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한국의 대표적 경제학자이다. 그는 상아탑에 머물러 있지만은 않는 시대의 지성인이기도 하다. 그의 경제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발언은 항상 주목을 받아왔다. 국내 일간신문으로는 처음 정 총장을 단독으로 만나 한국경제와 서울대의 제반 문제에 대한 포부와 의견을 들었다. 편집자주
미국경제가 불투명하다. 국내금융시장도 불안하다. 한국경제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미국은 그동안 상당한 거품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에 의존한 경제이다. 대외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이자율이 낮고 환율이 높아 이를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이 생겨 수출을 잘해왔다. 내수쪽으로는 특소세 면제, 낮은 이자율, 분양권 전매 등의 수단으로 사회전체에 부자라는 생각을 들게 해 소비심리를 부추겼다. 여기에 신용카드 남발 등으로 경제가 들떠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수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미국경제를 비롯해 세계경제가 어려워 결국 한국경제도 어려워 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각종 경기부양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에 약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독이 된 측면이 있다.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1997년도와 차이는 당시는 기업의 빚이 너무 많은 것이었고 지금은 가정의 빚이 너무 많은 것이다.
어려워지는 시기를 언제로 보는가.
그 시기를 쉽게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어려워 질 것이라고 여러번 경고했지만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주장만 했다.
구체적으로 한국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보는가. 아니면 잘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이제까지 각종 부양책들로 우리가 흥청망청 살았는데 이는 장기대책이 아니다. 고통스럽지만 구조조정만이 장기대책이 될 수 있다. 구조조정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어려운 기업, 수지 못 맞추는 기업을 도태시키는 것이다. 은행도 예외일 수 없다.
국민의 정부 초기에는 어느 정도 의욕이 있어 보였는데 중간쯤 되어서는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구조조정의 속도가 느려지고 강도도 약해졌다.
구조조정의 미진 원인 가운데 하나는 공무원 출신들이 구조조정과 개혁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혁을 못한다. 30년을 밑에서 위만 바라보고 산 사람들이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기업, 은행과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람들이 개혁과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구조조정만이 장기대책
그래도 현정부 들어서 개방직 등 외부수혈이 있었던 것 아닌가.
미약한 것이었다. 개혁은 결국 장관 등 윗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그런데 장관 등 정책결정권자는 문제를 일으킨 공무원들이 맡았다. 이들이 개혁에 나서기는 어렵다.
평교수 시절 현실경제의 문제점을 꼬집는 글을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한데.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보통 1주일 이상의 시간을 주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았다. 예를 들어 다음주 목요일에 실리는 원고의 경우 주중에 생각을 한 다음 토요일에 일단 글을 쓰고, 일요일 아침에 식구들에게 일단 보여주고 이해가 되는지를 확인한다. 오케이가 떨어지면 아들이 타이핑하고 월요일 조교들에게 보여주고 화요일에 다시 주변에 이해되는지를 확인하고 수요일 아침에 원고를 보냈다. 한편 쓸 때마다 모든 정성을 다해서 쓴 것이다.
글은 80년대 후반부터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 은사인 조순 선생님하고 고려대 최상용 교수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신문과 잡지에 글쓰기 이야기가 나왔다. 내 생각을 물으셔서 “세상사람들이 잡문은 쓰지 말라던 데요”라고 답했다. 조순 선생이 정색을 하시면서 “이봐 잡문은 잡문답게 쓰면 잡문이고 열심히 쓰면 잡문이 아니야. 자네 신문에 글 쓰게. 젊은 교수들이 신문에 글 하나 나오는 게 없고 나오면 전부 정부나 기업에 만세나 부르는 것이고”라고 하셔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DJ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외환보유고를 100억달러 이상으로 높여 놓은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는 외국인들이 김대중 대통령과 한국인에 대해서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99년 한 학기 동안 독일에 있었는데 한번은 독일인들에게 농담을 했다. 한국에 돈 꿔줬다 나중에 못 받거나 손해보면 어떻게 하냐고. 그랬더니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김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영어로 연설할 정도로 유능하며 그는 믿을만하다고 답하는 것을 들었다,
또 하나는 한국인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서 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위대한 국민으로 이들이 경제를 움직이는데 돈을 안 갚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었다. 외국인은 한국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외환위기는 국제사회에서의 김 대통령의 개인적 인기와 한국에 대한 좋은 평가로 인해 극복된 것이다.
이 정권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외환 보유고가 1000억달러를 넘는 것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미진 한 것은 아쉽다.
