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40분 나리타 공항에서 29인승 버스를 탔다. 토쿄 시내를 간선도로로 우회, 첫 번째 방문지인 사이타마현(埼玉縣) 가와고에시(川越市)를 향했다.
원래 일정에는 치바현 사쿠라시에 있는 (재)사쿠라 환경은행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마침 쉬는 날이라 바로 가와고에로 가기로 했다. 나리타에서 가와고에까지는 총 123Km, 서울에서 대전 정도 거리였지만 꼬박 2시간이 걸렸다.
도로도 무척 답답했다. 온통 소음방지벽으로 이어진 도로에 웬 톨게이트가 그렇게 많은지 … 게다가 통과할 때마다 우리 돈으로 4000원 정도의 통행료가 나왔다.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의 수도가 이렇게 도로에 인색하다니 의외였다.
에도시대 도쿄의 물류기지
3시 40분 가와고에 시청에 도착, 사단법인 일본 내셔널트러스트협회 소속인 ‘가와고에 쿠라의 모임’ 관계자들을 만났다.
‘쿠라’는 2층으로 된 창고 형식의 일본 전통가옥을 일컫는 말이다. 하얀 회벽에 검은 덧칠을 해서 독특한 검은빛을 띄는데, 이는 가와고에 상인들의 고고한 품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가와고에는 에도시대 도쿄의 물류기지(도매상) 역할을 하는 도시였다. 200년 전부터 50년 전까지 가와고에는 성 마을을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50년 전 조금 떨어진 곳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마을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 후 많은 ‘쿠라’들이 헐렸으나 20년 전부터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벌여 시(市) 차원에서 전통가옥으로 이루어진 마을 경관을 보존하는 사업에 눈을 돌리도록 했다.
시 교육위원회 문화재보호과 소속의 사또씨는 “쿠라 보존의 첫째 목적은 문화유산(전통거리) 보전, 둘째는 전통 상점의 활성화”라며 “관광객이 10년 전보다 2배 정도 늘었다”고 강조했다.
실제 가와고에시의 100만 인구 중 순수 주민들은 33만, 상권인구는 60만 정도 된다. 또 봄 가을에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며 이로 인한 수입도 높은 편이다. 전통거리가 보존되면서 마을 사람들의 만족도도 높아졌고 인구도 증가하는 추세인데, 여기에는 도쿄에서 멀지 않다는 장점도 작용한다고 한다.
쿠라 1층은 대부분 가게로 쓰이고 있었다. 주로 예쁜 모양의 일본 전통과자를 파는 곳들이 많았고 도자기 가게, 식품점, 편의점, 식당 등도 자주 눈에 띄었다.
막다른 골목길에는 신사나 불교사찰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넓은 장소는 화재시 불의 확산을 막는 역할도 하며,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장애인 편의 위해 방 문턱 없애
이튿날에는 주먹밥과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서둘러 하고 8시에 호텔을 출발, 동경도 세타가야구에 있는 세타가야 트러스트협회(재단법인 일본 내셔널트러스트 소속) ‘이노마타 정원’을 방문했다.
세타가야 트러스트협회 사무실이 있는 이노마타 정원은 1967년에 건립된 대지 560평에 건평 112평의 전통 일본식 가옥이었다.
건축주는 전 노무행정연구소 이사장이었던 ‘이노마타 타케시’씨로, 노후에 이 집을 세타가야구에 기증했다고 한다.
안내를 맡은 ‘이와키리 마사치카’씨는 “이 집의 설계자는 일본 문화훈장을 받은 ‘요시다 이시다’라는 유명한 건축가”라며 “35년 전에 지어진 주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치밀하고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강조했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60년대 건물로는 드물게 장애인을 위해 각 방의 문턱을 없앴고, 다도(茶道)를 위해 조그만 다다미방이 마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도쿄 토지 너무 비싸 매입 어려워”
특히 정원으로 통하는 미닫이 창호들이 인상적이었다. 밖에서부터 나무판문, 방충창호, 유리창호, 한지창호 순으로 4겹의 창문을 차례차례 닫을 수 있게 돼 있었다.
또 창문 끝 모서리를 45。로 가공, 미닫이문인데도 반대편 창틀이 서로 만나서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만큼 모서리 부분의 기둥이 가늘게 처리되어 방에서 정원을 보는 시야가 한층 시원했다.
이노마타씨가 왜 이 가옥을 세타가야구에 기증했는지 물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세금 관계 때문이다.”
“세타가야 트러스트협회와 세타가야구의 관계는?”
“구청 소속이며 협회에서 일한다. 구에서 100% 출자한 트러스트다. 구에서 기증받은 것을 협회에서 관리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문화재인데, 왜 국가기관이 아니라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보전하는가?”
“문화재관계법 상 건축 후 50년이 지나지 않으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는다. 50년이 지나면 문화재로 지정될 것이다.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민가가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협회 연구원인 ‘유타카 쿠마바라’씨는 “원래 내셔널트러스트는 직접 사서 영구 보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나, 도쿄의 토지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직접 사서 보전하는 방법이 불가능하다”며 “일단 기증을 받고 소유자와 트러스트 협회가 협정을 맺어 소유자가 내는 세금을 면제해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원래 일정에는 치바현 사쿠라시에 있는 (재)사쿠라 환경은행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마침 쉬는 날이라 바로 가와고에로 가기로 했다. 나리타에서 가와고에까지는 총 123Km, 서울에서 대전 정도 거리였지만 꼬박 2시간이 걸렸다.
