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5일 근무제 늦출 수 없다
임춘웅 객원논설위원
7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한국 사람도 여행 좀 하는 사람이면 한두 개는 가지고 있을법한 샘소나이트 가방 메이커인 미국의 샘소나이트사가 주 5일제 아닌 주 4일 근무제를 시험 실시한 일이 있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흘만 일하고 3일을 쉬는 근무시스템이었다. 대신 일을 하는 나흘 동안 근로자는 하루 2시간씩 일을 더해 당시 법정 근로시간이었던 주 40시간을 맞췄다. 한동안 시험 실시를 해본 결과 회사에선 만족할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산성에도 문제가 없었고 공장 운영상 전기료 등 경비 절감효과까지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근로자 쪽에서 제기됐다. 미국은 주 2일 휴무제가 오래전부터 정착돼 있고 독립기념일을 제외한 다른 공휴일은 다 주말이나 주초에 붙여 한달에 평균 한주꼴로 3일 연휴가 되도록 해놓았다. 그러니까 미국사람들은 매주 쉬는 토 일요일은 집에서 쉬지만 3일 연휴 때는 대부분 밖으로 나가 여행을 즐기는 게 하나의 생활습관이 돼있다. 그런데 매주 3일을 쉬게 되니 3일 동안 집안에 계속 눌러 앉아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수입은 같은데 여행지출만 늘어 가계가 엉망이 된 것이다. 주 4일 근무제는 결국 회사가 아닌 근로자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5일제 표류, 노사 집단 이기주의 때문
지금 우리는 주 5일 근무제 도입문제로 논란이 많다. 노동부가 최근 주 5일 근무제 법안(근로기준법 개정안)을 8월말께 입법예고하겠다고 하자 재계와 일부 언론사가 앞장서 5일제를 왜 정부가 서두르느냐며 비판하고 있다. 정부입법안은 노사정위원회가 2년여의 협의에도 불구하고 끝내 최종 합의안을 만들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자 노사정의 암묵적 합의 아래 정부가 떠맡게 된 사안이다.
사리가 그러함에도 이제 와서 왜 정부가 서두느냐고 하면 일이 우습게 된다. 또 5일제 반대론자 중에는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해 두었던 부분까지 원점으로 돌려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 노사정이 최종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기히 합의해둔 부분은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노사정이 합의하지 못했던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 방식과 연차휴가 일수 산정 방법뿐이었으며 주 40시간 근무 등 주요문제는 대부분 합의해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서조차 당마다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정부 생각대로 내년부터 5일제가 단계적으로나마 실시되리라는 전망도 희미해 보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주 5일 근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돼있다는 점이다. 근로자의 ‘삶의 질’이니 뭐니 하는 호사스런 말보다 세계적 대세인 5일제를 더 이상 질질 끌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굳이 버티자면 버틸 수는 있을 것이나 그 사회 비용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만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치고 5일제를 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 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금융권이 이미 5일제를 실시하고 있고 정부도 격주 휴무제를 시험 실시중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사업장에서만 5일제를 못하겠다고 하면 근로자들이 그대로 순순히 따르리라고 보는가. 반대자들은 사업장별 노사합의를 주장하나 사업장 별로 합의를 유도하려면 그 진통은 또 어찌 되는가. 재계도 현실을 냉엄하게 볼 필요가 있다. 줄 것은 주고 대신 노동의 질을 높여 손실을 보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돈 적게 주고 일 많이 시킬 수 있다면 기업 경쟁력 생기고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어디 그렇게 되겠는가.
적은 돈에 많은 일 시키는 구시대 발상 버려야
5일제는 정치권에서도 미룰 명분이 없다. 근로시간 단축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공히 선거공약으로 국민에 약속한 일이며 국민여론 조사에서도 절대적 다수인 국민 74%가 지지하고 있는 사안이다( 2001년 7월 한길리서치 조사)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주 5일제를 받아들이는 게 대세이지만 노사간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수상한 말을 하고 있다. 정치권이 이해당사자인 재계의 합의에 책임을 미루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한 처사다.
주 5일 근무제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대세이므로 정부도 법안만 불쑥 내밀어 놓고 팔장끼고 앉아 있을 일이 아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노사정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정치권의 합의도 일궈내 입법이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샘소나이트사의 경우에서 본 것처럼 너무 앞서가는 것도 문제지만 시대의 흐름을 지나치게 거스르는 것도 결국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 시대가 용납치 않을 것이다.
