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내셔널트러스트 보전지들4. 세계유산 ‘시라카와’ 전통마을(마지막회)
‘팔지 않는다’ ‘빌려주지 않는다’ ‘부수지 않는다’
지역내일
2002-10-31
(수정 2002-11-01 오후 5:41:31)
12시 50분 ‘가키타가와 환경트러스트’가 있는 시즈오카현 시미즈정에서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시라카와 전통민가’를 향해 긴 여정을 출발했다.
기후현(岐阜縣) 시라카와고우(白川鄕)까지 장장 400여km의 대장정이었다. 누마즈(沼津)항구에서 점심을 먹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렸다.
왕복 4차선에 최고속도 80km, 답답하기 그지없는 이 제한속도를 위반하는 차도 거의 없는 듯 했다. 저녁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하고 늦은 밤 9시 20분에야 시라카와고우에 도착했다.
어두운 산간마을의 밤, 비마저 추적추적 내렸다. 20명이 넘는 일행이 전통민박집 3곳으로 나누어 숙박을 하기로 예약했는데, 민박집 주인들이 저마다 손전등을 들고 주차장으로 마중을 나왔다.
타이가라(平家)의 무사가 은신했던 곳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민박집 주인이 마루 가운데 있는 다실(큰 규모의 다실로 지금은 모두 식당으로 사용한다)에서 장작에 불을 붙여 무쇠 주전자에 찻물을 끓이는 동안 마을을 돌아보았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 특성에 맞게 고안된 합장(ㅅ자) 모양의 독특한 민가들 사이로 푸른 논들이 펼쳐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마을은 예전에 전쟁에 패한 타이가라(平家)의 무사가 은신했던 곳이라고 한다. 3층 건물로 지어진 거대한 급경사 지붕은 그 무사의 자손들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경관이 지금까지 지켜지기까지는 (재)일본 내셔널트러스트의 힘이 컸다. 시라카와고우 마을과 (재)일본 내셔널트러스트와의 관계는 멀리 196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연간 60만엔이라는 적은 액수였지만 재단법인이 이 마을에 낸 조성금은 마을의 제각기 다른 지붕색을 통일하는 데 사용됐다. 조성금은 3년 동안 계속됐다. 이 일을 계기로 마을 사람들도 자신들이 가진 역사적 유산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고, 1971년에는 스스로 ‘시라카와고우정 마을의 자연환경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합장 모양의 민가들이 불편하다며 외부에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현이나 외국으로 많은 건물들이 이전건축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곧바로 외부유출을 막기 위해 ‘팔지 않는다’ ‘빌려주지 않는다’ ‘부수지 않는다’3가지 원칙을 자치규약으로 만들었다. ‘합장 기금’도 생겼고 민가들 지키기 위해 민박도 시작했다. 1976년에는 일본 문화청이 이 마을을 ‘중요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했다.
1986년 (재)일본 내셔널트러스트는 모금운동을 펼쳐 빈집이 된 민가 2동을 구입, 이 지역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1994년에는 그 가운데 1동을 복원, ‘시라카와고우 합장문화관’을 열었다. 이 집의 초가를 다시 씌우는 데는 전국에서 2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다.
1995년 12월 유네스코는 이 마을을 일본에서 6번째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한 마을이 세계유산 목록에 들어간 것은 세계 최초의 일이었다.
재단법인이 3채의 가옥을 영구보존
민박집에서 차려낸 일본된장국과 일본목련 잎사귀 위에 볶은 버섯요리를 맛있게 먹고 마을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 위에는 ‘세계유산’ 표지석이 놓여 있고 우리나라 서낭당 기능을 하는 작은 전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언덕 위에서 본 마을 모습은 전체적으로 우리네 마을 입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 커다란 산들이 마을 뒤편을 포근히 에워싸 북풍을 막아주고 마을 남쪽에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하천이 자리잡았다.
