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투기 공화국의 우울
정달영 언론인
기사를 ‘작문’하고 취재원 ‘조작’을 일삼던 한 기자의 문제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신문인 뉴욕 타임스가 요즘 큰 곤욕을 치루고 있다. 스스로 “뉴욕 타임스 152년 역사상 최악의 사태”라고 자탄할 정도다. 멀리서 보아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의아스러운 사건이다.
뉴욕 타임스는 대부분의 언론학 교과서가 가르칠 정도로 유명한 기자윤리 지침을 가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 이해상충 지침(The New York Times Conflict of Interest Policy)’이라고 하는 것이다. 경기장 입장 편의까지 언급할 만큼 아주 세세하고 엄격하다. 기자는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이해상충의 오해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 이 지침의 정신이다.
이해상충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은 아니지만, 요컨대 사익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일은 무엇이든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편의를 얻으면 비판하는 데 자유롭지 못하다. 비판이 위축되는 순간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해상충의 문제는 기자만이 아니라 공직자들에게 더 심각한 현실이 된다. 공익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면서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 함께 고려된다면 그것을 옳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중대한 문제다.
공직자들 이해상충 심각하다
최근 한 경제전문지가 아파트 값 폭등 문제와 관련하여 일견 ‘싱거워 보이는’ 조사를 했다.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을 직접 만들고 시행하는 정부 부처 장차관 등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가를 알아본 것이다. 재경부, 건교부, 행자부, 국세청, 금감위 등 5개 부처에서 해당 공직자는 모두 22명이었고 그 중 전세살이를 하는 김두관 행자부장관을 뺀 21명이 조사대상이 되었다.
결과는 21명 중 18명의 집이 아파트 값 폭등의 진원인 강남, 서초, 송파 3개 구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경부는 장차관 포함 9명 중 국장 1명만이 성남시 분당에 살고 나머지 8명은 강남 등 3개 구가 주소였으며, 건교부 역시 광진구 광장동 거주자 1명만이 예외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아파트 값 폭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들 거의 전원이 ‘이해상충’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집값을 ‘안정시키는 대책’을 그들 스스로 세워서 내놔야 하는 것이다. 제 집값 제가 깎아내리기다. 가능한 일일까?
아파트 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투기 대책이라는 것을 자주 발동했으나 어쩐 영문인지 대책에 비례해서 값은 더 치솟았다. “건설 경기마저 죽으면 큰 일 난다”는 엄살 속에 폭등은 방치되는 게 아니냐는 인상이었다. 엄청난 투기 자금은 허술한 대책이 만들어내는 빈틈을 노려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투기 판에 함께 뛰어들지 않고서는 제 힘으로 제 집 마련할 길이 꽉 막힌, 바야흐로 전망을 잃어버린 ‘아파트 투기 공화국’에서 서민들만이 최대 희생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무슨 방법으로도 집값을 따라잡을 길이 없다.
강도 높은 ‘5.23 부동산 투기 대책’이 발표된 날 어느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수만의 인파가 몰렸다. 모델하우스 입장하는 데만 3시간을 기다렸다. 상징적인 장면이다. 돈이 갈 곳을 잃어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고강도 투기대책에 콧방귀를 꾸는 사람들이 있는 한 편에는 300만 명을 넘어선 신용불량자들이 웅크리고 있다. 경제인구의 14%나 된다. 그나마도 절반이 청년층이다. 카드 빚에 몰려 동반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최악의 청년실업 상황을 웅변한다. 사회는 어둡다. 전망이 안 보인다.
서민의 박탈감 어쩔 것인가
몇 시민단체와 종교인들이 우리의 주택정책을 이제까지의 ‘공급위주’에서 ‘주거복지’ 개념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저주거기준’을 만들어 법제화하라는 요구다. 그 자리에서 한 전문가는 우리 신문들의 부동산 보도태도를 비판했다. “1면에선 부동산 과열을 대서특필하고, 경제섹션에선 부동산투기를 ‘투자’로 미화하는 기사를 쓰고, 그 옆엔 분양광고가 난다”는 것이다.
눈여겨봐야 할 일은 빈민- 서민들이 느끼는 박탈감이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악순환하고 소득불평등은 심화하는 데 절대빈곤층의 주거환경은 어디서도 배려되지 않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다는 통계적 포만(飽滿)이 아무리 나와도 값이 폭등하는 아파트 동네에 살면서 아파트 폭등 대책을 세우는 공직자들의 현장감각으로는 정책의 실효성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일찍이 일본을 침몰시킨 부동산 거품 붕괴를 심각하게 대비할 때다.
정달영 언론인
기사를 ‘작문’하고 취재원 ‘조작’을 일삼던 한 기자의 문제로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다는 신문인 뉴욕 타임스가 요즘 큰 곤욕을 치루고 있다. 스스로 “뉴욕 타임스 152년 역사상 최악의 사태”라고 자탄할 정도다. 멀리서 보아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는지 의아스러운 사건이다.
