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대학 풍토에서 누가 학문을 하겠는가. 대부분 취직이나 고시 준비기간으로 생각한다. 대학원도 마찬가지다. 요즘 석사논문은 운전면허증이나 다름없다. 그냥 통과의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학부에서 대학원으로 진학하겠다는 학생들이 없다.”
모 대학 출신 어느 국문학박사의 말이다.
실제 그의 말대로 서울대 대학원은 실력 있는 학생들이 오지 않아 몇 년째 미달사태를 빚고 있다. 그나마 인기 있는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몇몇 대학원들도 대부분 지방대 출신들로 인원을 채우고 있다.
대학원이 이런 정도니 학부는 오죽할까. 학부제 이후 특정 인기학과에 지원자가 몰리면서 학부제 이전 정원이 160명이었던 성균관대 한문학과는 올해 전공자가 38명으로 줄었다. 철학과 폐지 논란으로 수업거부사태까지 빚었던 충남 아산의 호서대는 결국 재작년부터 철학과 신입생 모집을 포기했다.
전공예약제 등 대책마련 골머리
어문학부 학생들은 대부분 영문학전공을 지망한다. 영문학이 좋아서가 아니다. ‘영어’가 대접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건국대의 경우 올해 인문학부 정원 330명 가운데 43%인 131명이 영어영문학전공으로 몰렸다. 그 반면 철학·사학 등 이른바 ‘비인기학과’에는 10명 내외만 지원했다.
“국문학전공은 그나마 불문학이나 독문학보다는 지원자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국문학전공 학생들도 대부분 경영이나 법학 등을 복수로 전공한다. ‘취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문학 수업에서 한문을 알아야 하는 고전문학 강의는 몇몇 소수 학생들이 명맥을 유지한다. 학생 대부분이 한문은커녕 한자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
이제 ‘인문학의 위기’라는 화두는 대학에서 이미 낡은 논쟁에 속한다. 정통 인문학 강좌는 고사 직전 상황에 놓여 있고 학생들도 인문학 전공을 기피하고 있다.
인기학과 편중지원으로 일부 학과가 존폐 위기에 놓이자 대학들은 대책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는 올해부터 일부 비인기학과 지원자들에게 ‘장학금’을 대폭 늘린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성균관대와 숙명여대는 사회복지학과, 물리학과 등에 ‘전공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 △주전공과 복수전공 구별 없애기 △전공필수 학점 대폭 낮추기 등 ‘다중전공제’를 강화, 기초학문의 고사(枯死)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1세기에 꼭 필요한 인문학
그러나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사람 개개인으로 본다면 자기 자신, 그가 속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 문학과 사상 등을 어우르는 종합적인 인식틀을 만드는 학문이다.
인문학이 ‘상상력과 논리의 토대’이며 인문학이 흔들리면 모든 학문이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고 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흔히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 고리타분한 인문학이 무슨 소용이냐고 하지만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은 직업분야에서의 창의적이고 유연한 능력을 인문교육을 통해 가르친다.
21세기에서 중요한 능력은 기존의 지식과 기술을 많이 아는 것보다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창출할 수 있는 능력, 이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창조성’이기 때문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과학기술의 무한한 발전으로 인류문명이 파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고, 역사적으로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가 활발한 상태다. 이런 연구를 통해 물질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동양의 색다른 인문적 전통을 현대 인문학이 추구해야 할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인문사회연구회가 <한국 인문학의="" 발전방안="" 연구=""> 논문에서 ‘대학에서 과학기술 전공자를 위한 인문학 강좌’라는 제목으로 △과학도들에게 필요한 인간적 문화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정보사회의 특성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 △‘과학의 발전은 쌓이는 것인가’ 등 과학철학적 내용 △과학기술과 환경·인간의 행복 등을 제시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하나다.
대통령 산하에 인문학위원회
80년대 인문학의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했던 미국은 대통령 산하에 예술 및 인문학 대통령위원회(The President''s Committee on the Arts and the Humanities)를 설치, ‘창조적인 미국’(Creative America)의 비전을 제시하고 인문학을 타 학문영역과 연계시키고 있다.
프랑스는 다른 분야에 비해 재정적으로 열악할 수 있는 인문학 연구의 육성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학술연구센터’(DNRS)는 정부가 기금을 마련하여 학자들에게 재정지원을 하면서 정책적으로 개발된 학술과제에 참여케 함으로써 희소영역의 후속세대 양성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강한 인문학 전통을 갖고 있는 독일은 ‘복수전공제’(인문사회과학에 적합한 학문연구의 인프라스트럭처) 등 인문학 연구에 필요한 학문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한국>
모 대학 출신 어느 국문학박사의 말이다.
