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대북사업과 ‘검은돈’ 커넥션
김영호 시사평론가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검찰조사로 드러난 정몽헌 회장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간의 ‘검은돈’ 커넥션은 정회장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연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여러 일을 벌였으나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쪽으로 풀려 그를 죽음으로 압박하지 않나 싶다. 대북비밀송금과 분식회계, 정치성 자금 ‘150억+α’, 팽창경영에 따른 계열사 집단부실화, 재산권 분규에 따른 형제간의 반목과 알력. 이런 것들이 말이다.
금강산 자락에서 태어난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씨는 고향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모양이다. ‘금강’이란 상호를 갖은 기업을 여럿 창업했으니 말이다. 성공한 사업가 정씨는 금강산을 개발하려는 뜻을 품고 금단의 땅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동토에는 아직도 해빙의 바람이 불지 않았다. 그 때가 1989년 2월이었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1998년에야 그의 원대한 꿈이 빛을 보게 된다. 그것은 DJ정권의 햇볕정책이 빛을 발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그는 노구를 가누기 어려워 위업을 그의 5남 몽헌씨에게 맡긴다. 몽헌씨의 북쪽 나들이가 잦아들면서 대북송금에 관한 숱한 말을 뿌리더니 급기야 특별검사제가 도입됐다.
말로만 무성하던 대북비밀송금이 실체를 드러냈다. 현대그룹이 남북정상회담 전에 4억5000만달러를 송금하고 현물 5000만달러 어치를 지원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비밀송금으로 말미암아 정상회담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었다. 산업은행의 불법대출 4000억원 말고도 상당액을 계열사를 통해 조달했으니 분식회계를 지시했다는 혐의까지 쓰게 됐다.
남북사업 구실로 비자금 조성, 정치권 로비
특검조사에서 그는 DJ정권의 실세 박지원씨에게 150억원이라는 거금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외에도 ‘+α’라는 규모를 알 수 없는 정치자금도 뿌렸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불법송금과 관련하여 재판을 받는 한편 150억원에 관해 세 차례나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가 ‘150억+α’의 비밀을 무덤으로 가져갔지만 그 폭발력이 그를 무던히도 압박했을 것 같다
금강산 사업을 상업적으로만 판단하면 사업성이 없다. 처음부터 막대한 적자가 예상됐던 사업이다. 30년간 독점사용 대가로 6년3개월간에 걸쳐 9억42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매월 2500만달러를 송금하며 헉헉거렸다. 너무 힘겹자 해로관광 100달러, 육로관광 50달러로 조정됐지만 최근까지 3억8880달러나 송금했다. 그런데 관광객은 1998년 이후 52만명에 불과하다. 한 해에 이만한 수가 가도 수지가 맞을까 말까한데 말이다.
몽헌씨 계열사는 대부분이 가사상태에 놓여 있다. 금강산 사업을 담당한 현대아산은 자본금 4500억원을 완전히 잠식한 상태다. 대북송금을 분담했던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반도체는 계열에서 분리되어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다. 한때 금강산 사업을 맡았던 현대상선은 자동차 운반사업을 매각하여 겨우 숨통을 트는 형국이다. 또 현대증권, 현대투신운영, 현대투자증권 등 금융3사는 제3자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358억원의 적자를 냈는데 그의 장모가 최대주주이다.
팽창경영은 부실화의 또 다른 불씨였다. 그는 IMF 사태의 충격파를 예사롭게 봤던 것 같다. 당시 DJ정권은 재벌에게 감량경영, 부채감축, 구조조정, 계열분리를 독려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않았다. 국민투신에 이어 한남투신을 인수하여 금융업의 확장을 노리는가 하면 LG반도체도 인수했다. 금융차입에 의존하여 사업규모를 확장하는 한편 현대건설을 지주회사로 삼아 전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2000년 3월 이른바 ‘왕자의 난’이라는 형제간의 재산권 분규를 일으켰던 것이다.
수익성 없는 ‘정몽헌사업’ 시장논리로 풀어야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씨는 1980년대 초반부터 분할승계라는 2세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2세간의 사업영역은 오래 전부터 구획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현대건설을 차지한 몽헌씨가 형 몽구씨의 자동차와 동생 몽준씨의 중공업을 넘나보다 골육상쟁을 빚었던 것이다. 그의 주변에 포진한 부친의 비서출신인 가신들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또 그는 당시 ‘정치적 힘’을 과신하지 않나 싶다.
현대아산은 더 이상 대북사업을 이끌 능력도 재력도 없다. 대북사업은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맡기에는 수익성도 없다. 정부가 맡아야 할 국가적 사업이다. 창업주의 아들이라는 구심점이 겨우 현대그룹 계열사간의 연결고리 노릇을 했을 뿐이다.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경영체로 나가야 한다.
정몽헌 회장의 비극적 죽음이 주는 교훈은 정경유착의 검은돈 커넥션을 근절해야 기업도 나라도 산다는 것이다.
