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강소국 발전모델의 교훈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현재 듀크대학교 초빙교수
세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누구나 대한민국을 비교잣대로 보게 된다. 서구나 북미 혹은 일본에 훨씬 떨어지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동부유럽에 비하면 잘 사는 국가로 우리나라를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은 국제계층구조안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중진국이다. 실상 지구경제안에서 주변부의 위치를 벗어나 중심부에 들어설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인구는 많고 땅은 좁고 자원도 부족하지만 경제규모 면에서 세계 13위, 한국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번듯한 경제성장 신화의 이면에는 민주주의의 답보와 사회복지의 낙후라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두 차례 민간정권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주주의는 대의성과 책임성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기초생활보호법’과 같은 사회복지의 근간이 마련되었지만 우리의 복지제도는 여전히 정치적 의도에 의해 윤색되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도 외양에 비해 실속이 없다. 우리의 주력산업 중 철강,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이 생산면에서 세계5위에 든다 하지만, 기술 부품 소재 면에서 해외의존도가 높다. 생산량과 판매량은 높지만 기술력과 수익성은 떨어진다. 한국경제가 이룬 고도성장은 주로 부품과 소재를 선진국에서 수입하여 그것을 조립하여 바깥으로 수출하는 이른바 ‘통과경제’의 덕택이다. 경기변동이나 금융위기와 같은 바깥바람에 취약한 우리의 산업구조와 금융구조가 그 증거다.
지금까지 한국은 일본의 발전 모델을 따라 정부주도적, 재벌중심적, 수출지향적 전략에 의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 해왔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러한 발전전략은 ‘1997년 경제위기’가 보여주듯 강점 못지않은 단점을 지닌다. 오늘날과 같이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 대기업중심의 선단식 경제는 유연성과 대응력이 떨어진다.
수출중심의 산업·금융구조로 대외종속 극복
시장의 조정자로서 정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민간부문의 자율성이 늘어날 수 있도록 간섭과 규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라 할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배후에는 관치금융과 정책대출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유럽의 작은 나라들의 발전 전략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개방정책아래 수출중심의 산업구조와 금융구조를 가지고 대외종속의 위험을 이겨내면서 안으로 성장과 평등을 이루어 왔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등이 그들이다. 이 나라들은 천연자원 부족을 인적자원 육성으로 채워가면서 세계경제의 흐름에 맞게 산업구조를 전통산업에서 정보산업으로 부단히 바꿔오면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이러한 개방경제아래에서 이 나라들은 농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절대 궁색하지 않으며 자연과 환경은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처럼 산업화의 와중에서 농촌이 붕괴되고 농민이 희생되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지금으로부터 일년 전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이러한 유럽의 작은 나라들의 발전경험을 강소국(强小國) 모델로 일반화한 바 있다. 지구경제안에서 국가 규모는 작지만 국제경쟁력이 높은 국가들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일본 모델에 의해 발전을 꾀하면서 미래의 이상은 자원절약형 독일보다 역설적으로 자원풍부형 미국에 설정하여 왔다. 경제와 정치를 막론하고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자원과 효율의 조화라는 점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까닭도 여러 나라들의 문물과 제도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도태의 무서운 21세기 정글자본주의 아래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리식의 발전모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일부 유럽국가들이 이룬 강소국 모델의 성공 비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비밀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적 산업화정책에도 있지만 그를 뒤받침 해주는 포용과 타협의 노사정 3자협의체제에 있다.
이 나라들은 언어나 종교뿐만 아니라 산업과 계층 사이의 차이와 갈등을 조합주의에 의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극복해 왔다. 기업가는 노동조합의 권위를 인정하고 노동자는 생산과 고용에서 기업과 책임을 공유한다. 정부는 임금인상이나 실업문제에서 노동조합과 기업으로부터 동의를 구하기 위해 사회보험과 교육훈련이라는 복지의 안전망을 만들어 놓고 있다.
조합주의적 사회적 합의 존중해야
이러한 조합주의적 노사정합의는 지금과 같이 자본과 생산이 국제화되는 지구경제안에서 그 효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노사정합의만이 세계화가 주는 구조조정의 압력을 견디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의 경우 노사정합의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할 정당이 나와야 하고, 노동조합이 대표성을 가져야 하고, 그리고 노동자와 기업가 사이의 엄청난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노사정위원회’가 빈사상태에 놓여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럽 강소국들도 노사정합의를 살리기 위해 주요 위기 때마다 정부와 기업과 노조가 서로 양보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 왔다. 우리의 노사정위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합의가 사회적 합의로 이어지지 못했다는데 있다. 이번 대선에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심도 있는 정책 토론과 대결을 여야정당의 대선후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현재 듀크대학교 초빙교수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현재 듀크대학교 초빙교수
세계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누구나 대한민국을 비교잣대로 보게 된다. 서구나 북미 혹은 일본에 훨씬 떨어지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동부유럽에 비하면 잘 사는 국가로 우리나라를 평가할 수 있다. 오늘날 한국은 국제계층구조안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중진국이다. 실상 지구경제안에서 주변부의 위치를 벗어나 중심부에 들어설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
인구는 많고 땅은 좁고 자원도 부족하지만 경제규모 면에서 세계 13위, 한국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번듯한 경제성장 신화의 이면에는 민주주의의 답보와 사회복지의 낙후라는 현실이 자리잡고 있다.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룬 두 차례 민간정권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주주의는 대의성과 책임성을 조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기초생활보호법’과 같은 사회복지의 근간이 마련되었지만 우리의 복지제도는 여전히 정치적 의도에 의해 윤색되는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경제도 외양에 비해 실속이 없다. 우리의 주력산업 중 철강,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이 생산면에서 세계5위에 든다 하지만, 기술 부품 소재 면에서 해외의존도가 높다. 생산량과 판매량은 높지만 기술력과 수익성은 떨어진다. 한국경제가 이룬 고도성장은 주로 부품과 소재를 선진국에서 수입하여 그것을 조립하여 바깥으로 수출하는 이른바 ‘통과경제’의 덕택이다. 경기변동이나 금융위기와 같은 바깥바람에 취약한 우리의 산업구조와 금융구조가 그 증거다.
