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와 더불어 사람과 더불어”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 언론학
출판기념회장의 불이 꺼지고 영사막에 사진이 뜬다. 인물 사진이 중앙에 조그맣게 나타나면서 움직임이 일어난다. 얼굴이 차츰 확대되어 화면을 채우는 순간 다음 사람 얼굴과 중복(오버랩)되며 사라진다. 한사람에 5초씩 이어가기를 1백 70번, 수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연관성과 개성을 가지고 나타나 ‘정중동’(靜中動)으로 명멸한다. 지난주 여해(如海) 강원용 박사의 《역사의 언덕에서》 (전5권)출판기념회에서 본 12분 짜리 영상작품이다. 단순하고 간결한 기법으로 이런 인간군상을 연출한 사람은 서양범 교수(서울예술대학 디지털아트학부)이다. 그는 가시적 현상을 기록하는 정(靜)사진의 능력과 동작을 단절 없이 추적하는 동영상의 능력을 결합하여 이 군상도를 그려냈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고, 내 삶은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이런 강 박사의 생각을 담아 군상도는 ‘시대와 더불어, 사람과 더불어’라는 제목을 달았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세대간의 단절이 심화되었다고 단정하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45정’ ‘56도’ ‘625’ 같은 비속어의 출현도 386세대가 기득권·구세대를 전복한 탓으로 여긴다. 45세가 정년이니, 56세 근무자는 도둑놈이요, 62세 재직자는 5적이라고 자조하며 비웃는다. 이런 세태는 주초에 열린 ‘386, 반생과 모색’ 토론회에도 투사되었다. 한 토론자가 386세대는 균형감각이 부족하고 편을 가르고 정치지향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는 보도이다. “나는 386세대에 대해 ‘싸가지가 없고 일찍부터 발랑 까져 어른 말도 안 듣는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한 것이 인용되었다.
원로 강원용 목사의 삶과 역사의 증언
그럴수록 우리는 깊이 패인 주름살에서 울어나는 장로(長老)의 지혜와 질타를 아쉬워한다. 연령과 정념(情念)의 관계를 설명한 옛 사람의 말이 하나 있다. ‘노인의 정열은 호기로 발산하여야 하고, 억누르지 않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길다란 생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젊은이의 정열은 긴장시키는 상태에 있어야 하고, 호기(豪氣)로 발산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덕행을 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설립자인 여해(如海) 강원용 목사는 한국의 장로(長老)이자 민주화운동의 거목이다. 그는 최근 두 가지 발언을 했다.
하나는 전집 5권 ‘역사의 언덕에서’를 통한 숨이 긴 발언이다. 한길사 주관으로 출간한 이 전집의 부제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나의 현대사 체험’이다.
강 목사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1917년 한반도에서 태어났으니 금년 나이 여든 여섯이다. 이 연조면 중국 당나라 때 시선(詩仙) 이백의 시구를 실감하고도 남을 터이다. ‘백발 삼천장, 근심걱정으로 저리도 길었네. 모를레라 거울 속에,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던고.’ 이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은 어느새 늙어진 몸을 과장과 해학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강 목사는 수천 년 역사 속에서 겨우 86년의 짧은 세월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이 끝나기 전에 담담한 심정을 유지하면서 기록을 남겨 놓으면 후배들이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참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고 했다. 강 박사는 역사의 언덕을 넘으며 보고 겪은 체험담을 역사를 전수할 신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강 목사는 독선적이고 폐쇄적으로 대립하는 역사 속에서 양극을 넘어선 제3지대에 그가 설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그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중간파 때로는 회색분자 취급을 받았다.
노대통령, 원로의 쓴소리 경청해야
그가 크리스챤 아카데미 운동에서 각 방면의 대립을 해소하려고 창안한 방식은 ‘대화’였다. 강 목사야말로 꼭 필요할 길목에서 노인의 정열을 호기로 발산하고 길다란 생을 기르고 있는 당대의 장로인 것이다.
강 목사의 두 번째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직격 고언이다.(내일신문 6월5일자) 그는 노 대통령에게 우선 변명하지 말고 여론에 귀를 기울여 정국을 바꾸라고 촉구했다. 또 서로가 우기는 토론에 매달리지 말고 대화를 하라고 충고했다. 또 퇴임할 때 기립박수를 받는 대통령이 되려면 겸손해야 가능하다고도 했다.
앞에 언급한 옛 사람 말에 따르자면 노 대통령은 정열을 호기(豪氣)로 발산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것이 스스로 삼가 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다. 최근 강 목사의 모습은 오히려 이태백의 다른 시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옛날 사람도 지금 사람도 모두 흘러가는 물과 같음을 비유한 시구 - ‘고인 금인(古人 今人) 여류수(如流水)라’이다.
