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청계천의 추억(최영희 2003.07.07)

지역내일 2003-07-07 (수정 2003-07-07 오전 10:54:58)
청계천의 추억

상인들의 분노의 목소리가 있지만 청계천은 숨을 쉬게 되는 길로 가고 있다. 우려했던 교통 대란 극복도 성숙한 시민의식과 지능형 교통시스템(ITS) 이 한 몫 한다고 자랑한다. 숫자놀음을 꼭 믿는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 이득도 1조원이 넘는다고 열심히 자료가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이제 그 많은 돈을 들여 냇물을 살려내는 정도가 되었다는 자부심이 생긴다. 물론 청계천 복원이 단순히 폭 몇 미터의 시냇물 살리기라면 그 비용은 아깝다. 그러나 환경문제뿐 아니라 국민 모두에게 미치는 그 상징적 의미는 여러 면에서 매우 크다.
청계고가가 문을 닫던 날, 청계천의 추억을 되살리며 나도 그 길을 갔다. 내겐 친구와 함께 헌책방을 뒤지며 잘 이해하지도 못하는 철학책, 역사책 등을 모으던 기억을 빼면 슬픈 추억뿐이다.

내 인생을 바꾼 청계천, 판자촌과 전태일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이라는 코너가 있듯이 ‘인생을 바꾼 한 장소’를 내게 말하라 한다면 나는 단연코 청계천이라고 말해야 한다.
60년대 말 대학 1학년 가을학기 때다. 교수님과 함께 빈민촌 사회조사를 한 적이 있다. 국립묘지 뒷담을 끼고 있던 사당동, 목동의 뚝방길과 인천의 북성동, 그리고 마지막 쫓겨나기 직전 청계천변의 판자촌이었다. 모두 다 비참한 생활들이었지만 청계천변의 판자집은 상상을 초월했다. 라면박스 두 개 정도 넓이의 공간에서 밥을 짓는 아주머니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다가 내가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하니 자기가 쪼그리고 앉았던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 곳이 곧 화장실이기도 했던 것이다. 이들이 내게 한국의 현실을 가르쳐주고 있었다. 마치 한 폭의 한국화처럼 인터넷에 떠있는 사진에는 이것이 ‘청계천의 목조가옥’이라고 나와 있다.
그리고 1년 후,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에서는 노동운동사의 한 획을 긋는 불길이 일었다. 청계천 평화시장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이었다. 한자투성이의 근로기준법 책을 신주단지처럼 안고 쓰러졌다. 그가 동시대를 살던 우리들에게 던진 충격적 한마디는 “내게 만약 대학생 친구가 한 명만 있었다면…”이었다.
지금도 도서관에서 당시의 신문이나 잡지를 뒤지면 그의 죽음 이후 ‘경제성장’ 그 속에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발견한 듯 많은 글들이 쓰여졌다.
우린 창문도 다 막아버리고 다락을 쳐서 2층으로 만들어 미싱을 돌리는 고참이나, 졸면서 단추구멍을 만드는 어린 시다 여공들과 눈 맞추러 평화시장을 기웃거렸다. 거기서도 우리는 한국의 현실을 배웠다.
청계천 복개를 완성시키기 위해 판자촌은 철거되고 이들은 목동 뚝방과 사당동 등에서 쫓겨난 이들과 함께 경기도 광주대단지로 강제 이주한다. 이들이 71년 여름 폭동을 일으킨 것이 광주 대단지 사건이었다. 장맛비에 토사가 흘러내려 심란하기 짝이 없는 허허벌판에 격리된 채 천막집에 의지해 끼니 걱정하는 이들에게 연이어 날아온 땅값 납부통지서가 분노를 폭발케 한 것이었다.

개발독재의 교훈, 상인들의 아픔도 배려해야
정책을 세우는 당사자들이 어떤 시각과 역사적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게 해 준다. 이 후에 시화호와 새만금도 마찬가지다. 상수도 수원지 주변의 위락시설도 그렇다. 몇 년만 지나면 청계천처럼 뜯어내야 하는 일로 갈등을 겪고 논쟁으로 시간과 역량을 낭비하게 된다.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천, 아직 상상할 수 없지만, 버려진 땅 난지도 상암경기장 근처 공원을 보면 가능성과 걱정이 함께 든다.
연못을 만들고 시냇물을 흐르게 한 그곳에서 청소하는 아저씨는 팔당 맑은 물을 끌어오느라 한달에 3600만원씩이나 든다고 투덜대던데 1년이 지난 지금은 갈색 이끼와 부유물로 우리를 실망시키고 있다.
청계천 복원의 의미는 다 공감하고 있다. 후세에도 잘 복원하고 잘 개발했다고 칭찬받을 수 있어야 하고, 주변상인들의 고통을 어떻게 덜어주느냐가 관건이다. 모두다 좋다 해도 그 과정에서 겪는 소수의 아픔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모두 좋아할 일이기에 더욱 그들도 좋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

최영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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