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 외면, 후퇴하는 민주정치
임재경 언론인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계급간 불평등 구조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심화되었으며, 과거 교육과 근면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 이동의 기회는 크게 줄어들었다. 어느덧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상층문화가 발전하였고 소득과 교육의 기회가 점차 정비례하는 현실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정치는 매우 보수적인 이념적 범위안에서 기존의 정치행태를 지속함으로써 사회적 기대와는 거리가 먼 정치계급(political class)의 쟁투장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말았다….”
위의 인용문은 고려대 정치학 교수 최장집의 최근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열면 나오는 첫 대목이다. 최 교수는 잘 알려진 대로 김대중 정부 초기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현실 참여파 지식인으로서 굳이 이념 스펙트럼 상의 위치를 찾는다면 중도 좌파에 속한다.
최 교수의 견해를 칼럼 첫 머리에 인용한 것은 그의 현실인식에 나 자신이 공감한다는 점 말고도 흔한 방관자적 관찰자 중의 하나가 아니라 정권의 <내부자(insider)>였다는 그의 특별한 성격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인적 구성, 정책형성 메카니즘, 정치적 수사(修辭)의 허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간파할 입장에 있었던 터라 내부자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그의 고백은 경청할 값어치가 있다.
물거품 된 반부패 정치개혁법안
그의 현실 인식은 독창적인 것이 아닐뿐더러 더구나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처방에 앞서 국민 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진단을 재삼 확인할 필요가 있을 줄 믿는다. 앞에서 나타난 진단의 골자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의 질적 악화이고 다른 하나는 문민정권 출범이후의 정당 정치가 기존 정치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사회의 질적 악화는 이른바 지구화 혹은 정보화로 표현되는 경제환경 변화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은 결과인 터라 그것대로 본격적인 논평 대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통령선거를 한달 남짓 앞둔 지금 이 순간에는 무엇이라 해도 정당정치의 현상을 되짚어 보는 것이 시간을 다투는 관심사다.
기존 정치행태라면 긴 설명을 달지 않아도 식자들은 “아아 그거” 하고 짚이는 데가 있게 마련이라 여기서 중언부언 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어떻든 간에 최 교수의 표현을 빌려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소수의 정치계급 내지 정치 엘리트, 즉 우리 일상어로 하면 직업 정치꾼들이 으르렁거리며 국민적 요구를 외면한 채 싸움판을 벌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직업 정치꾼들은 6·25이후 우리사회에서 공공비용으로 부양하는 특수 사회적 신분으로 굳어진 상태이며 그들이 벌이는 싸움판은 실제 싸움이 아니라 조금 심하게 말하면 싸움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최근의 예를 하나 들자면 여야당 할 것 없이 입 모아 주장하던 반부패 정치개혁법안(선거법, 정치자금법, 부패방지법 등)들이 국회 회기말에 이르러 무슨 꿍꿍이 속 때문인지 모두 좌절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의 무성했던 정당들의 강령, 정책, 공약들은 모두 굿거리에 지나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원내 정당들에 지출된 국고보조금과 국회의원들에 대한 세비는 국민의 세금을 복채로 내 던진 꼴이 되고 말았다.
“기존 정치행태”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지금까지 반복되어온 행태라는 것이지만 이 말속에는 “신물 나는, 눈뜨고 보지 못할 흉한 몰골”이란 일종의 가치판단이 담겨있음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와 같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금 다시 고개를 든 기존 정치행태를 열거하자면 줄서기, 정당 바꾸기, 지역감정 부추기기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여러 가지지만 그 가운데 정말 목불인견은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자산을 중시하여 아무나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행태라 할 것이다.
정책대결 대신 ‘돈·사람’몰이 하는 대선후보
누구냐고? 폭압과 부패로 얼룩진 두 군사독재자의 충복과 자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도 새로운 제3의 정치세력을 형성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군사독재의 상징적 권화(incarnation)를 영입하려한다니 희비극이란 말 이외에 달리 옮길 방법이 없다.
목불인견의 기존 정치행태는 그 말고도 또 있다. 개혁을 으뜸가는 정강으로 내건 민주당의 최고 책임자 왈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대통령후보가 “정치자금을 한푼도 안냈다”고 당 공식회의 석상에서 불평한 사건이다. 돈 잘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정치인, 나아가 대통령감이라는 정치관이 알알이 드러난 보기가 아닌가.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은 민주주의의 일보전진이다. 하지만 기존 정치행태를 타파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2보 후퇴하는 것이다.
임재경 언론인내부자(insider)>민주화>
임재경 언론인
“나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가 질적으로 나빠졌다고 본다. 계급간 불평등 구조는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심화되었으며, 과거 교육과 근면을 통해 가능했던 사회 이동의 기회는 크게 줄어들었다. 어느덧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상층문화가 발전하였고 소득과 교육의 기회가 점차 정비례하는 현실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정당이 중심이 되는 민주정치는 매우 보수적인 이념적 범위안에서 기존의 정치행태를 지속함으로써 사회적 기대와는 거리가 먼 정치계급(political class)의 쟁투장에 가까운 것이 되고 말았다….”