임춘웅 객원논설위원
임춘웅 객원논설위원
7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한다. 한국 사람도 여행 좀 하는 사람이면 한두 개는 가지고 있을법한 샘소나이트 가방 메이커인 미국의 샘소나이트사가 주 5일제 아닌 주 4일 근무제를 시험 실시한 일이 있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흘만 일하고 3일을 쉬는 근무시스템이었다. 대신 일을 하는 나흘 동안 근로자는 하루 2시간씩 일을 더해 당시 법정 근로시간이었던 주 40시간을 맞췄다. 한동안 시험 실시를 해본 결과 회사에선 만족할 만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생산성에도 문제가 없었고 공장 운영상 전기료 등 경비 절감효과까지 났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근로자 쪽에서 제기됐다. 미국은 주 2일 휴무제가 오래전부터 정착돼 있고 독립기념일을 제외한 다른 공휴일은 다 주말이나 주초에 붙여 한달에 평균 한주꼴로 3일 연휴가 되도록 해놓았다. 그러니까 미국사람들은 매주 쉬는 토 일요일은 집에서 쉬지만 3일 연휴 때는 대부분 밖으로 나가 여행을 즐기는 게 하나의 생활습관이 돼있다. 그런데 매주 3일을 쉬게 되니 3일 동안 집안에 계속 눌러 앉아 있을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수입은 같은데 여행지출만 늘어 가계가 엉망이 된 것이다. 주 4일 근무제는 결국 회사가 아닌 근로자들의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5일제 표류, 노사 집단 이기주의 때문
지금 우리는 주 5일 근무제 도입문제로 논란이 많다. 노동부가 최근 주 5일 근무제 법안(근로기준법 개정안)을 8월말께 입법예고하겠다고 하자 재계와 일부 언론사가 앞장서 5일제를 왜 정부가 서두르느냐며 비판하고 있다. 정부입법안은 노사정위원회가 2년여의 협의에도 불구하고 끝내 최종 합의안을 만들지 못한 채 결렬되고 말자 노사정의 암묵적 합의 아래 정부가 떠맡게 된 사안이다.
사리가 그러함에도 이제 와서 왜 정부가 서두느냐고 하면 일이 우습게 된다. 또 5일제 반대론자 중에는 노사정위원회가 합의해 두었던 부분까지 원점으로 돌려 문제를 다시 제기하고 있다. 노사정이 최종적으로 합의안을 도출해 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기히 합의해둔 부분은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노사정이 합의하지 못했던 문제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보전 방식과 연차휴가 일수 산정 방법뿐이었으며 주 40시간 근무 등 주요문제는 대부분 합의해 두었던 것이다.
그런데 국회에서조차 당마다 미묘한 입장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정부 생각대로 내년부터 5일제가 단계적으로나마 실시되리라는 전망도 희미해 보인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주 5일 근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돼있다는 점이다. 근로자의 ‘삶의 질’이니 뭐니 하는 호사스런 말보다 세계적 대세인 5일제를 더 이상 질질 끌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굳이 버티자면 버틸 수는 있을 것이나 그 사회 비용은 또 얼마나 될 것인가.
우리만한 경제력을 가진 나라치고 5일제를 하지 않고 있는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 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금융권이 이미 5일제를 실시하고 있고 정부도 격주 휴무제를 시험 실시중에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유독 사업장에서만 5일제를 못하겠다고 하면 근로자들이 그대로 순순히 따르리라고 보는가. 반대자들은 사업장별 노사합의를 주장하나 사업장 별로 합의를 유도하려면 그 진통은 또 어찌 되는가. 재계도 현실을 냉엄하게 볼 필요가 있다. 줄 것은 주고 대신 노동의 질을 높여 손실을 보전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돈 적게 주고 일 많이 시킬 수 있다면 기업 경쟁력 생기고 얼마나 좋은 일인가. 그러나 어디 그렇게 되겠는가.
적은 돈에 많은 일 시키는 구시대 발상 버려야
5일제는 정치권에서도 미룰 명분이 없다. 근로시간 단축은 지난 16대 총선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공히 선거공약으로 국민에 약속한 일이며 국민여론 조사에서도 절대적 다수인 국민 74%가 지지하고 있는 사안이다( 2001년 7월 한길리서치 조사) 국회 다수당인 한나라당은 “기본적으로 주 5일제를 받아들이는 게 대세이지만 노사간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수상한 말을 하고 있다. 정치권이 이해당사자인 재계의 합의에 책임을 미루는 것은 지나치게 무책임한 처사다.
주 5일 근무제는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대세이므로 정부도 법안만 불쑥 내밀어 놓고 팔장끼고 앉아 있을 일이 아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노사정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정치권의 합의도 일궈내 입법이 성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샘소나이트사의 경우에서 본 것처럼 너무 앞서가는 것도 문제지만 시대의 흐름을 지나치게 거스르는 것도 결국 사회적 갈등만 키울 뿐 시대가 용납치 않을 것이다.
임춘웅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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