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광부는 ‘신민족주의사관(新民族主義史觀)’을 제창하면서 민족 내부의 균등과 단결, 이에 기반한 민족국가의 건설을 목표로 한국사를 서술하는 등 역사학에 많은 업적을 남긴 손진태 선생을 12월의 문화인물로 선정했다.
지난 1900년 12월 28일 부산 동래의 하단 남창마을에서 출생한 손 선생은 27년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뒤 민속학에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30년 동양문고 사서로 근무했고, 34년 보성전문학교 도서관 사서로 출발, 37년엔 도서관장을 맡기도 했다.
해방후 서울대 사학과 교수가 된 그는 국사교육에 관심을 갖고 국사교재를 활발하게 출판했으며, 문교부 차관겸 편수국장이 됐다.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납북돼 60년대 중반 세상을 떠났다.
손 선생은 종래의 우리나라 역사서술이 왕이나 귀족 위주였음을 간파, “역사는 모든 계층이 통합·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민속학이나 고대문화에 전념한 것도 민중의 문화유산을 찾으려는 일념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의 신민족주의사관은 식민주의적 한국사관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허위성과 허구성을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민족주의적 한국사관을 탈피해 실천적이며 과학적인 민족주의적 사관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지난 1900년 12월 28일 부산 동래의 하단 남창마을에서 출생한 손 선생은 27년 일본 와세다대학 사학과를 졸업한 뒤 민속학에 큰 관심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30년 동양문고 사서로 근무했고, 34년 보성전문학교 도서관 사서로 출발, 37년엔 도서관장을 맡기도 했다.
해방후 서울대 사학과 교수가 된 그는 국사교육에 관심을 갖고 국사교재를 활발하게 출판했으며, 문교부 차관겸 편수국장이 됐다.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납북돼 60년대 중반 세상을 떠났다.
손 선생은 종래의 우리나라 역사서술이 왕이나 귀족 위주였음을 간파, “역사는 모든 계층이 통합·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민속학이나 고대문화에 전념한 것도 민중의 문화유산을 찾으려는 일념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그의 신민족주의사관은 식민주의적 한국사관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면서 허위성과 허구성을 폭로했을 뿐만 아니라, 관념적인 민족주의적 한국사관을 탈피해 실천적이며 과학적인 민족주의적 사관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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