안병찬 경원대학교 초빙교수 언론학
출판기념회장의 불이 꺼지고 영사막에 사진이 뜬다. 인물 사진이 중앙에 조그맣게 나타나면서 움직임이 일어난다. 얼굴이 차츰 확대되어 화면을 채우는 순간 다음 사람 얼굴과 중복(오버랩)되며 사라진다. 한사람에 5초씩 이어가기를 1백 70번, 수많은 인물들이 각자의 연관성과 개성을 가지고 나타나 ‘정중동’(靜中動)으로 명멸한다. 지난주 여해(如海) 강원용 박사의 《역사의 언덕에서》 (전5권)출판기념회에서 본 12분 짜리 영상작품이다. 단순하고 간결한 기법으로 이런 인간군상을 연출한 사람은 서양범 교수(서울예술대학 디지털아트학부)이다. 그는 가시적 현상을 기록하는 정(靜)사진의 능력과 동작을 단절 없이 추적하는 동영상의 능력을 결합하여 이 군상도를 그려냈다. “나는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왔고, 내 삶은 그 많은 사람들과 함께 만든 것이다.” 이런 강 박사의 생각을 담아 군상도는 ‘시대와 더불어, 사람과 더불어’라는 제목을 달았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이래 세대간의 단절이 심화되었다고 단정하는 소리가 많이 들린다. ‘45정’ ‘56도’ ‘625’ 같은 비속어의 출현도 386세대가 기득권·구세대를 전복한 탓으로 여긴다. 45세가 정년이니, 56세 근무자는 도둑놈이요, 62세 재직자는 5적이라고 자조하며 비웃는다. 이런 세태는 주초에 열린 ‘386, 반생과 모색’ 토론회에도 투사되었다. 한 토론자가 386세대는 균형감각이 부족하고 편을 가르고 정치지향적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는 보도이다. “나는 386세대에 대해 ‘싸가지가 없고 일찍부터 발랑 까져 어른 말도 안 듣는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고도 말한 것이 인용되었다.
원로 강원용 목사의 삶과 역사의 증언
그럴수록 우리는 깊이 패인 주름살에서 울어나는 장로(長老)의 지혜와 질타를 아쉬워한다. 연령과 정념(情念)의 관계를 설명한 옛 사람의 말이 하나 있다. ‘노인의 정열은 호기로 발산하여야 하고, 억누르지 않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길다란 생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젊은이의 정열은 긴장시키는 상태에 있어야 하고, 호기(豪氣)로 발산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렇게 함으로써 덕행을 삼갈 수 있기 때문이다.” 크리스챤 아카데미 설립자인 여해(如海) 강원용 목사는 한국의 장로(長老)이자 민주화운동의 거목이다. 그는 최근 두 가지 발언을 했다.
하나는 전집 5권 ‘역사의 언덕에서’를 통한 숨이 긴 발언이다. 한길사 주관으로 출간한 이 전집의 부제는 ‘한국의 젊은이에게 들려주는 나의 현대사 체험’이다.
강 목사는 러시아에서 볼셰비키 혁명이 일어난 1917년 한반도에서 태어났으니 금년 나이 여든 여섯이다. 이 연조면 중국 당나라 때 시선(詩仙) 이백의 시구를 실감하고도 남을 터이다. ‘백발 삼천장, 근심걱정으로 저리도 길었네. 모를레라 거울 속에, 어디서 가을 서리를 얻었던고.’ 이 백발삼천장(白髮三千丈)은 어느새 늙어진 몸을 과장과 해학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강 목사는 수천 년 역사 속에서 겨우 86년의 짧은 세월을 살아왔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삶이 끝나기 전에 담담한 심정을 유지하면서 기록을 남겨 놓으면 후배들이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우리 역사를 바로잡는 일에 참여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고 했다. 강 박사는 역사의 언덕을 넘으며 보고 겪은 체험담을 역사를 전수할 신세대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강 목사는 독선적이고 폐쇄적으로 대립하는 역사 속에서 양극을 넘어선 제3지대에 그가 설자리를 마련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고 설명한다. 그리하여 그를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중간파 때로는 회색분자 취급을 받았다.
노대통령, 원로의 쓴소리 경청해야
그가 크리스챤 아카데미 운동에서 각 방면의 대립을 해소하려고 창안한 방식은 ‘대화’였다. 강 목사야말로 꼭 필요할 길목에서 노인의 정열을 호기로 발산하고 길다란 생을 기르고 있는 당대의 장로인 것이다.
강 목사의 두 번째 발언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직격 고언이다.(내일신문 6월5일자) 그는 노 대통령에게 우선 변명하지 말고 여론에 귀를 기울여 정국을 바꾸라고 촉구했다. 또 서로가 우기는 토론에 매달리지 말고 대화를 하라고 충고했다. 또 퇴임할 때 기립박수를 받는 대통령이 되려면 겸손해야 가능하다고도 했다.
앞에 언급한 옛 사람 말에 따르자면 노 대통령은 정열을 호기(豪氣)로 발산하지 않는 편이 좋다. 그것이 스스로 삼가 할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다. 최근 강 목사의 모습은 오히려 이태백의 다른 시구를 떠올리게 만든다. 옛날 사람도 지금 사람도 모두 흘러가는 물과 같음을 비유한 시구 - ‘고인 금인(古人 今人) 여류수(如流水)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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