한국은 재현될지도 모를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한국 사람은 위기에 닥쳤을 때 그걸 극복하는 데는 어느 나라 사람도 따라올 수가 없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한국인은 극복할 것이다.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해 시급한 것은
단기나 중기나 장기나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 적자생존의 원리를 실물과 금융 부분에서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물부문에서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는 것과 많은 기업들이 잘못하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진보다,
그러나 아직도 이자보상비율이 1보다 낮은 상태가 매년 계속되는데도 버젓이 남아있는 기업이 있다는 것은 실물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불충분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금융부분도 2001년 이후 상황이 좋아졌다지만 상당부분 공적자금이 투입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도 적자생존의 원칙을 지켰어야 하는데 부실금융기관끼리 합병만 일삼아 이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외국에서 보면 은행합병에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지난 7월 총장에 취임한 이후 국민들이 ‘젊은 총장’에 대해 기대가 크다. 우선 학부모들이 관심이 큰 지역할당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지역할당제에 대한 여론은 좋다. 입학관리본부에서 연구중인데 내년 2월말까지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실시 방법과 일정을 결정할 것이다.
지역할당제는 대표적 국립대학인 서울대학이 전국에서 ‘꼭 인구비례는 아니지만’ 골고루 학생을 데려다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전국 기초단체가 220~230개정도 되는데 이중 서울대에 하나도 들어오지 못한 시, 군과 구가 70군데나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 지방국립대학에서 반대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가 정원 내에서 뽑는데 지방대학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찬성하는 지방국립대학도 많다. 정원외는 하지 않는다. 나는 학생을 줄이고자 하는데 정원내로 할 이유가 있겠는가.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면 많은 간접경험이 생긴다. 이로 인해 창의력도 길러진다. 나는 이것을 대학 다니면서 경험했다. 내가 입학할 때 서울대 경제학과가 50명이었는데 내가 나온 경기고 출신이 17명이고 지방에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미국대학들이 노리듯이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좋다. 사회적 약자가 도움을 받는다는 차원에서도 지역할당제는 바람직하다. 중국의 청화대, 북경대는 철저히 지역할당제를 한다. 영국에서도 실험단계에 있다.
구체적으로 내년부터 입시제도가 변경되는가.
다양한 새로운 입시방법이 빠르면 2004학년도, 늦어도 2005학년도부터 시행될 것이다.
총장직선제 문제에 대한 총장 의견은.
현재 서울대에는 학교의 운영체제에 대한 연구위원회가 있다. 총장과 학장 선출문제 등도 이 연구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지만 한가지 의견이 모아진 사실은 대학을 민주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미 서울대학을 상당히 민주적으로 만들었다.
과거 학장회의는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학장들이 쉽게 통과시켜주는 기능만 했다. 심의기구였지만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학장회의에 나오는 30명의 참석자 중 5명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도 아이디어를 내놓아 심의한다. 그 결과 학장회의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더 생산적으로 되었다. 이들 과제는 2월말까지 연구될 것이다.
서울대가 연구업적 등 질적인 면에서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연구업적이 좋은지 나쁜지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양적인 면을 이야기한다면 SCI 논문 편수에서 지난해는 40위권이고 올해는 30위권에 들것이다. 현재의 연구 여건에서 대단한 것이다. BK21 덕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질적인 문제제기는 가능하다고 본다.
서울대 학생 줄여야
서울대 개혁을 위한 제도·기구 변화는.
앞으로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을 생각이다. 있는 것의 내실을 기하려고 한다.
1년에 서울대 고대 연대가 약 1만5000명 뽑는다. 미국은 하바드 예일 프린스턴 등 사립 베스트 10개에서 1만 5000명을 못 뽑는다. 그 결과 잠재능력 있는 학생들이 무수히 많은 대학으로 분산된다.
이에 반해 우리는 3개 대학에 집중되고 있다.
졸업생들이 사회에 진출해도 우리나라는 어지간한 자리에는 3개 대학 출신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이들에게서 다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른 대학출신들이 진출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이 관점에서 서울대 학생을 줄여야 한다. 대학원도 너무 많다. 대학원생도 너무 많다. 이른바 ‘대학원 중심대학’ 개념 때문이다. 대학원 중심대학이 세상에 어디 있나.
행정수도 이전 문제등과 관련해 서울대 지방이전문제가 다시 거론됐는데.
