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제헌절 날 집안친척들과 대규모 온천장에 갔었다. 우리는 음식을 준비해 갔지만 온천장 입구의 ‘음식물반입금지’라는 푯말 때문에 갖고 들어가지 않았다. 그러나 몇몇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돗자리 깔고 준비해온 음식으로 성찬을 차려놓았다. 음식을 밖에 두고 온 것이 낭패였지만 관행상 지켜지지 않고 있는 ‘음식물반입금지’라는 푯말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우리는 준칙의 존재가치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엄격하게 음식물반입을 금지하여 푯말의 좌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지켜지지도 않는 푯말을 뽑아 버릴 것인가’에 대한 용단을 내려야, 현실과 푯말의 이중적 구조를 해결하게 된다.
이는 최근의 ‘총리서리제도’ 위헌성 논란의 본질과 일맥상통한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여야 하는 총리직을 서리제도로 운영하는 것은 분명히 헌법위반이다. 그러나 관행으로 굳어진 총리직 서리를 갑자기 위헌으로 몰아붙이는 것 또한 비현실적이다. 이 문제는 온천장 입구의 음식물반입금지 푯말의 존폐문제와 다를 게 없다. 총리서리제를 거부하여 위헌요소를 제거할 것인가, 아니면 국회인사청문회와 동의과정 중 서리제가 유지되도록 법률적 차원에서 보완할 것인가를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헌법규범과 헌법현실간의 괴리는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 질 때부터 예고되었다. 1948년 7월 17일을 기리는 제헌절 노래에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라는 구절이 있다. 과거 학창시절 제헌절 기념은 그 컨셉이 ‘호헌론’이었다.
모든 국민은 헌법을 금과옥조로 여기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러나 한국헌법사는 정치지도자들의 자의에 의하여 무참히 짓밟혀 온 역사 그 자체였다. 제헌헌법은 제정 당초부터 헌법안을 기초하는 자(내각제 주장)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대통령제 주장)간의 야합으로 탄생되었기에 매우 기형적인 정부형태를 갖게 되었다. 속은 내각제고 겉은 대통령제였던 제헌헌법의 전통이 요즘 총리서리제와 같은 위헌문제를 낳았던 것이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아닌 대통령제를 하면서 총리임명의 국회동의를 필수요건으로 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절차다. 의원내각제가 의원이 행정을 책임지는 것이라면 대통령제란 총리가 아닌 대통령이 행정을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에는 총리서리제도와 같은 규범과 현실간의 괴리 못잖게 헌법의 기본원칙에 반하는 요소들이 상당하다. 때문에 정치적 혼란과 격변기에는 여지없이 개헌론과 함께 호헌론 및 위헌론이 등장한다.
헌법개정은 다른 법과 달리 반드시 국민의 동의를 얻도록 되어 있는 만큼 대단히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정치 수요자인 모든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창구로서 ‘대한민국 헌법개정 국민협의회’와 같은 특별기구를 한시적으로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헌정사상 처음으로 위정자를 위한 헌법이 아닌 국민의 헌법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되어 왔던 헌법 개정사항으로는 대한민국의 영토조항·지방자치제도 및 헌법재판소의 위상문제 등이 있으나 무엇보다 권력구조 부문이 그 중핵이다. 현재 우리의 정부형태를 엄격히 평가하자면 진정한 대통령제가 아니다. 5년 단임제는 소신정치와 평화적 정권교체에는 적잖은 기여를 하였으나, 국민의 재평가를 의식하지 않는 단임제는 국민에게 책임있는 정치를 펼치는데 한계가 있다.
그리고 법률안제출권을 행정부에도 주고 있는 우리 대통령제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입법은 전과정이 국회의 전속권한이 되어야만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대화와 타협이 원활해지고 행정편의보다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 또는 확대방향으로 법률이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 정부형태는 대통령제를 택하든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꾸던 간에 권력구조의 세계적 보편성과 기본원칙에 충실하여야 한다.
요컨대 헌법은 모든 법률의 최고규범이지만 기본권 보장과 권력의 민주화를 외면하고 악용되고 있다면 분명 바꿔야 한다. 다만 특정 정치인의 정치적 계산에 근거한 개헌론·호헌론·위헌론은 이제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국민과의 협의와 동조 아닌 동의가 불가결함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 경기대 교수·헌법학 한국정치법학연구소 소장
우리는 준칙의 존재가치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엄격하게 음식물반입을 금지하여 푯말의 좌표를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지켜지지도 않는 푯말을 뽑아 버릴 것인가’에 대한 용단을 내려야, 현실과 푯말의 이중적 구조를 해결하게 된다.