도로도 무척 답답했다. 온통 소음방지벽으로 이어진 도로에 웬 톨게이트가 그렇게 많은지 … 게다가 통과할 때마다 우리 돈으로 4000원 정도의 통행료가 나왔다. 세계 최대 자동차 생산국의 수도가 이렇게 도로에 인색하다니 의외였다.
에도시대 도쿄의 물류기지
3시 40분 가와고에 시청에 도착, 사단법인 일본 내셔널트러스트협회 소속인 ‘가와고에 쿠라의 모임’ 관계자들을 만났다.
‘쿠라’는 2층으로 된 창고 형식의 일본 전통가옥을 일컫는 말이다. 하얀 회벽에 검은 덧칠을 해서 독특한 검은빛을 띄는데, 이는 가와고에 상인들의 고고한 품격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가와고에는 에도시대 도쿄의 물류기지(도매상) 역할을 하는 도시였다. 200년 전부터 50년 전까지 가와고에는 성 마을을 중심으로 발달했는데, 50년 전 조금 떨어진 곳에 기차역이 생기면서 마을이 쇠락하기 시작했다.
그 후 많은 ‘쿠라’들이 헐렸으나 20년 전부터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벌여 시(市) 차원에서 전통가옥으로 이루어진 마을 경관을 보존하는 사업에 눈을 돌리도록 했다.
시 교육위원회 문화재보호과 소속의 사또씨는 “쿠라 보존의 첫째 목적은 문화유산(전통거리) 보전, 둘째는 전통 상점의 활성화”라며 “관광객이 10년 전보다 2배 정도 늘었다”고 강조했다.
실제 가와고에시의 100만 인구 중 순수 주민들은 33만, 상권인구는 60만 정도 된다. 또 봄 가을에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며 이로 인한 수입도 높은 편이다. 전통거리가 보존되면서 마을 사람들의 만족도도 높아졌고 인구도 증가하는 추세인데, 여기에는 도쿄에서 멀지 않다는 장점도 작용한다고 한다.
쿠라 1층은 대부분 가게로 쓰이고 있었다. 주로 예쁜 모양의 일본 전통과자를 파는 곳들이 많았고 도자기 가게, 식품점, 편의점, 식당 등도 자주 눈에 띄었다.
막다른 골목길에는 신사나 불교사찰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런 넓은 장소는 화재시 불의 확산을 막는 역할도 하며, 마을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로 사용된다고 한다.
장애인 편의 위해 방 문턱 없애
이튿날에는 주먹밥과 김밥으로 아침식사를 서둘러 하고 8시에 호텔을 출발, 동경도 세타가야구에 있는 세타가야 트러스트협회(재단법인 일본 내셔널트러스트 소속) ‘이노마타 정원’을 방문했다.
세타가야 트러스트협회 사무실이 있는 이노마타 정원은 1967년에 건립된 대지 560평에 건평 112평의 전통 일본식 가옥이었다.
건축주는 전 노무행정연구소 이사장이었던 ‘이노마타 타케시’씨로, 노후에 이 집을 세타가야구에 기증했다고 한다.
안내를 맡은 ‘이와키리 마사치카’씨는 “이 집의 설계자는 일본 문화훈장을 받은 ‘요시다 이시다’라는 유명한 건축가”라며 “35년 전에 지어진 주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치밀하고 완벽한 건축물”이라고 강조했다.
집안 곳곳을 둘러보았다. 60년대 건물로는 드물게 장애인을 위해 각 방의 문턱을 없앴고, 다도(茶道)를 위해 조그만 다다미방이 마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도쿄 토지 너무 비싸 매입 어려워”
특히 정원으로 통하는 미닫이 창호들이 인상적이었다. 밖에서부터 나무판문, 방충창호, 유리창호, 한지창호 순으로 4겹의 창문을 차례차례 닫을 수 있게 돼 있었다.
또 창문 끝 모서리를 45。로 가공, 미닫이문인데도 반대편 창틀이 서로 만나서 완벽하게 밀폐된 공간을 만들어냈다. 그만큼 모서리 부분의 기둥이 가늘게 처리되어 방에서 정원을 보는 시야가 한층 시원했다.
이노마타씨가 왜 이 가옥을 세타가야구에 기증했는지 물었다.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세금 관계 때문이다.”
“세타가야 트러스트협회와 세타가야구의 관계는?”
“구청 소속이며 협회에서 일한다. 구에서 100% 출자한 트러스트다. 구에서 기증받은 것을 협회에서 관리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문화재인데, 왜 국가기관이 아니라 내셔널트러스트에서 보전하는가?”
“문화재관계법 상 건축 후 50년이 지나지 않으면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는다. 50년이 지나면 문화재로 지정될 것이다.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가 설계한 민가가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협회 연구원인 ‘유타카 쿠마바라’씨는 “원래 내셔널트러스트는 직접 사서 영구 보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나, 도쿄의 토지 가격이 너무 비싸기 때문에 직접 사서 보전하는 방법이 불가능하다”며 “일단 기증을 받고 소유자와 트러스트 협회가 협정을 맺어 소유자가 내는 세금을 면제해 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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