위의 인용문은 고려대 정치학 교수 최장집의 최근 저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를 열면 나오는 첫 대목이다. 최 교수는 잘 알려진 대로 김대중 정부 초기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현실 참여파 지식인으로서 굳이 이념 스펙트럼 상의 위치를 찾는다면 중도 좌파에 속한다.
최 교수의 견해를 칼럼 첫 머리에 인용한 것은 그의 현실인식에 나 자신이 공감한다는 점 말고도 흔한 방관자적 관찰자 중의 하나가 아니라 정권의 <내부자(insider)>였다는 그의 특별한 성격 때문이다. 김대중 정부의 인적 구성, 정책형성 메카니즘, 정치적 수사(修辭)의 허실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간파할 입장에 있었던 터라 내부자의 실제 경험을 토대로 한 그의 고백은 경청할 값어치가 있다.
물거품 된 반부패 정치개혁법안
그의 현실 인식은 독창적인 것이 아닐뿐더러 더구나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진정한 개혁을 위해서는 처방에 앞서 국민 다수가 고개를 끄덕일 진단을 재삼 확인할 필요가 있을 줄 믿는다. 앞에서 나타난 진단의 골자는 두 가지인데 하나는 사회의 질적 악화이고 다른 하나는 문민정권 출범이후의 정당 정치가 기존 정치행태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사회의 질적 악화는 이른바 지구화 혹은 정보화로 표현되는 경제환경 변화의 영향을 직간접으로 받은 결과인 터라 그것대로 본격적인 논평 대상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통령선거를 한달 남짓 앞둔 지금 이 순간에는 무엇이라 해도 정당정치의 현상을 되짚어 보는 것이 시간을 다투는 관심사다.
기존 정치행태라면 긴 설명을 달지 않아도 식자들은 “아아 그거” 하고 짚이는 데가 있게 마련이라 여기서 중언부언 할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 어떻든 간에 최 교수의 표현을 빌려 자신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는 소수의 정치계급 내지 정치 엘리트, 즉 우리 일상어로 하면 직업 정치꾼들이 으르렁거리며 국민적 요구를 외면한 채 싸움판을 벌이고 있다는 진단이다.
직업 정치꾼들은 6·25이후 우리사회에서 공공비용으로 부양하는 특수 사회적 신분으로 굳어진 상태이며 그들이 벌이는 싸움판은 실제 싸움이 아니라 조금 심하게 말하면 싸움의 흉내를 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가장 최근의 예를 하나 들자면 여야당 할 것 없이 입 모아 주장하던 반부패 정치개혁법안(선거법, 정치자금법, 부패방지법 등)들이 국회 회기말에 이르러 무슨 꿍꿍이 속 때문인지 모두 좌절된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동안의 무성했던 정당들의 강령, 정책, 공약들은 모두 굿거리에 지나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원내 정당들에 지출된 국고보조금과 국회의원들에 대한 세비는 국민의 세금을 복채로 내 던진 꼴이 되고 말았다.
“기존 정치행태”의 글자 그대로의 뜻은 지금까지 반복되어온 행태라는 것이지만 이 말속에는 “신물 나는, 눈뜨고 보지 못할 흉한 몰골”이란 일종의 가치판단이 담겨있음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바와 같다. 대통령선거를 앞둔 지금 다시 고개를 든 기존 정치행태를 열거하자면 줄서기, 정당 바꾸기, 지역감정 부추기기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여러 가지지만 그 가운데 정말 목불인견은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는 자산을 중시하여 아무나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행태라 할 것이다.
정책대결 대신 ‘돈·사람’몰이 하는 대선후보
누구냐고? 폭압과 부패로 얼룩진 두 군사독재자의 충복과 자녀를 가리키는 것이다. 그것도 새로운 제3의 정치세력을 형성하겠다고 나선 사람이 군사독재의 상징적 권화(incarnation)를 영입하려한다니 희비극이란 말 이외에 달리 옮길 방법이 없다.
목불인견의 기존 정치행태는 그 말고도 또 있다. 개혁을 으뜸가는 정강으로 내건 민주당의 최고 책임자 왈 국민경선으로 선출된 대통령후보가 “정치자금을 한푼도 안냈다”고 당 공식회의 석상에서 불평한 사건이다. 돈 잘 만드는 사람이 훌륭한 정치인, 나아가 대통령감이라는 정치관이 알알이 드러난 보기가 아닌가.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은 민주주의의 일보전진이다. 하지만 기존 정치행태를 타파하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2보 후퇴하는 것이다.
임재경 언론인내부자(insider)>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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