김영호 시사평론가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검찰조사로 드러난 정몽헌 회장과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간의 ‘검은돈’ 커넥션은 정회장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연을 시사하고 있다. 그는 여러 일을 벌였으나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쪽으로 풀려 그를 죽음으로 압박하지 않나 싶다. 대북비밀송금과 분식회계, 정치성 자금 ‘150억+α’, 팽창경영에 따른 계열사 집단부실화, 재산권 분규에 따른 형제간의 반목과 알력. 이런 것들이 말이다.
금강산 자락에서 태어난 현대그룹 창업자 정주영씨는 고향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모양이다. ‘금강’이란 상호를 갖은 기업을 여럿 창업했으니 말이다. 성공한 사업가 정씨는 금강산을 개발하려는 뜻을 품고 금단의 땅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그 동토에는 아직도 해빙의 바람이 불지 않았다. 그 때가 1989년 2월이었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러 1998년에야 그의 원대한 꿈이 빛을 보게 된다. 그것은 DJ정권의 햇볕정책이 빛을 발하면서부터였다. 하지만 그는 노구를 가누기 어려워 위업을 그의 5남 몽헌씨에게 맡긴다. 몽헌씨의 북쪽 나들이가 잦아들면서 대북송금에 관한 숱한 말을 뿌리더니 급기야 특별검사제가 도입됐다.
말로만 무성하던 대북비밀송금이 실체를 드러냈다. 현대그룹이 남북정상회담 전에 4억5000만달러를 송금하고 현물 5000만달러 어치를 지원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비밀송금으로 말미암아 정상회담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 특검의 판단이었다. 산업은행의 불법대출 4000억원 말고도 상당액을 계열사를 통해 조달했으니 분식회계를 지시했다는 혐의까지 쓰게 됐다.
남북사업 구실로 비자금 조성, 정치권 로비
특검조사에서 그는 DJ정권의 실세 박지원씨에게 150억원이라는 거금을 전달했다는 사실을 시인했다. 이외에도 ‘+α’라는 규모를 알 수 없는 정치자금도 뿌렸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얼마 전까지 불법송금과 관련하여 재판을 받는 한편 150억원에 관해 세 차례나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가 ‘150억+α’의 비밀을 무덤으로 가져갔지만 그 폭발력이 그를 무던히도 압박했을 것 같다
금강산 사업을 상업적으로만 판단하면 사업성이 없다. 처음부터 막대한 적자가 예상됐던 사업이다. 30년간 독점사용 대가로 6년3개월간에 걸쳐 9억4200만달러를 지급하기로 했다. 처음부터 매월 2500만달러를 송금하며 헉헉거렸다. 너무 힘겹자 해로관광 100달러, 육로관광 50달러로 조정됐지만 최근까지 3억8880달러나 송금했다. 그런데 관광객은 1998년 이후 52만명에 불과하다. 한 해에 이만한 수가 가도 수지가 맞을까 말까한데 말이다.
몽헌씨 계열사는 대부분이 가사상태에 놓여 있다. 금강산 사업을 담당한 현대아산은 자본금 4500억원을 완전히 잠식한 상태다. 대북송금을 분담했던 현대건설과 하이닉스 반도체는 계열에서 분리되어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다. 한때 금강산 사업을 맡았던 현대상선은 자동차 운반사업을 매각하여 겨우 숨통을 트는 형국이다. 또 현대증권, 현대투신운영, 현대투자증권 등 금융3사는 제3자 매각이 추진되고 있다. 지주회사 격인 현대엘리베이터는 지난해 358억원의 적자를 냈는데 그의 장모가 최대주주이다.
팽창경영은 부실화의 또 다른 불씨였다. 그는 IMF 사태의 충격파를 예사롭게 봤던 것 같다. 당시 DJ정권은 재벌에게 감량경영, 부채감축, 구조조정, 계열분리를 독려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않았다. 국민투신에 이어 한남투신을 인수하여 금융업의 확장을 노리는가 하면 LG반도체도 인수했다. 금융차입에 의존하여 사업규모를 확장하는 한편 현대건설을 지주회사로 삼아 전계열사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2000년 3월 이른바 ‘왕자의 난’이라는 형제간의 재산권 분규를 일으켰던 것이다.
수익성 없는 ‘정몽헌사업’ 시장논리로 풀어야
현대그룹의 창업자 정주영씨는 1980년대 초반부터 분할승계라는 2세경영 체제를 구축했다. 2세간의 사업영역은 오래 전부터 구획정리가 끝난 상태였다. 그런데 현대건설을 차지한 몽헌씨가 형 몽구씨의 자동차와 동생 몽준씨의 중공업을 넘나보다 골육상쟁을 빚었던 것이다. 그의 주변에 포진한 부친의 비서출신인 가신들이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또 그는 당시 ‘정치적 힘’을 과신하지 않나 싶다.
현대아산은 더 이상 대북사업을 이끌 능력도 재력도 없다. 대북사업은 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이 맡기에는 수익성도 없다. 정부가 맡아야 할 국가적 사업이다. 창업주의 아들이라는 구심점이 겨우 현대그룹 계열사간의 연결고리 노릇을 했을 뿐이다. 계열분리를 통해 독립경영체로 나가야 한다.
정몽헌 회장의 비극적 죽음이 주는 교훈은 정경유착의 검은돈 커넥션을 근절해야 기업도 나라도 산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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