뉴욕 타임스는 대부분의 언론학 교과서가 가르칠 정도로 유명한 기자윤리 지침을 가지고 있다. ‘뉴욕 타임스 이해상충 지침(The New York Times Conflict of Interest Policy)’이라고 하는 것이다. 경기장 입장 편의까지 언급할 만큼 아주 세세하고 엄격하다. 기자는 어떤 사소한 것이라도 이해상충의 오해를 피해야 한다는 것이 이 지침의 정신이다.
이해상충은 우리에게 익숙한 말은 아니지만, 요컨대 사익이 개입될 여지가 있는 일은 무엇이든 가까이 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편의를 얻으면 비판하는 데 자유롭지 못하다. 비판이 위축되는 순간 언론이 제 구실을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이해상충의 문제는 기자만이 아니라 공직자들에게 더 심각한 현실이 된다. 공익을 위한 정책을 입안하면서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이 함께 고려된다면 그것을 옳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옳지 않을 뿐 아니라 실제로 중대한 문제다.
공직자들 이해상충 심각하다
최근 한 경제전문지가 아파트 값 폭등 문제와 관련하여 일견 ‘싱거워 보이는’ 조사를 했다.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을 직접 만들고 시행하는 정부 부처 장차관 등 국장급 이상 간부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가를 알아본 것이다. 재경부, 건교부, 행자부, 국세청, 금감위 등 5개 부처에서 해당 공직자는 모두 22명이었고 그 중 전세살이를 하는 김두관 행자부장관을 뺀 21명이 조사대상이 되었다.
결과는 21명 중 18명의 집이 아파트 값 폭등의 진원인 강남, 서초, 송파 3개 구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경부는 장차관 포함 9명 중 국장 1명만이 성남시 분당에 살고 나머지 8명은 강남 등 3개 구가 주소였으며, 건교부 역시 광진구 광장동 거주자 1명만이 예외였다고 한다.
말하자면 아파트 값 폭등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우리나라 고위 공직자들 거의 전원이 ‘이해상충’의 문제를 지니고 있다는 얘기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집값을 ‘안정시키는 대책’을 그들 스스로 세워서 내놔야 하는 것이다. 제 집값 제가 깎아내리기다. 가능한 일일까?
아파트 값이 폭등하자 정부는 투기 대책이라는 것을 자주 발동했으나 어쩐 영문인지 대책에 비례해서 값은 더 치솟았다. “건설 경기마저 죽으면 큰 일 난다”는 엄살 속에 폭등은 방치되는 게 아니냐는 인상이었다. 엄청난 투기 자금은 허술한 대책이 만들어내는 빈틈을 노려 이리저리 몰려다녔다.
투기 판에 함께 뛰어들지 않고서는 제 힘으로 제 집 마련할 길이 꽉 막힌, 바야흐로 전망을 잃어버린 ‘아파트 투기 공화국’에서 서민들만이 최대 희생자로 남을 수밖에 없다. 무슨 방법으로도 집값을 따라잡을 길이 없다.
강도 높은 ‘5.23 부동산 투기 대책’이 발표된 날 어느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 모델하우스에는 수만의 인파가 몰렸다. 모델하우스 입장하는 데만 3시간을 기다렸다. 상징적인 장면이다. 돈이 갈 곳을 잃어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고강도 투기대책에 콧방귀를 꾸는 사람들이 있는 한 편에는 300만 명을 넘어선 신용불량자들이 웅크리고 있다. 경제인구의 14%나 된다. 그나마도 절반이 청년층이다. 카드 빚에 몰려 동반 자살하는 젊은이들이 최악의 청년실업 상황을 웅변한다. 사회는 어둡다. 전망이 안 보인다.
서민의 박탈감 어쩔 것인가
몇 시민단체와 종교인들이 우리의 주택정책을 이제까지의 ‘공급위주’에서 ‘주거복지’ 개념으로 전환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최저주거기준’을 만들어 법제화하라는 요구다. 그 자리에서 한 전문가는 우리 신문들의 부동산 보도태도를 비판했다. “1면에선 부동산 과열을 대서특필하고, 경제섹션에선 부동산투기를 ‘투자’로 미화하는 기사를 쓰고, 그 옆엔 분양광고가 난다”는 것이다.
눈여겨봐야 할 일은 빈민- 서민들이 느끼는 박탈감이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악순환하고 소득불평등은 심화하는 데 절대빈곤층의 주거환경은 어디서도 배려되지 않고 있다.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는다는 통계적 포만(飽滿)이 아무리 나와도 값이 폭등하는 아파트 동네에 살면서 아파트 폭등 대책을 세우는 공직자들의 현장감각으로는 정책의 실효성이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일찍이 일본을 침몰시킨 부동산 거품 붕괴를 심각하게 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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