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재판권 관할 이양하라
김삼웅 언론인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신효순양과 심미선양의 49제가 다가온다. 14살 동갑의 중학교 2학년 단짝이었던 두 소녀는 한국과 포르투갈전을 하루 앞두고 온나라가 월드컵경기에 초여름의 지열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던 6월 13일, 짧은 삶을 접었다.
친구 생일을 맞아 축하하고 월드컵경기도 응원하고자 꽃한송이씩 들고 집을 나선 것이 이승의 마지막길이 되고 꽃송이는 자신들의 조화가 되었다.
지난 두달동안 한미양국은 이 문제로 상당히 진통을 겪었다. 희생자 유족에 1억9000여만원씩의 배상금이 산정되는 등 ‘민사상’의 뒤처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되가는 듯하지만 ‘본질’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한미 두 나라는 이번주에 사고 재조사를 실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29일 합동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회견에서는 사건경위와 유사사건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측은 ‘공무중’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재판권 이양은 어렵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한다.
소녀들은 미군전차에 치여 숨졌다. 훈련중이던 미2사단 공병대소속 궤도차량, 운정병은 마크 워커 병장이고 관제병은 페르난도 니노 병장이다. 정상적인 운전이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사고였다.
사고 발생 후 미2사단공보실장 메이커소령은 “어느 누구의 과실도 없다”고 훈련 중 생긴 교통사고로 단정하고 월드컵 보도에 정신이 쏠린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1단 기사 아니면 아예 묵살했다.
미처 피지도 못한 채 비명에 간 소녀들과 졸지에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딸을 잃은 부모의 한이 중천을 맴돈다. 동족끼리 싸움에 외국군대가 지켜주지 않으면 불안한 나라의 불행이 어린 소녀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날로부터 16일후 서해안에서는 생때같은 해군 5명이 이번에는 동족이 쏜 포탄에 젊은 꿈을 푸른 바다에 묻어야 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소파(SOFA)’
또래들이 붉은 악마가 되어 월드컵 경기를 즐길 때 소녀들은 미군캐터필러에 깔리고, 청년들은 동족의 포탄에 찢겨야 했으니, 세계 만방에 메아리친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쟁과 평화의 이중구조가 겹겹임을 보여준다.
소녀들을 숨지게 한 미군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처음부터 사고진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책임을 따지는 시위대원들에 밀려 부대안으로 들어간 기자들을 폭행 감금하고 뒤늦게 검찰에 나타났다가 멋대로 귀대하는 등 우리 공권력을 무시한다. 자기들은 신변위협과 초상권침해까지 내세우면서 소녀들의 죽음과 유족의 아픔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미국의 인권정책은 대내용과 대외용 두 가지 잣대가 적용되는가. 자국민의 인권은 최고 가치로 여기면서 남의 나라 인권은 무시로 짓밟는다. 이번 사건만 해도 진상을 밝히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유족에 사과하면서 배상과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였다.
그럼에도 “과실이 없었다”고 사건을 덮으려하다가 시민, 인권단체가 나서자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이 “미육군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고 다시 허바드 대사가 미국정부와 주한미군을 대신하여 사과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뒤늦은 사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 배상과 특히 문제의 본질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미군은 그동안 수차례 유사사건에도 근본적 해결보다 땜질식으로 일관해왔다.
아무리 건국기념일이라 해도 사고부대가 자숙하기는커녕 축제에 축포를 쏘는 등 국민감정에 깊은 상처도 남겼다.
이같은 오만은 ‘권리 위에 잠자는’ 우리 정부의 나약성에도 책임이 있다. 1991년 소파의 개정으로 우리가 미군의 형사재판권 관할권 포기를 요구하도록 하고도 법무부가 미군에 요구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번에 법무부가 권리행사를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미군의 사려 깊은 태도가 기대된다.
진정한 우호는 동등한 권리에서
우리 땅에서 일어난 외국인 범죄는 우리가 재판하는 것이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이다. 미군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미국은 소파에서 일본과 한국의 차별이 심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시정에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1995년 오키나와 주일미군의 여중생 성폭행사건으로 주일사령관, 주일미대사에 이어 클린턴 대통령까지 사과하고 가해자가 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소파내용을 개정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삼아 최소한 일본수준으로 소파를 개정하여 재판권 관할이 우리쪽으로 이양되어야 한다. 그것이 소녀들의 넋을 위로하고 한미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는 길이 될 것이다.
혈맹 관계인 미국과는 껄끄러운 문제일수록 덮거나 축소하여 안으로 곪아터지게 하기보다 따질 것 따지고 시정할 것 시정하면서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진정한 선린우호의 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9일의 회견이 국민의 반미감정으로 폭발하지 않도록 미국측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김삼웅 언론인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김삼웅 언론인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신효순양과 심미선양의 49제가 다가온다. 14살 동갑의 중학교 2학년 단짝이었던 두 소녀는 한국과 포르투갈전을 하루 앞두고 온나라가 월드컵경기에 초여름의 지열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르던 6월 13일, 짧은 삶을 접었다.