그런데 강물 색이 아주 진한 황톳빛이었다. 원래 이 지역의 냇물은 플라이낚시를 할 수 있을 만큼 맑은데, 상류에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거기서 나온 발전용수가 물빛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재)일본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운영하는 문화관에 들렀다. 마을 촌의회 부의장을 맡고 있는 문화관의 ‘미쯔이 미노루’씨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재단법인은 현재 이 문화관을 포함, 모두 3채의 가옥을 영구보존하고 있다. 30년에 한번 정도 지붕을 다시 이어야 하는데, 수리비용이 한집에 3000만엔 정도가 든다. 30년 전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후 정부보조가 되고 있어 약 90%의 돈을 정부가 보조한다.”
이 마을의 총 인구는 600명 정도이며 합장식 민가 110가구 중 60가구가 주택 및 민박집으로 쓰이고 나머지 50가구는 창고로 사용된다고 한다.
“보존지역 지정 이후 현대식 구조로 고친 집은 없는가?”
“원칙적으로 부동산은 개인소유다. 창을 바꾼다든지 집 내부를 현대식으로 개량하는 것까지는 규제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지붕의 모양 및 건물의 색깔 등은 규제해서 경관을 지키려 하고 있다.”
“마을 남쪽에 고속도로로 보이는 새 도로가 건설중이던데, 늘어나는 자동차 등 관광객으로 인한 피해는 없는가?”
“자동차가 자꾸 늘어나 적절한 규제를 계획 중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장을 두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연간 140만명이라는 엄청난 관광객
문화관을 나와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 조금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몇채의 가옥이 새로 지어지고 있었는데, 합장식 가옥이 아니라 일반 목조주택 구조로 건축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연간 140만명이라는 엄청난 관광객들이 이 작은 마을을 찾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한다.
전통 합장식 가옥은 단열이 힘들어 난방비가 많이 들고 방도 크게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에 신축건물들은 대부분 이렇게 일반 목구조 건물로 지어진다는 얘기였다.
기후현(岐阜縣) 시라카와고우(白川鄕)까지 장장 400여km의 대장정이었다. 누마즈(沼津)항구에서 점심을 먹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고속도로를 끝없이 달렸다.
왕복 4차선에 최고속도 80km, 답답하기 그지없는 이 제한속도를 위반하는 차도 거의 없는 듯 했다. 저녁도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해결하고 늦은 밤 9시 20분에야 시라카와고우에 도착했다.
어두운 산간마을의 밤, 비마저 추적추적 내렸다. 20명이 넘는 일행이 전통민박집 3곳으로 나누어 숙박을 하기로 예약했는데, 민박집 주인들이 저마다 손전등을 들고 주차장으로 마중을 나왔다.
타이가라(平家)의 무사가 은신했던 곳
다음날 아침, 거짓말처럼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민박집 주인이 마루 가운데 있는 다실(큰 규모의 다실로 지금은 모두 식당으로 사용한다)에서 장작에 불을 붙여 무쇠 주전자에 찻물을 끓이는 동안 마을을 돌아보았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는 지역 특성에 맞게 고안된 합장(ㅅ자) 모양의 독특한 민가들 사이로 푸른 논들이 펼쳐져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 마을은 예전에 전쟁에 패한 타이가라(平家)의 무사가 은신했던 곳이라고 한다. 3층 건물로 지어진 거대한 급경사 지붕은 그 무사의 자손들에 의해 완성된 것이다.
이런 아름다운 경관이 지금까지 지켜지기까지는 (재)일본 내셔널트러스트의 힘이 컸다. 시라카와고우 마을과 (재)일본 내셔널트러스트와의 관계는 멀리 1967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연간 60만엔이라는 적은 액수였지만 재단법인이 이 마을에 낸 조성금은 마을의 제각기 다른 지붕색을 통일하는 데 사용됐다. 조성금은 3년 동안 계속됐다. 이 일을 계기로 마을 사람들도 자신들이 가진 역사적 유산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고, 1971년에는 스스로 ‘시라카와고우정 마을의 자연환경을 지키는 모임’을 만들었다.
