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때 이른 퇴임자의 ‘자화자찬’(안병찬 2003.01.21)

지역내일 2003-01-21 (수정 2003-01-21 오후 5:16:11)
때 이른 퇴임자의 ‘자화자찬’
안병찬 경원대학교 교수·언론학


청와대는 풍수지리에 약하다. 풍수지리설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산세·지세·수세에 따라 판단하는 이론이니, 그것과 권력 성취의 상관성을 염두에 둔다면 그럴 만하다.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 때는 본관 신축과 구 본관 능선 복원에 지관 및 풍수가의 자문을 받았다고 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청와대도 2년 전에 주변 환경을 대대적으로 뜯어고쳤다.
청와대 경호실측은 공사 목적이 위압감을 주는 시설물을 최소로 줄여 국민에게 다가가는 경호를 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풍수를 세심하게 고려한 환경 개선 작업이라는 보도이다.
공사를 진행할 때 김 대통령의 지지도는 땅바닥을 치고 있었다. 변고는 끊이지 않았다. 김 대통령 두 아들이 구속되고 추문들이 잇달아 터졌다. 그러니 청와대측은 풍수지리에 따라 환경 정비를 한 일을 입밖에 꺼낼 수 없었다. 그동안 기밀이 새나가지 않도록 단속을 해왔다고 한다. 이렇고 보니 풍수지리는 청와대 권력의 예민한 풍압계인양 느껴진다.
그런데 노무현 당선자가 나오자 김대중 대통령의 표정은 사뭇 밝아졌다. 김 대통령의 기운이 임기 말에 틔고 있다고 말하는 청와대 관계자도 있다. 그 원인을 풍수지리에서 찾는 사람도 있겠다. 풍수 선생은 고장났던 청와대 터가 최근에야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기 때문에 그만한 효과가 난다고 말할 것이다. 아무튼 김대중 정권이 한숨을 돌린 것은 사실이다.

DJ, ‘정권 재창출’ 자부심으로 생기 돌아
김 대통령이 ‘국민의 정부를 재평가하는 분위기’를 언급한 것은 금년 첫 국무회의 자리였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대선이 끝난 뒤 국민의 정부의 성과에 대해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국민의 관심을 감사하게 생각하고 마지막 날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실패한 정권’으로 고개를 숙였던 그는 ‘정권재창출’을 이룩한 뒤 ‘아름다운 퇴장’을 강조할 만큼 안도하며 여유를 부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제 김 대통령은 서산에 지는 태양처럼 장엄해지고 싶어하는 기색이다.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겠다’던 JP의 희망사항을 자기가 달성하리라고 믿고 있는지 모른다.
퇴장을 코앞에 둔 처지에 김대중 정권이 스스로 ‘분에 넘치게’ 자평한 일도 그렇다. 지난 주 금요일에 김대중 대통령이 주재한 ‘국민의 정부 5년 정책평가 보고회’. 조완규 정책평가위원장은 “국민의 정부는 전체적으로 B+ 이상이다”고 종합했다. 총리를 비롯해서 중앙행정기관장이 참석한 자리였다. 평가위원장은 중요한 성과들을 열거하고, 향후 과제로는 지역·계층·세대간 갈등 및 격차 해소, 성장과 안정을 조화시키기 위한 특단의 대책 등을 제시했다. 심도 있게 자기성찰을 하거나 자책하는 대목은 눈에 띄지 않았다. 매우 심각한 사안들도 ‘향후 과제’라는 두루뭉실한 말로 넘겼다.
한달 후면 김대중 대통령은 물러나고 노무현 당선자가 청와대 주인이 된다. 당선자의 초기 행보는 아직 가볍다. 야당대표에게 전화하고 여야총무와 식사를 하고 ‘안정 총리’를 내정했다. 그렇지만 5년 후는 아직 모른다. 지난 주말 노 당선자는 떠오르는 태양처럼 특별생방송의 토론회를 가졌다. 토론회를 보도한 월요일자 8개 조간신문 제목을 일별 하건대 이른바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과 ‘한경대(한겨레 경향신문 대한매일)’나 그 밖의 신문 사이에 의미 있는 차이가 들어 났다고 속단할 근거는 없다.
신문에 따라 한·미 관계의 변화 또는 남북 장관급 회담을 강조하거나, 프랑스식 이원 집정제 또는 총선 비례대표제를 주제로 잡은 정도의 간격이 눈에 띈다.
4년 8개월 전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떠오르는 태양이었다. 98년 5월 10일 그는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텔레비전을 이용한 ‘국민과의 대화’에 나섰다.

‘국민적 의혹’ 규명 후 냉정한 평가 받아야
이를 보도한 신문 지면은 뉴스 색깔의 띠를 펼쳐 보여주었다. “여대 정국 만들겠다” “야 의원 빼내서라도 정국 안정시키겠다” “정계 개편하겠다” “도태기업 이 달말 선별” 등으로 시각이 갈렸다. 그로부터 8개월 후인 99년 2월에 김대중 대통령은 두 번째 ‘국민과의 대화’를 했다. 일간 신문의 주제는 크게 정치문제와 경제문제로 갈렸다. “인위적 정계개편 않겠다” “언제든 총재회담 용의”같은 제목은 김대중 대통령의 변화한 어조를 보여주었다. 그 뒤로 김 대통령의 듣기 좋은 ‘공약’들이 어떻게 변질하고 실종했는지 우리는 기억한다.
물론 김대중 정권은 부정부패·의료 및 인사 정책 등 과(過)가 많지만 환란극복·대북포용·정보기술 정책 등 공(功)도 있다. 그런데 지금 스스로 ‘자화자찬’을 하다니 우습다. 특히 노 당선자가 밝혀내야 한다고 천명한 대북 4000억 비밀지원 등 국민적 의혹사건들만 해도 평가 대상에 들어있지 않았다. 김대중 정권은 후세의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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