한국사회에서는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에 보내라고 했는데 모든 것이 서울에 모여있는 상황에서 서울대가 지방 가기는 쉽지 않다. 총장으로서 이전 문제에 대해 아직 생각을 많이 안했다. 그러나 행정수도가 생기면 그 곳에 제2캠퍼스를 두는 것은 가능하다. 특히 관악캠퍼스가 과밀상태이기에 진지하게 고려해보겠다.
광역화는 BK21 때문에 예산을 받기 위해 한 것이 아닌가.
공적기관으로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교육부와 한 것에 대해서는 부끄럽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현재의 무리한 모집광역화는 모순이 있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을 그냥 놔두는 것보다는 협약을 바꾸더라도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에는 108개학과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 물론 교육부가 원하는 수개 단위로 모집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바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기득권층도 포용을
최고의 지성의 전당인 서울대가 고시학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책임이 있다. 우리가 정말로 잘 가르쳤다면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것이다. 최소한 그 학생들의 관심을 고시로부터 학문으로 돌릴 만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고시를 하면 일생이 보장이 되는데 이를 막을 길은 별로 없다. 전문대학원을 만들면 장기적으로 해결되지만 제도적 정비 등의 문제 때문에 그리 쉽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내년 2월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바라는 바는 무엇인지.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젊은이, 소외된 이 등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역량을 결집하되 나이 든 이 기득권층도 포용하여 사회적 화합을 이루고 잠재적 성장능력을 꾸준히 키워주기 바란다.
/정리=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미국경제가 불투명하다. 국내금융시장도 불안하다. 한국경제의 앞날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미국은 그동안 상당한 거품이 있었다. 그래서 미국의 금융시장이 불안해지고 있다. 이같은 상황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에 의존한 경제이다. 대외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이자율이 낮고 환율이 높아 이를 바탕으로 가격경쟁력이 생겨 수출을 잘해왔다. 내수쪽으로는 특소세 면제, 낮은 이자율, 분양권 전매 등의 수단으로 사회전체에 부자라는 생각을 들게 해 소비심리를 부추겼다. 여기에 신용카드 남발 등으로 경제가 들떠 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내수는 한계가 있는 것이고 미국경제를 비롯해 세계경제가 어려워 결국 한국경제도 어려워 질 가능성이 크다.
정부의 각종 경기부양정책은 단기적으로는 경제에 약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독이 된 측면이 있다. 거품이 빠지는 과정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1997년도와 차이는 당시는 기업의 빚이 너무 많은 것이었고 지금은 가정의 빚이 너무 많은 것이다.
어려워지는 시기를 언제로 보는가.
그 시기를 쉽게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어려워 질 것이라고 여러번 경고했지만 정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좋아질 것이라는 낙관적인 주장만 했다.
구체적으로 한국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보는가. 아니면 잘 되리라고 생각하는가.
이제까지 각종 부양책들로 우리가 흥청망청 살았는데 이는 장기대책이 아니다. 고통스럽지만 구조조정만이 장기대책이 될 수 있다. 구조조정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만 어려운 기업, 수지 못 맞추는 기업을 도태시키는 것이다. 은행도 예외일 수 없다.
국민의 정부 초기에는 어느 정도 의욕이 있어 보였는데 중간쯤 되어서는 구조조정의 부작용을 너무 두려워한 나머지 구조조정의 속도가 느려지고 강도도 약해졌다.
구조조정의 미진 원인 가운데 하나는 공무원 출신들이 구조조정과 개혁작업을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개혁을 못한다. 30년을 밑에서 위만 바라보고 산 사람들이 구조조정을 할 수 없다. 알게 모르게 기업, 은행과 이해관계가 걸려있는 사람들이 개혁과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은 어렵다.
구조조정만이 장기대책
그래도 현정부 들어서 개방직 등 외부수혈이 있었던 것 아닌가.
미약한 것이었다. 개혁은 결국 장관 등 윗사람들이 나서야 한다. 그런데 장관 등 정책결정권자는 문제를 일으킨 공무원들이 맡았다. 이들이 개혁에 나서기는 어렵다.
평교수 시절 현실경제의 문제점을 꼬집는 글을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한데.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들다. 보통 1주일 이상의 시간을 주지 않으면 글을 쓰지 않았다. 예를 들어 다음주 목요일에 실리는 원고의 경우 주중에 생각을 한 다음 토요일에 일단 글을 쓰고, 일요일 아침에 식구들에게 일단 보여주고 이해가 되는지를 확인한다. 오케이가 떨어지면 아들이 타이핑하고 월요일 조교들에게 보여주고 화요일에 다시 주변에 이해되는지를 확인하고 수요일 아침에 원고를 보냈다. 한편 쓸 때마다 모든 정성을 다해서 쓴 것이다.