친구 생일을 맞아 축하하고 월드컵경기도 응원하고자 꽃한송이씩 들고 집을 나선 것이 이승의 마지막길이 되고 꽃송이는 자신들의 조화가 되었다.
지난 두달동안 한미양국은 이 문제로 상당히 진통을 겪었다. 희생자 유족에 1억9000여만원씩의 배상금이 산정되는 등 ‘민사상’의 뒤처리는 어느 정도 마무리 되가는 듯하지만 ‘본질’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한미 두 나라는 이번주에 사고 재조사를 실시한 내용을 바탕으로 29일 합동기자회견을 갖기로 했다. 회견에서는 사건경위와 유사사건 재발 방지 대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측은 ‘공무중’ 발생한 사고이기 때문에 재판권 이양은 어렵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한다.
소녀들은 미군전차에 치여 숨졌다. 훈련중이던 미2사단 공병대소속 궤도차량, 운정병은 마크 워커 병장이고 관제병은 페르난도 니노 병장이다. 정상적인 운전이었다면 생기지 않았을 사고였다.
사고 발생 후 미2사단공보실장 메이커소령은 “어느 누구의 과실도 없다”고 훈련 중 생긴 교통사고로 단정하고 월드컵 보도에 정신이 쏠린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1단 기사 아니면 아예 묵살했다.
미처 피지도 못한 채 비명에 간 소녀들과 졸지에 눈에 넣어도 아깝지 않을 딸을 잃은 부모의 한이 중천을 맴돈다. 동족끼리 싸움에 외국군대가 지켜주지 않으면 불안한 나라의 불행이 어린 소녀들의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날로부터 16일후 서해안에서는 생때같은 해군 5명이 이번에는 동족이 쏜 포탄에 젊은 꿈을 푸른 바다에 묻어야 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소파(SOFA)’
또래들이 붉은 악마가 되어 월드컵 경기를 즐길 때 소녀들은 미군캐터필러에 깔리고, 청년들은 동족의 포탄에 찢겨야 했으니, 세계 만방에 메아리친 ‘대~한민국’은 여전히 전쟁과 평화의 이중구조가 겹겹임을 보여준다.
소녀들을 숨지게 한 미군의 태도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 한둘이 아니다. 처음부터 사고진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았다. 책임을 따지는 시위대원들에 밀려 부대안으로 들어간 기자들을 폭행 감금하고 뒤늦게 검찰에 나타났다가 멋대로 귀대하는 등 우리 공권력을 무시한다. 자기들은 신변위협과 초상권침해까지 내세우면서 소녀들의 죽음과 유족의 아픔에는 아랑곳 하지 않는다.
미국의 인권정책은 대내용과 대외용 두 가지 잣대가 적용되는가. 자국민의 인권은 최고 가치로 여기면서 남의 나라 인권은 무시로 짓밟는다. 이번 사건만 해도 진상을 밝히고 가해자를 처벌하고 유족에 사과하면서 배상과 재발방지책을 마련하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였다.
그럼에도 “과실이 없었다”고 사건을 덮으려하다가 시민, 인권단체가 나서자 라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이 “미육군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인정하고 다시 허바드 대사가 미국정부와 주한미군을 대신하여 사과한다고 한발 물러섰다.
뒤늦은 사과로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가해자 처벌, 재발방지, 배상과 특히 문제의 본질인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의 개정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미군은 그동안 수차례 유사사건에도 근본적 해결보다 땜질식으로 일관해왔다.
아무리 건국기념일이라 해도 사고부대가 자숙하기는커녕 축제에 축포를 쏘는 등 국민감정에 깊은 상처도 남겼다.
이같은 오만은 ‘권리 위에 잠자는’ 우리 정부의 나약성에도 책임이 있다. 1991년 소파의 개정으로 우리가 미군의 형사재판권 관할권 포기를 요구하도록 하고도 법무부가 미군에 요구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번에 법무부가 권리행사를 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미군의 사려 깊은 태도가 기대된다.
진정한 우호는 동등한 권리에서
우리 땅에서 일어난 외국인 범죄는 우리가 재판하는 것이 주권국가의 당연한 권리이다. 미군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미국은 소파에서 일본과 한국의 차별이 심하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시정에 인색해서는 안될 것이다.
일본에서는 1995년 오키나와 주일미군의 여중생 성폭행사건으로 주일사령관, 주일미대사에 이어 클린턴 대통령까지 사과하고 가해자가 재판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소파내용을 개정한 바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삼아 최소한 일본수준으로 소파를 개정하여 재판권 관할이 우리쪽으로 이양되어야 한다. 그것이 소녀들의 넋을 위로하고 한미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는 길이 될 것이다.
혈맹 관계인 미국과는 껄끄러운 문제일수록 덮거나 축소하여 안으로 곪아터지게 하기보다 따질 것 따지고 시정할 것 시정하면서 동반자 관계로 발전하는 것이 진정한 선린우호의 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9일의 회견이 국민의 반미감정으로 폭발하지 않도록 미국측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김삼웅 언론인 성균관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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