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복’ 입은 국회의원들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 언론학
주연(主演) 유시민은 별로 품안들이고 정치선전 목표를 달성했다. 유시민은 목둘레가 둥근 회색 티셔츠 위에 감색 상의를 걸치고 흰색 면바지를 입었다. 약식 양복(캐주얼)의 콤비 차림이었다. 무대는 높이 솟은 국회의사당이고, 관객은 지체 높은 국회의원들이다. 그들은 모두 짙은 색 양복 정장으로 통일하고 있다. 국회의원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의 유희적인 ‘정장 파괴’ 행위가 우발적인 해프닝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전에 계산한 기획작품이라고 전해진다.
신생 의원인 유시민의 희한한 돌출 행동을 보고 ‘젖가슴을 푼 여성 시의원’ 사건을 연상한 사람도 있다. 입헌군주제의 덴마크는 수도 코펜하겐이 특별구로서 시의회를 구성한다. 코펜하겐 시의회 의사당에서 벌어진 젊은 여성 의원의 ‘젖 물리기 시위’는 모성의 힘으로 인권(여권)을 떨친 사건으로 알려진다. 티니 슈미더스는 1974년 코펜하겐 시의회 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20세의 젊은 나이였다. 시의회가 예산안을 심의하던 4월 어느 날 티니 의원은 갓난아기를 담은 유아바구니를 의석 곁에 놓고 앉아 있었다. 회의가 열띤 논란을 계속하고 있을 때 아기를 안아 올린 티니는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젖을 물렸다.
근엄한 표정으로 의석에 앉아있던 남성의원들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젖가슴을 풀어 시 의사당의 체면을 깎다니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잠시 후 의사당 직원이 티니 의원에게 다가가서 즉시 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시민의 ‘정장 파괴’, 국회성역화에 대한 도전
그녀는 반문했다. “무엇 때문이죠? 나는 선출된 의원이에요.” “그렇지만 아기는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아기도 선출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티니 의원은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의사당을 떠나기를 거부했다. 조그마하지만 강렬한 티니 의원의 도전은 코펜하겐 여성운동사의 제3장으로 기록되었다. 그녀의 행동은 코펜하겐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이 도시는 1879년에 여성 해방을 외친 헨리크 요한 입센의 명작 ‘인형의 집’을 초연하고 1924년에 최초의 여성각료(교육부 장관)인 니나방을 배출한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유시민의 돌출 행동을 티나 슈미더스의 젖 물리기 시위와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의원의 행동에 공통점은 있다. 의사당이라는 성역의 도그마(교의)에 한방을 먹였다는 점이다. 티나는 확신을 가지고 모성과 여권을 드날렸으나 사전에 각본을 짜고 행동하지는 않았다.
유시민은 두 가지 ‘의도’를 가지고 거사했다고 말한다. 그는 첫째로 의사당이 내 일터인 만큼 편한 복장이 좋다고 생각했고, 둘째로 국회 본회의장 전체가 짙은 색 정장으로 통일돼 있는데 다 같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런 차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복장은 옳고 그름이 아닌 정도의 문제라고 항변했다.
한국의 양복사를 보면 1881년에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갔던 김옥균 유길준 등이 최초로 양복을 착용하고 돌아온 것이 시초라고 알려진다. 서양식 복장이 정장이 된 것은 이제 와서 바꿀 수 없는 일이다. 제복은 속성상 획일적이다. 역사적으로 복장제도는 신분과 계급을 서열화하는데 이용되었다. 물론 한국 국회의원들이 규칙을 만들어 단일한 모양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관례적으로 짙은 색깔의 양복을 입고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아 신분을 가리고 있다.
격식의 파괴는 노무현 정부의 특허행위처럼 여겨진다. 여러 가지 형식과 인사의 파괴를 주도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다. 그런 노 대통령이 정장을 깰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 별나다.
정장은 절제의 상징, ‘다름’에 대한 관용도 필요
청와대 전체 직원 워크숍(3월29일)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넥타이 한번 풀고 사는 것이 제 평생소원이었습니다. 못 풀었습니다. 넥타이를 매는 사람이 반드시 모범적이 아니어도 넥타이를 매는 동안 자기를 절제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며 자기를 다듬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은 풀어놓으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그게 이웃에 민폐가 되고 우리의 사회규범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되 남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전체로 묶어서 절제하는 겁니다. 절제의 상징으로 저는 넥타이를 맵니다.”(국정홍보처 발행 노무현 대통령 발언록 ‘요즘 많이 궁금하시죠!’ 중에서)
복장 문제에서는 노 대통령과 유시민 의원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 유시민은 다시 정장을 하고 나와 의원 선서를 했다. 그는 매회기가 시작되는 첫날을 평상복 착용일로 하자고 타협안을 내다가 야유만 들었다. 국회의원들의 ‘유니폼’격인 정장이나 유시민이 고집한 평상 복장이나 양복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다름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 언론학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 언론학
주연(主演) 유시민은 별로 품안들이고 정치선전 목표를 달성했다. 유시민은 목둘레가 둥근 회색 티셔츠 위에 감색 상의를 걸치고 흰색 면바지를 입었다. 약식 양복(캐주얼)의 콤비 차림이었다. 무대는 높이 솟은 국회의사당이고, 관객은 지체 높은 국회의원들이다. 그들은 모두 짙은 색 양복 정장으로 통일하고 있다. 국회의원 ‘제복’을 입고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의 유희적인 ‘정장 파괴’ 행위가 우발적인 해프닝처럼 보였다. 그런데 사전에 계산한 기획작품이라고 전해진다.