실제 그의 말대로 서울대 대학원은 실력 있는 학생들이 오지 않아 몇 년째 미달사태를 빚고 있다. 그나마 인기 있는 연세대 고려대 성균관대 등 몇몇 대학원들도 대부분 지방대 출신들로 인원을 채우고 있다.
대학원이 이런 정도니 학부는 오죽할까. 학부제 이후 특정 인기학과에 지원자가 몰리면서 학부제 이전 정원이 160명이었던 성균관대 한문학과는 올해 전공자가 38명으로 줄었다. 철학과 폐지 논란으로 수업거부사태까지 빚었던 충남 아산의 호서대는 결국 재작년부터 철학과 신입생 모집을 포기했다.
전공예약제 등 대책마련 골머리
어문학부 학생들은 대부분 영문학전공을 지망한다. 영문학이 좋아서가 아니다. ‘영어’가 대접받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건국대의 경우 올해 인문학부 정원 330명 가운데 43%인 131명이 영어영문학전공으로 몰렸다. 그 반면 철학·사학 등 이른바 ‘비인기학과’에는 10명 내외만 지원했다.
“국문학전공은 그나마 불문학이나 독문학보다는 지원자가 많은 편이다. 그러나 국문학전공 학생들도 대부분 경영이나 법학 등을 복수로 전공한다. ‘취직’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국문학 수업에서 한문을 알아야 하는 고전문학 강의는 몇몇 소수 학생들이 명맥을 유지한다. 학생 대부분이 한문은커녕 한자도 제대로 읽을 줄 모른다.
이제 ‘인문학의 위기’라는 화두는 대학에서 이미 낡은 논쟁에 속한다. 정통 인문학 강좌는 고사 직전 상황에 놓여 있고 학생들도 인문학 전공을 기피하고 있다.
인기학과 편중지원으로 일부 학과가 존폐 위기에 놓이자 대학들은 대책마련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대 인문대는 올해부터 일부 비인기학과 지원자들에게 ‘장학금’을 대폭 늘린다는 ‘당근’을 제시했다. 성균관대와 숙명여대는 사회복지학과, 물리학과 등에 ‘전공예약제’를 실시하고 있다.
연세대의 경우 △주전공과 복수전공 구별 없애기 △전공필수 학점 대폭 낮추기 등 ‘다중전공제’를 강화, 기초학문의 고사(枯死)를 막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21세기에 꼭 필요한 인문학
그러나 인문학은 모든 학문의 근본이 되는 것으로 사람 개개인으로 본다면 자기 자신, 그가 속한 사회의 역사와 문화, 문학과 사상 등을 어우르는 종합적인 인식틀을 만드는 학문이다.
인문학이 ‘상상력과 논리의 토대’이며 인문학이 흔들리면 모든 학문이 제 역할을 하기 힘들다고 하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흔히 21세기 정보화사회에서 고리타분한 인문학이 무슨 소용이냐고 하지만 미국, 영국 등 선진국들은 직업분야에서의 창의적이고 유연한 능력을 인문교육을 통해 가르친다.
21세기에서 중요한 능력은 기존의 지식과 기술을 많이 아는 것보다는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며 창출할 수 있는 능력, 이를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창조성’이기 때문이다.
이미 선진국에서는 과학기술의 무한한 발전으로 인류문명이 파괴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보고, 역사적으로 과학과 인문학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 연구가 활발한 상태다. 이런 연구를 통해 물질문명에 오염되지 않은 동양의 색다른 인문적 전통을 현대 인문학이 추구해야 할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인문사회연구회가 <한국 인문학의="" 발전방안="" 연구=""> 논문에서 ‘대학에서 과학기술 전공자를 위한 인문학 강좌’라는 제목으로 △과학도들에게 필요한 인간적 문화 △과학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정보사회의 특성 △전자민주주의의 가능성 △‘과학의 발전은 쌓이는 것인가’ 등 과학철학적 내용 △과학기술과 환경·인간의 행복 등을 제시한 것도 이런 문제의식의 하나다.
대통령 산하에 인문학위원회
80년대 인문학의 위기 극복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했던 미국은 대통령 산하에 예술 및 인문학 대통령위원회(The President''s Committee on the Arts and the Humanities)를 설치, ‘창조적인 미국’(Creative America)의 비전을 제시하고 인문학을 타 학문영역과 연계시키고 있다.
프랑스는 다른 분야에 비해 재정적으로 열악할 수 있는 인문학 연구의 육성을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지원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프랑스 ‘국립학술연구센터’(DNRS)는 정부가 기금을 마련하여 학자들에게 재정지원을 하면서 정책적으로 개발된 학술과제에 참여케 함으로써 희소영역의 후속세대 양성에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강한 인문학 전통을 갖고 있는 독일은 ‘복수전공제’(인문사회과학에 적합한 학문연구의 인프라스트럭처) 등 인문학 연구에 필요한 학문적이고 사회·문화적인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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