글은 80년대 후반부터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인가 은사인 조순 선생님하고 고려대 최상용 교수와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신문과 잡지에 글쓰기 이야기가 나왔다. 내 생각을 물으셔서 “세상사람들이 잡문은 쓰지 말라던 데요”라고 답했다. 조순 선생이 정색을 하시면서 “이봐 잡문은 잡문답게 쓰면 잡문이고 열심히 쓰면 잡문이 아니야. 자네 신문에 글 쓰게. 젊은 교수들이 신문에 글 하나 나오는 게 없고 나오면 전부 정부나 기업에 만세나 부르는 것이고”라고 하셔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DJ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평가한다면.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외환보유고를 100억달러 이상으로 높여 놓은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 이는 외국인들이 김대중 대통령과 한국인에 대해서 높이 평가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99년 한 학기 동안 독일에 있었는데 한번은 독일인들에게 농담을 했다. 한국에 돈 꿔줬다 나중에 못 받거나 손해보면 어떻게 하냐고. 그랬더니 과거 대통령들과 달리 김 대통령은 미국에 가서 영어로 연설할 정도로 유능하며 그는 믿을만하다고 답하는 것을 들었다,
또 하나는 한국인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에서 조차도 찾아보기 힘든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뤄낸 위대한 국민으로 이들이 경제를 움직이는데 돈을 안 갚겠느냐는 것이 그들의 답변이었다. 외국인은 한국이 잘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외환위기는 국제사회에서의 김 대통령의 개인적 인기와 한국에 대한 좋은 평가로 인해 극복된 것이다.
이 정권에서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외환 보유고가 1000억달러를 넘는 것은 높이 평가할만하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미진 한 것은 아쉽다.
한국은 재현될지도 모를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겠는가.
한국 사람은 위기에 닥쳤을 때 그걸 극복하는 데는 어느 나라 사람도 따라올 수가 없다. 어떤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한국인은 극복할 것이다.
한국경제의 회생을 위해 시급한 것은
단기나 중기나 장기나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 적자생존의 원리를 실물과 금융 부분에서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실물부문에서 많은 기업들이 문을 닫았다는 것과 많은 기업들이 잘못하면 문을 닫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일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진보다,
그러나 아직도 이자보상비율이 1보다 낮은 상태가 매년 계속되는데도 버젓이 남아있는 기업이 있다는 것은 실물기업부문의 구조조정이 불충분하다는 증거라 할 수 있다.
금융부분도 2001년 이후 상황이 좋아졌다지만 상당부분 공적자금이 투입됐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은행 등 금융기관도 적자생존의 원칙을 지켰어야 하는데 부실금융기관끼리 합병만 일삼아 이들의 장래가 어떻게 될 지 아무도 알 수가 없다. 외국에서 보면 은행합병에 성공한 사례는 많지 않다.
지난 7월 총장에 취임한 이후 국민들이 ‘젊은 총장’에 대해 기대가 크다. 우선 학부모들이 관심이 큰 지역할당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달라.
지역할당제에 대한 여론은 좋다. 입학관리본부에서 연구중인데 내년 2월말까지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실시 방법과 일정을 결정할 것이다.
지역할당제는 대표적 국립대학인 서울대학이 전국에서 ‘꼭 인구비례는 아니지만’ 골고루 학생을 데려다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전국 기초단체가 220~230개정도 되는데 이중 서울대에 하나도 들어오지 못한 시, 군과 구가 70군데나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일부 지방국립대학에서 반대하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가 정원 내에서 뽑는데 지방대학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찬성하는 지방국립대학도 많다. 정원외는 하지 않는다. 나는 학생을 줄이고자 하는데 정원내로 할 이유가 있겠는가.
여러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면 많은 간접경험이 생긴다. 이로 인해 창의력도 길러진다. 나는 이것을 대학 다니면서 경험했다. 내가 입학할 때 서울대 경제학과가 50명이었는데 내가 나온 경기고 출신이 17명이고 지방에서 온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이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더 나아가서는 미국대학들이 노리듯이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좋다. 사회적 약자가 도움을 받는다는 차원에서도 지역할당제는 바람직하다. 중국의 청화대, 북경대는 철저히 지역할당제를 한다. 영국에서도 실험단계에 있다.
