감정이 격앙되면서 북한에 대해 더 이상 끌려다녀서는 안된다는 야당의 주장이 설득력을 더해가는 현실을 외면하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국방부를 비롯한 정부 한쪽에서 북한측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하는 마당에 다른 한쪽에서 대북유화태도를 보이는 것은 국민들에게 혼란만을 가중시키고 있을 따름이다.
국회 즉각 소집해 북 도발 원인 대책 따져야
북한의 ‘서해만행’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예정대로 일본을 방문하고, 월드컵 성공축하 국민축제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순국한 장병 장례식에 총리 장관은 물론 국회의원도 참석하지 않았다.
북한은 서해만행을 자행하고서도 ‘남조선의 선제공격에 따른 자위적 조처’라고 강변하면서 이번 사건을 공동조사하자는 유엔사의 제의에 대해 북방한계선(NLL)을 먼저 제거해야 응할 수 있다는 고압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 북한은 나아가서 남한의 월드컵 4강진출을 축하하는 이중적 양동작전을 펼쳐 국민들을 더욱 분노케 하고 있다.
정치인들은 즉각 국회를 소집하고 북한의 도발을 철저히 따져야 한다. 정부도 햇볕정책을 조절함으로써 국민들의 격앙된 감정을 누그러뜨려야 할 책무가 있다.
이경일 언론인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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