지금까지 한국은 일본의 발전 모델을 따라 정부주도적, 재벌중심적, 수출지향적 전략에 의해 선진국을 따라잡으려 해왔다. ‘한강의 기적’을 이룬 이러한 발전전략은 ‘1997년 경제위기’가 보여주듯 강점 못지않은 단점을 지닌다. 오늘날과 같이 다품종 소량생산 시대에 대기업중심의 선단식 경제는 유연성과 대응력이 떨어진다.
수출중심의 산업·금융구조로 대외종속 극복
시장의 조정자로서 정부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민간부문의 자율성이 늘어날 수 있도록 간섭과 규제를 풀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고질병이라 할 정경유착과 부정부패의 배후에는 관치금융과 정책대출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유럽의 작은 나라들의 발전 전략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교훈은 이미 오래 전부터 개방정책아래 수출중심의 산업구조와 금융구조를 가지고 대외종속의 위험을 이겨내면서 안으로 성장과 평등을 이루어 왔다는 점이다.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스위스, 스웨덴, 핀란드 등이 그들이다. 이 나라들은 천연자원 부족을 인적자원 육성으로 채워가면서 세계경제의 흐름에 맞게 산업구조를 전통산업에서 정보산업으로 부단히 바꿔오면서 경쟁력을 키워왔다.
이러한 개방경제아래에서 이 나라들은 농업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농촌은 도시에 비해 절대 궁색하지 않으며 자연과 환경은 잘 보존되어 있다. 우리처럼 산업화의 와중에서 농촌이 붕괴되고 농민이 희생되는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지금으로부터 일년 전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이러한 유럽의 작은 나라들의 발전경험을 강소국(强小國) 모델로 일반화한 바 있다. 지구경제안에서 국가 규모는 작지만 국제경쟁력이 높은 국가들이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일본 모델에 의해 발전을 꾀하면서 미래의 이상은 자원절약형 독일보다 역설적으로 자원풍부형 미국에 설정하여 왔다. 경제와 정치를 막론하고 한국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이 자원과 효율의 조화라는 점에서 이것도 저것도 아닌 까닭도 여러 나라들의 문물과 제도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경쟁과 도태의 무서운 21세기 정글자본주의 아래에서 한국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우리식의 발전모델을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일부 유럽국가들이 이룬 강소국 모델의 성공 비밀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 비밀은 선택과 집중이라는 전략적 산업화정책에도 있지만 그를 뒤받침 해주는 포용과 타협의 노사정 3자협의체제에 있다.
이 나라들은 언어나 종교뿐만 아니라 산업과 계층 사이의 차이와 갈등을 조합주의에 의한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극복해 왔다. 기업가는 노동조합의 권위를 인정하고 노동자는 생산과 고용에서 기업과 책임을 공유한다. 정부는 임금인상이나 실업문제에서 노동조합과 기업으로부터 동의를 구하기 위해 사회보험과 교육훈련이라는 복지의 안전망을 만들어 놓고 있다.
조합주의적 사회적 합의 존중해야
이러한 조합주의적 노사정합의는 지금과 같이 자본과 생산이 국제화되는 지구경제안에서 그 효력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노사정합의만이 세계화가 주는 구조조정의 압력을 견디게 해주는 기능을 한다.
우리의 경우 노사정합의를 위해서는 노동자의 이해를 대변할 정당이 나와야 하고, 노동조합이 대표성을 가져야 하고, 그리고 노동자와 기업가 사이의 엄청난 불신을 극복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노사정위원회’가 빈사상태에 놓여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럽 강소국들도 노사정합의를 살리기 위해 주요 위기 때마다 정부와 기업과 노조가 서로 양보하고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 왔다. 우리의 노사정위원회의 가장 큰 문제는 정치적 합의가 사회적 합의로 이어지지 못했다는데 있다. 이번 대선에서 사회적 합의를 위한 심도 있는 정책 토론과 대결을 여야정당의 대선후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임현진 서울대학교 교수 사회학 현재 듀크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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