구체적으로 내년부터 입시제도가 변경되는가.
다양한 새로운 입시방법이 빠르면 2004학년도, 늦어도 2005학년도부터 시행될 것이다.
총장직선제 문제에 대한 총장 의견은.
현재 서울대에는 학교의 운영체제에 대한 연구위원회가 있다. 총장과 학장 선출문제 등도 이 연구위원회에서 논의하고 있다.
앞으로 연구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이지만 한가지 의견이 모아진 사실은 대학을 민주적으로 운영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미 서울대학을 상당히 민주적으로 만들었다.
과거 학장회의는 총장과 보직교수들이 내놓은 아이디어를 학장들이 쉽게 통과시켜주는 기능만 했다. 심의기구였지만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지금은 학장회의에 나오는 30명의 참석자 중 5명으로 소위원회를 구성하고 이들도 아이디어를 내놓아 심의한다. 그 결과 학장회의의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더 생산적으로 되었다. 이들 과제는 2월말까지 연구될 것이다.
서울대가 연구업적 등 질적인 면에서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연구업적이 좋은지 나쁜지 이야기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양적인 면을 이야기한다면 SCI 논문 편수에서 지난해는 40위권이고 올해는 30위권에 들것이다. 현재의 연구 여건에서 대단한 것이다. BK21 덕을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질적인 문제제기는 가능하다고 본다.
서울대 학생 줄여야
서울대 개혁을 위한 제도·기구 변화는.
앞으로 새로운 기구를 만드는 것은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을 생각이다. 있는 것의 내실을 기하려고 한다.
1년에 서울대 고대 연대가 약 1만5000명 뽑는다. 미국은 하바드 예일 프린스턴 등 사립 베스트 10개에서 1만 5000명을 못 뽑는다. 그 결과 잠재능력 있는 학생들이 무수히 많은 대학으로 분산된다.
이에 반해 우리는 3개 대학에 집중되고 있다.
졸업생들이 사회에 진출해도 우리나라는 어지간한 자리에는 3개 대학 출신들이 다 차지하고 있다. 이들에게서 다양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대하기 어렵다. 다른 대학출신들이 진출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아야 한다.
이 관점에서 서울대 학생을 줄여야 한다. 대학원도 너무 많다. 대학원생도 너무 많다. 이른바 ‘대학원 중심대학’ 개념 때문이다. 대학원 중심대학이 세상에 어디 있나.
행정수도 이전 문제등과 관련해 서울대 지방이전문제가 다시 거론됐는데.
한국사회에서는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에 보내라고 했는데 모든 것이 서울에 모여있는 상황에서 서울대가 지방 가기는 쉽지 않다. 총장으로서 이전 문제에 대해 아직 생각을 많이 안했다. 그러나 행정수도가 생기면 그 곳에 제2캠퍼스를 두는 것은 가능하다. 특히 관악캠퍼스가 과밀상태이기에 진지하게 고려해보겠다.
광역화는 BK21 때문에 예산을 받기 위해 한 것이 아닌가.
공적기관으로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교육부와 한 것에 대해서는 부끄럽게 생각한다. 대부분의 교수들이 현재의 무리한 모집광역화는 모순이 있다고 하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것을 그냥 놔두는 것보다는 협약을 바꾸더라도 새로운 출발을 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실제로 서울대에는 108개학과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많이 줄었다. 물론 교육부가 원하는 수개 단위로 모집하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약속을 지키지 못하더라도 잘못된 것은 바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기득권층도 포용을
최고의 지성의 전당인 서울대가 고시학원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책임이 있다. 우리가 정말로 잘 가르쳤다면 학생들의 학문에 대한 관심이 높았을 것이다. 최소한 그 학생들의 관심을 고시로부터 학문으로 돌릴 만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것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고시를 하면 일생이 보장이 되는데 이를 막을 길은 별로 없다. 전문대학원을 만들면 장기적으로 해결되지만 제도적 정비 등의 문제 때문에 그리 쉽지는 않다.
마지막으로 대선에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내년 2월 출범하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바라는 바는 무엇인지.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젊은이, 소외된 이 등 변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들의 역량을 결집하되 나이 든 이 기득권층도 포용하여 사회적 화합을 이루고 잠재적 성장능력을 꾸준히 키워주기 바란다.
/정리=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위 기사의 법적인 책임과 권한은 내일엘엠씨에 있습니다.
<저작권자 ©내일엘엠씨,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