신생 의원인 유시민의 희한한 돌출 행동을 보고 ‘젖가슴을 푼 여성 시의원’ 사건을 연상한 사람도 있다. 입헌군주제의 덴마크는 수도 코펜하겐이 특별구로서 시의회를 구성한다. 코펜하겐 시의회 의사당에서 벌어진 젊은 여성 의원의 ‘젖 물리기 시위’는 모성의 힘으로 인권(여권)을 떨친 사건으로 알려진다. 티니 슈미더스는 1974년 코펜하겐 시의회 의원에 당선되었을 때 20세의 젊은 나이였다. 시의회가 예산안을 심의하던 4월 어느 날 티니 의원은 갓난아기를 담은 유아바구니를 의석 곁에 놓고 앉아 있었다. 회의가 열띤 논란을 계속하고 있을 때 아기를 안아 올린 티니는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젖을 물렸다.
근엄한 표정으로 의석에 앉아있던 남성의원들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젖가슴을 풀어 시 의사당의 체면을 깎다니 말도 안 된다고 여겼다. 잠시 후 의사당 직원이 티니 의원에게 다가가서 즉시 퇴장해 달라고 요청했다.
유시민의 ‘정장 파괴’, 국회성역화에 대한 도전
그녀는 반문했다. “무엇 때문이죠? 나는 선출된 의원이에요.” “그렇지만 아기는 여기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아기도 선출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티니 의원은 아기에게 젖을 물린 채 의사당을 떠나기를 거부했다. 조그마하지만 강렬한 티니 의원의 도전은 코펜하겐 여성운동사의 제3장으로 기록되었다. 그녀의 행동은 코펜하겐의 전통과 무관하지 않을 터였다. 이 도시는 1879년에 여성 해방을 외친 헨리크 요한 입센의 명작 ‘인형의 집’을 초연하고 1924년에 최초의 여성각료(교육부 장관)인 니나방을 배출한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유시민의 돌출 행동을 티나 슈미더스의 젖 물리기 시위와 단순하게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두 의원의 행동에 공통점은 있다. 의사당이라는 성역의 도그마(교의)에 한방을 먹였다는 점이다. 티나는 확신을 가지고 모성과 여권을 드날렸으나 사전에 각본을 짜고 행동하지는 않았다.
유시민은 두 가지 ‘의도’를 가지고 거사했다고 말한다. 그는 첫째로 의사당이 내 일터인 만큼 편한 복장이 좋다고 생각했고, 둘째로 국회 본회의장 전체가 짙은 색 정장으로 통일돼 있는데 다 같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이런 차림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는 복장은 옳고 그름이 아닌 정도의 문제라고 항변했다.
한국의 양복사를 보면 1881년에 신사유람단으로 일본에 갔던 김옥균 유길준 등이 최초로 양복을 착용하고 돌아온 것이 시초라고 알려진다. 서양식 복장이 정장이 된 것은 이제 와서 바꿀 수 없는 일이다. 제복은 속성상 획일적이다. 역사적으로 복장제도는 신분과 계급을 서열화하는데 이용되었다. 물론 한국 국회의원들이 규칙을 만들어 단일한 모양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관례적으로 짙은 색깔의 양복을 입고 국회의원 금배지를 달아 신분을 가리고 있다.
격식의 파괴는 노무현 정부의 특허행위처럼 여겨진다. 여러 가지 형식과 인사의 파괴를 주도하는 것은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다. 그런 노 대통령이 정장을 깰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이 별나다.
정장은 절제의 상징, ‘다름’에 대한 관용도 필요
청와대 전체 직원 워크숍(3월29일)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넥타이 한번 풀고 사는 것이 제 평생소원이었습니다. 못 풀었습니다. 넥타이를 매는 사람이 반드시 모범적이 아니어도 넥타이를 매는 동안 자기를 절제하는 것입니다. 타인의 평가를 의식하며 자기를 다듬고 생활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욕망은 풀어놓으면 끊임없이 펼쳐집니다. 그게 이웃에 민폐가 되고 우리의 사회규범을 훼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하되 남에게 부담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 것을 전체로 묶어서 절제하는 겁니다. 절제의 상징으로 저는 넥타이를 맵니다.”(국정홍보처 발행 노무현 대통령 발언록 ‘요즘 많이 궁금하시죠!’ 중에서)
복장 문제에서는 노 대통령과 유시민 의원의 생각이 이렇게 다르다. 유시민은 다시 정장을 하고 나와 의원 선서를 했다. 그는 매회기가 시작되는 첫날을 평상복 착용일로 하자고 타협안을 내다가 야유만 들었다. 국회의원들의 ‘유니폼’격인 정장이나 유시민이 고집한 평상 복장이나 양복이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다름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다는 말에 일리가 있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 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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