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폐쇄위기 맞은 노숙자쉼터 ‘자유의 집’을 찾아

“우리는 범법자도 전염병자도 아니에요”

지역내일 2003-01-19 (수정 2003-01-21 오후 2:39:42)
국내 최대 노숙사시설인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 ‘자유의 집’이 결국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법원이 최근 사유지인 ‘자유의 집’ 부지를 돌려주고 임대료를 지불하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자유의 집’에는 현재 740여명의 노숙자들이 쉬고 있다. 겨울철이라 평소보다 100여명이 늘었다. 춥고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해보다 더 추운 겨울을 나고 있는 ‘자유의 집’을 찾았다. 이들은 어쩌면 이곳에서 추운 몸을 녹이는 것 보다 차가운 시선을 피하느라 더 고단해 하고 있는게 아닐까. <편집자>

“한겨울이라 마음까지 시린데 법원에서 이곳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는 판결까지 내렸다 하니 그저 막막하기만 합니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청과물 시장 뒤편 ‘자유의 집.’ 예전 (주) 방림이 기숙사로 쓰던 건물 3개동이 국내 최대 노숙자 쉼터다. 옥상의 ‘축 성탄’이라는 글씨가 건물 덩치에 비해 초라하게 걸려 있다. 창밖으로 흰 수염이 덥수룩한 노인이 고개를 빼꼼이 내밀고 담배연기를 ‘훅∼’ 내뿜었다. 남루한 내복차림의 이 노인이 자유의 집을 몸으로 소개하는 듯했다.
멀리 골프연습장과 그보다 조금 가까이 있는 대형유통매장이 자유의 집 건물과 사뭇 대조적이다.
이곳에는 현재 740여명의 노숙자들이 쉬고 있다. 수십년된 낡은 건물이지만 그나마 지친 어깨를 기댈만 해 왔다. 그러나 이같은 남루한 건물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법원에서 건물을 원소유주에게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임시방편으로 이같은 시설을 만들어놓고 그동안 뚜렷한 대책을 만들 지 못한 서울시도 문제지만, 혐오시설이라며 기피하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과 ‘민원이 많다’는 이유로 자기 구역에서 내쫓으려고만 하는 해당 구청 또한 이들을 점점 다시 길거리로 내몰고 있었다.

◇ “쪽박은 깨지 말아야” = 서울지법 민사합의15부는 지난 8일 ‘서울시가 사유지를 무단점유하고 임대료도 지불하지 않고 있는 만큼 서울시는 ‘자유의 집’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과 부지를 소유자에게 돌려주고 부당이득금 12억7000여만원과 매달 임대료 6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자유의 집’ 문을 닫아야 한다는 얘기다.
자유의 집 사람들도 이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자유의 집 기획관리실 서계식 실장은 “판결 이후 이곳 식구들은 사회에 나가서 살 수 있을 때까지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얘기들은 하고 있지만 원망을 표출하거나 하지는 않는다”면서 “오히려 지금까지 이용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서 실장도 아쉬움을 숨기지는 못했다. 그는 “자유의 집 소유권 문제가 불거지자 일부 사람들과 공무원들이 ‘술주정 등 추태를 부리는 노숙자들 때문에 살기 어렵다’는 근거없는 소문들을 퍼뜨려 이곳을 더욱 혐오시설화하고 있다”면서 “정신질환 유소견자가 많은 이곳 사람들에게는 자신을 혐오대상으로 보는 주위의 시선이 살인무기만큼이나 무섭다. 나가라면 나가겠지만 우리를 준 범법자로 매도하는 등 ‘쪽박’은 깨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사회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 현재 이곳에서 머물고 있는 사람들 740여명 가운데 약 30%는 장애인, 알콜중독, 정신질환 등 각종 질병을 앓고 있다. 나머지 사람들도 한뎃잠을 오래 잤기 때문에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다. 특히 IMF 이후 각종 부채에 허덕이다 쫓기듯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을 비롯한 대부분 노숙자들은 길거리에서 추위와 정신적 고통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돈이 생기면 무조건 소주를 찾았다. 노숙자들 가운데 알콜 중독자가 많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의 집에서 살고 있는 노숙자들은 재활의지를 꺾지 않고 있었다. 사회로 다시 나가기 위해 열심히 자기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알콜 중독자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에는 방마다 이름표 옆에 ‘단주(斷酒) OO일’이라는 표시가 있었다. 또 컴퓨터교육실, 재활사업실, 정신건강센터 등에서도 비록 열악한 시설에서지만 재활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겨울이지만 일용노무직으로라도 나가 일을 하고 있었다. 요즘에도 매일 300여명 이상이 일을 나가고 있다. 특히 다양한 경력의 사람들이 흘러드는 곳인 만큼 다시 경리, 운전기사, 컴퓨터관리 등 직업을 가지고 당당히 사회로 나간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IMF 한파’가 국내를 휩쓸던 지난 99년 1월 처음 문을 연 이후 지금까지 자유의 집을 거쳐간 사람만 모두 2만6000여명에 이른다. 이들 중 다시 노숙자로 돌아간 사람도 있지만 가정을 되찾은 사람또한 적잖다는 얘기다.

◇ 분산수용만으로는 안된다 = 서울시는 자유의 집 이전문제가 불거지자 올해부터 자유의 집에 묵고 있는 노숙자들을 시내 각 구청의 사회복지관, 교회부속시설 등에 위치한 ‘희망의 집’ 쉼터 73곳으로 분산배치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서 실장은 “희망의 집은 낮에는 사회복지관, 교회시설 등으로 이용해야 하기 때문에 노숙자들을 거리로 무작정 내쫓을 수 밖에 없어 노숙자를 위한 시설이라고 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서 실장은 “희망의 집으로 자유의 집 노숙자들을 무작정 분산수용할 경우 대부분이 다시 길거리로 나올 것”이라며 “노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수용시설이 아니라 자유의 집과 같은 재활·주거개념의 공간”이라고 주장했다.
시가 거리노숙자를 상대로 서울역과 영등포역에 운영중인 ‘드롭인 센터’를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도 희망의 집에 분산배치할 경우 노숙자들 상당수가 다시 거리로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예상을 반영한 것이다. 드롭인센터는 노숙자들이 들러 빨래와 샤워도 하고 하루이틀 정도 묵어갈 수 있는 임시수용시설.
이에 대해 이명박 서울시장은 “현재 소유주를 비롯, 인근 주민들과의 대화를 통해 원만한 합의를 찾아 나갈 계획이며 만약의 경우 이전할 것에 대비해 신규시설을 확보하는 방안 등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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