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칼럼>이분법과 차별화의 유혹(김광동 2003.03.11)

지역내일 2003-03-10 (수정 2003-03-11 오전 10:51:02)
새 정부의 편가르기 후유증
김광동 정치평론가 나라정책원장

노무현 정부가 정식 출범한지 보름 남짓 되었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되었던 만큼 시작부터 갖가지 파격과 논란을 낳고 있다. 국민이 노 정부에게 변화를 요구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변화의 방향과 내용은 명확한 것이라기보다 매우 추상적인 것이고 가변적인 것이었다. 따라서 변화의 방향과 내용에 대해 정부는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각별한 검토작업을 진행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그렇지 않고 스스로 생각해 온 것이 곧 국민이 요구하는 것이라는 식의 자의적 판단을 한다면 그것은 매우 위험하고도 험난한 국정운영이 될 수밖에 없다.
변화를 요구받는 정부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분법적 논리요, 차별화의 길이다. 이분법(二分法)의 논리는 주체와 객체를 분리시키고 선과 악의 집단이 따로 있다는 것을 상정한다. 개혁의 주체가 따로 있고 개혁의 대상이 따로 있다는 논리로 쉽게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러면서 늘 스스로 자기 자신은 개혁의 주체이고 정의(正義)의 세력이라는 인식을 암묵적으로 전제하게 되며 나에 대한 남의 비판은 악의 무리들의 반항이나 불평 정도로 들리게 마련이다.
지난 3·1절 기념식에서 노 대통령이 말한 우리 근현대사에서 정의가 패배했고 기회주의 세력이 득세했다는 표현이나, 엊그제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누차 언급한 검찰 지휘부를 믿을 수 없어 개혁해야겠다는 발언 등은 모두 이분법적 논리 인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그런 이분법적 인식은 곧 우리 역사를 주도적으로 이끌어온 부정의하고 기회주의적인 악의 세력과 한 판 싸움을 하겠다는 것으로 들리고, 검찰개혁과 관련해서는 검찰의 불신을 불러일으킨 검찰지휘부를 개혁의 이름으로 척결하겠다는 것처럼 들린다.

‘정의 패배, 기회주의 득세’ 발언 이분법적 논리
이분법은 적(敵)을 명확히 하여 적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데는 유용하다. 전쟁과 혁명의 논법이다. 그러나 이분법은 사회를 통합시키고 사회가 가야할 대안적 길을 찾는 데는 장애로 작용한다는 것이 역사에 나타난 오랜 경험이다. 전두환 정부의 ‘정의사회 구현’이 그것이다. 그와 같은 잘못된 역사적 구조와 환경을 만든 원인을 치유하기 위해 칼을 대고 제도를 개선하자는 것이어야지 환경과 구조의 산물인 사람에게 칼을 대자는 것이어서는 곤란하다. 칼을 든 사람이 정의의 세력이라는 것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변화를 요구받는 정부가 빠지기 쉬운 또 다른 길은 차별화(差別化)의 길이다. 새정부는 모든 면에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 되곤 한다. “한미관계의 균형을 잡겠다, 경인운하건설을 중단하겠다, 대입제도를 바꾸겠다, 혹은 부산지역 고속철도공사를 중단하겠다”는 등이 그것이다. 과거 일들이 모두 문제 투성이로 잘못되어 왔으며 그 문제를 바로잡겠다는 식의 과잉 의지가 표명되기 십상이다.
차별화의 특징은 과거지향적인 것이다. 과거를 현재로 불러내어 오늘의 시각으로 과거를 재단하고 비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미래지향적이지 못하고 과거에 대한 평가에 치중하다가 내일로 나아가지 못한다. 차별화의 논리는 일을 해야할 정부가 일보다는 과거에 매달리며 허송세월하는 경우를 비일비재하게 만들었다. 김영삼 정부의 ‘신한국 창조’가 그랬고, 김대중 정부의 ‘제2건국’이 그랬다. 과거는 지우고 바로잡아야할 대상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대상일 뿐이다. 새정부는 차별화를 내세우기보다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가면 그만이다. 그래서 남긴 족적(achievements)이 과거와 다른 비약이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차별화요, 극복이다.
새로운 정부는 반복되어온 이분법과 차별화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상황은 서로를 나누고 차별화 할 만큼 한가하지 않다. 삶의 질은커녕 삶 그 자체가 불안하고 위협받는 현실임을 알아야 한다.

‘전쟁과 혁명’의 논법 지양, 국민 통합 나서야
경제 주체들은 여기저기서 죽겠다고 아우성이다. 올해 경제성장률은 4%대로 낮아졌고 경우에 따라서는 1%대로 전망된다. 국민 260만명은 신용불량자로 정상적 금융거래를 제한받고 있으며 가구당 부채는 2900만으로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지난 몇년간 경제회생을 위해 정부보증으로 투여한 공적자금 중 국민세금으로 거둬 갚아야할 액수가 70조원을 넘나든다. 더구나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의 위협은 계속되고 있는 와중에 지난 50년간 한반도 안정과 번영의 토대였던 주한미군은 재배치되거나 부분철수가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그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것이 없다. 국가위기 상황임을 알아야 한다. 새정부와 국민은 혼연일체가 되어 앞으로 5년 내지 10년 동안 뼈를 깎는 노력과 고통을 통해서만 희망의 일단이나마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이분법과 차별화의 논리는 분명 사치(奢侈)에 가깝다. 정부는 누누히 강조해왔던 대로 국민통합에 나서고 국민적 에너지를 하나로 집결하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그것만이 노무현 정부도 성공하고 국민도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다.



김 광 동(정치평론가, 나라정책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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