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한국 보수주의의 업그레이드?(임재경 2002.12.11)

지역내일 2002-12-11
한국 보수주의의 업그레이드?
임재경 언론인

이번 16대 대통령선거에는 흔히 말하는 30년만의 양자 대결이라는 점 이외에 몇 가지 눈 여겨 볼 특징들이 나타났다. 그 가운데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이제까지 여론 형성을 주도한다던 인쇄미디어의 위력이 현저하게 쇠퇴한 반면 디지털미디어가 압도하는 징후가 역력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거 때마다 ‘북풍’에 의존하던 보수진영 내부에 심상치 않은 균열이 일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달라졌다고 하기는 조금 이르지만 무언가 확실히 변하고 있는 것만은 많은 국민이 느끼는 대로다.
인쇄 미디어와 ‘북풍’의 위력 쇠퇴는 소수의 음모자들이 꾸민 결과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시대의 추이이며 여론을 좌지우지하던 낡은 세대가 정치 무대에서 퇴장하는데 따르는 부수 현상이다. <한겨레>(12월10일자)에 따르면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홈페이지의 하루 평균 방문자는 33만명,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경우는 10만~15만에 달하며 자료 검색 분량은 전자가 1000만 쪽 분량, 후자가 280만 쪽 분량에 이른다는 것이다.
인터넷 세대는 다 짐작하는 대로 20대 30대가 주류를 이루며 일부 고학력 혹은 전문직에서는 40대에도 네티즌이 적잖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들은 모두 6.25전쟁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총 유권자자수의 과반을 차지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북풍’으로 상징되는 옛날 방식의 공포분위기 조성용 선거 캠페인이 더 이상 먹혀들지 않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지난 9월 한국 갤럽이 조사한 바로는 한국 성인의 반 이상이 북한의 남침가능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답하였고, 다른 쪽으로는 2000년 11월 <동아일보> 조사의 응답자 42%만이 남한의 현 수준 미군 주둔을 지지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대선 여론주도, ‘보수 신문’이 인터넷에 맥 못춰
반세기 이전의 6.25 전쟁을 우려먹을 대로 우려먹은 보수진영은 올 3월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가 국민경선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자 “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과격분자”라는 흑색선전을 벌렸다. 100만부 이상을 인쇄하는 몇몇 일간지들의 균형을 잃은 장단에도 불구하고 그 약발은 이내 사그라졌다. 지나간 좋은 세월을 잊지 못하여 대두하는 세대와 화해할 줄 모르는 현상을 가리켜 독일의 심리학자 알렉산더 미체리히(Alexander Mitscherlich)는 ‘장송불능증’(葬送不能症, die Unfaehigkeit zu trauern)이라 정의하며 이것이 새로운 사회불안의 요인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과거를 과거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현재를 현재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이다. 2차 대전 이후 민주주의를 꽃피운 서독에서도 빌리 브란트가 집권하기 전까지는 히틀러의 제3제국에서 재산과 교양을 뽐내던 계층이 정치의 주도권을 여전히 장악했던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한 미군의 궤도차량에 깔려 목숨을 잃은 두 여자 중학생을 애도하는 촛불시위가 월드컵 대회의 붉은악마 응원단을 방불케 하는 시민 동원력을 발휘할 줄이야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네티즌들에게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일이지만 <앙마>라는 ID의 젊은이가 인터넷을 통해 두 여중생의 죽음을 애도하고 미국에 항의하는 평화적 시위를 벌리자고 호소하자 수만의 시민들이 추운 날씨를 아랑곳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광화문에 운집하였던 것이다.
보수진영 일각은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을 미군철수론자로 몰며 SOFA개정안에 서명하고 사망한 여중생 부모를 찾아간 이회창 후보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특히 그 가운데서 반공 이데올로기로 자처하는 어느 인쇄매체의 간부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스탠스를 잃은="" 이회창="">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부시 대통령의 사과와 한미 행정협정 재개정을 요구함으로써 반미운동에 편승하고 있다”는 극언을 퍼붓는가 하면 심지어 “노무현 인기는 이회창 후보가 길을 터준 셈”이라는 역설을 늘어놓았다. 이에 대해 <한마디>라는 ID의 한 시민은 격렬한 어투의 반론을 제기했는데 그 줄거리는 이랬다.

“민주화 ·독립운동가들이 진짜 보수 우익”
“ ... 보수, 우파는 그 사회의 핵심세력이야. 그리고 책임과 의무를 앞장서서 이행하며 그 사회를 주도하지. 우파와 좌파의 대결이라고? 나는 그렇게 안 봐. 이번 대결은 친일 잔당과 미제 추종 세력과의 한판이야 ... 당신들이 헛소리해도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거야 ... 외국에서 뭐라고 했다고 해도 금방 인터넷타고 게시판에 떠 ... 예비군 훈련장에서 정신교육 듣는 것하고 당신들 논리하고 똑같아. 당신들, 그거 누가 듣는 거 봤어? 당신도 듣기 싫잖아 ... 해외에서 풍찬노숙하던(독립운동하던) 그들이 진짜 보수고 우익이야. 다신, 보수니 우익이니 이런 소리 하지마. 신성한 보수를 욕 먹이는 짓이야 ... 당신들 20세기 호강했잖아. 이제는 21세기야. 그만 물려줘. 역사의 순리야.”
내가 듣거나 읽은 것 가운데서 보수주의를 민족적 긍지의 차원으로 끌어올린 아주 드믄 논리였다. 이 주장대로라면 이회창 후보의 여중생 애도 행보는 결과적으로 한국의 보수주의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킨 모습이다. 한번 업그레이드된 컴퓨터가 다운그레이드 되는 법은 없다는 것을 나는 큰 위안으로 삼으며.




임재경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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