당시 합장 모양의 민가들이 불편하다며 외부에 파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다른 현이나 외국으로 많은 건물들이 이전건축되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곧바로 외부유출을 막기 위해 ‘팔지 않는다’ ‘빌려주지 않는다’ ‘부수지 않는다’3가지 원칙을 자치규약으로 만들었다. ‘합장 기금’도 생겼고 민가들 지키기 위해 민박도 시작했다. 1976년에는 일본 문화청이 이 마을을 ‘중요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했다.
1986년 (재)일본 내셔널트러스트는 모금운동을 펼쳐 빈집이 된 민가 2동을 구입, 이 지역에 근거지를 마련했다. 1994년에는 그 가운데 1동을 복원, ‘시라카와고우 합장문화관’을 열었다. 이 집의 초가를 다시 씌우는 데는 전국에서 200명 이상의 자원봉사자들이 몰려들었다.
1995년 12월 유네스코는 이 마을을 일본에서 6번째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 한 마을이 세계유산 목록에 들어간 것은 세계 최초의 일이었다.
재단법인이 3채의 가옥을 영구보존
민박집에서 차려낸 일본된장국과 일본목련 잎사귀 위에 볶은 버섯요리를 맛있게 먹고 마을이 환히 내려다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언덕 위에는 ‘세계유산’ 표지석이 놓여 있고 우리나라 서낭당 기능을 하는 작은 전각 하나가 세워져 있었다. 언덕 위에서 본 마을 모습은 전체적으로 우리네 마을 입지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했다. 커다란 산들이 마을 뒤편을 포근히 에워싸 북풍을 막아주고 마을 남쪽에는 동에서 서로 흐르는 하천이 자리잡았다.
그런데 강물 색이 아주 진한 황톳빛이었다. 원래 이 지역의 냇물은 플라이낚시를 할 수 있을 만큼 맑은데, 상류에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거기서 나온 발전용수가 물빛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고 한다.
전망대에서 내려와 (재)일본 내셔널트러스트에서 운영하는 문화관에 들렀다. 마을 촌의회 부의장을 맡고 있는 문화관의 ‘미쯔이 미노루’씨로부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재단법인은 현재 이 문화관을 포함, 모두 3채의 가옥을 영구보존하고 있다. 30년에 한번 정도 지붕을 다시 이어야 하는데, 수리비용이 한집에 3000만엔 정도가 든다. 30년 전 보존지역으로 지정된 후 정부보조가 되고 있어 약 90%의 돈을 정부가 보조한다.”
이 마을의 총 인구는 600명 정도이며 합장식 민가 110가구 중 60가구가 주택 및 민박집으로 쓰이고 나머지 50가구는 창고로 사용된다고 한다.
“보존지역 지정 이후 현대식 구조로 고친 집은 없는가?”
“원칙적으로 부동산은 개인소유다. 창을 바꾼다든지 집 내부를 현대식으로 개량하는 것까지는 규제하기가 힘들다. 그러나 지붕의 모양 및 건물의 색깔 등은 규제해서 경관을 지키려 하고 있다.”
“마을 남쪽에 고속도로로 보이는 새 도로가 건설중이던데, 늘어나는 자동차 등 관광객으로 인한 피해는 없는가?”
“자동차가 자꾸 늘어나 적절한 규제를 계획 중이다.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주차장을 두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연간 140만명이라는 엄청난 관광객
문화관을 나와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보면서 조금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몇채의 가옥이 새로 지어지고 있었는데, 합장식 가옥이 아니라 일반 목조주택 구조로 건축되고 있는 것이었다.
이는 연간 140만명이라는 엄청난 관광객들이 이 작은 마을을 찾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한다.
전통 합장식 가옥은 단열이 힘들어 난방비가 많이 들고 방도 크게 만들기가 힘들기 때문에 신축건물들은 대부분 이렇게 일반 목구조 건물로 지어진다는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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