이는 최근의 ‘총리서리제도’ 위헌성 논란의 본질과 일맥상통한다. 국회의 동의를 얻어 임명하여야 하는 총리직을 서리제도로 운영하는 것은 분명히 헌법위반이다. 그러나 관행으로 굳어진 총리직 서리를 갑자기 위헌으로 몰아붙이는 것 또한 비현실적이다. 이 문제는 온천장 입구의 음식물반입금지 푯말의 존폐문제와 다를 게 없다. 총리서리제를 거부하여 위헌요소를 제거할 것인가, 아니면 국회인사청문회와 동의과정 중 서리제가 유지되도록 법률적 차원에서 보완할 것인가를 판단하여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헌법규범과 헌법현실간의 괴리는 대한민국 헌법이 만들어 질 때부터 예고되었다. 1948년 7월 17일을 기리는 제헌절 노래에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라는 구절이 있다. 과거 학창시절 제헌절 기념은 그 컨셉이 ‘호헌론’이었다.
모든 국민은 헌법을 금과옥조로 여기도록 교육받아 왔다. 그러나 한국헌법사는 정치지도자들의 자의에 의하여 무참히 짓밟혀 온 역사 그 자체였다. 제헌헌법은 제정 당초부터 헌법안을 기초하는 자(내각제 주장)와 정치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자(대통령제 주장)간의 야합으로 탄생되었기에 매우 기형적인 정부형태를 갖게 되었다. 속은 내각제고 겉은 대통령제였던 제헌헌법의 전통이 요즘 총리서리제와 같은 위헌문제를 낳았던 것이다.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가 아닌 대통령제를 하면서 총리임명의 국회동의를 필수요건으로 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절차다. 의원내각제가 의원이 행정을 책임지는 것이라면 대통령제란 총리가 아닌 대통령이 행정을 책임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헌법에는 총리서리제도와 같은 규범과 현실간의 괴리 못잖게 헌법의 기본원칙에 반하는 요소들이 상당하다. 때문에 정치적 혼란과 격변기에는 여지없이 개헌론과 함께 호헌론 및 위헌론이 등장한다.
헌법개정은 다른 법과 달리 반드시 국민의 동의를 얻도록 되어 있는 만큼 대단히 공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에 정치 수요자인 모든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창구로서 ‘대한민국 헌법개정 국민협의회’와 같은 특별기구를 한시적으로 설치할 것을 제안한다.
한국헌정사상 처음으로 위정자를 위한 헌법이 아닌 국민의 헌법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지금까지 논의되어 왔던 헌법 개정사항으로는 대한민국의 영토조항·지방자치제도 및 헌법재판소의 위상문제 등이 있으나 무엇보다 권력구조 부문이 그 중핵이다. 현재 우리의 정부형태를 엄격히 평가하자면 진정한 대통령제가 아니다. 5년 단임제는 소신정치와 평화적 정권교체에는 적잖은 기여를 하였으나, 국민의 재평가를 의식하지 않는 단임제는 국민에게 책임있는 정치를 펼치는데 한계가 있다.
그리고 법률안제출권을 행정부에도 주고 있는 우리 대통령제는 삼권분립의 원칙을 본질적으로 파괴하고 있다.
입법은 전과정이 국회의 전속권한이 되어야만 입법부와 행정부 간의 대화와 타협이 원활해지고 행정편의보다는 국민의 기본권 보장 또는 확대방향으로 법률이 만들어지게 된다.
우리 정부형태는 대통령제를 택하든 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로 바꾸던 간에 권력구조의 세계적 보편성과 기본원칙에 충실하여야 한다.
요컨대 헌법은 모든 법률의 최고규범이지만 기본권 보장과 권력의 민주화를 외면하고 악용되고 있다면 분명 바꿔야 한다. 다만 특정 정치인의 정치적 계산에 근거한 개헌론·호헌론·위헌론은 이제 종지부를 찍기 위해서라도 국민과의 협의와 동조 아닌 동의가 불가결함을 명심하여야 할 것이다.
/ 경기대 교수·헌법학 한국정치법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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