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진구에 사는 성준(중 2년)이는 다음달이면 조기유학 길에 오른다. 미국 뉴욕주에 있는 새턴가톨릭스쿨이 성준이의 기착지. 이 학교는 사립 기숙학교, ‘보딩스쿨(Boarding School)’이다.
올해 초 입국 허가를 받기 위해 미 대사관으로 향하던 성준이는 많이 떨었다. 자신이 처한 ‘두렵고 외로운’ 상황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긴장한 성준이를 다독이며 결심을 굳히게 한 이는 어머니 허정호(42·한국사이버대학 교수)씨.
“인터뷰를 위해 대사관으로 가는 차안에서 떨면서 왜 미국에 가야 하느냐고 물었어요. 평범하게 사는 것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고 설득했죠. 엄마는 성준이가 초등학교 때 동생을 잘 챙기며 배낭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이에요. 차분하게 말을 듣더니 의외로 쉽게 수용을 하더군요.”
◆유학비용 1인당 7천만원= 유학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유학원을 찾는 학부모의 약 60%는 의사, 약사, 교수 등 전문직 여성이다. 유학원 관계자는 이들의 95% 이상이 보딩스쿨을 선택한다고 전했다. 등록금과 기숙사비, 여기에 용돈 등 소소하게 들어가는 잡비를 합해 지불해야 하는 유학비용이 연간 3500만원에서 많게는 7000만원에 달한다.
웬만한 샐러리맨 연봉의 2배나 되는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이 어린 자녀를 홀로 보내는 결단을 내리는 밑바탕에는 전문직 여성의 아킬레스건, 심리적 불안감이 있다. 모든 길은 대학으로 통하고 이 과정에서 숙제를 챙기고, 좋은 학원을 알아보고, 좋은 선생을 선택하는 등 아이의 성적 절반 이상이 엄마의 몫인 한국 교육풍토에서 일에 대한 성취 욕구 또한 포기하기 어려운 직장여성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씨는 눈물, 콧물 없이는 그 속상했던 기억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준비물을 못 챙기고 숙제를 돕지 못하는 건 나아요. 아이도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엄마의 부재를 확인시킬 때는 정말 속상하더라구요. 한번은 아이 담임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어요. 전날 간담회가 있었는데 부모가 참석하지 않은 경우는 우리아이 뿐이라구요. 또 학교에서 교복을 바꿨어요. 아직 생생하니까 좀 낡으면 사주겠다 했는데 아이가 계속 사달라 조르는 거예요. 몇 일 뒤에 무슨 일로 학교를 갔는데 전교에서 성준이만 예전 교복을 입고 있더군요. 그때 받은 충격은…. 부모와 박물관 가는 것 정도는 아이가 말도 안하고 지나가요. 또 눈물나네요.”
아이가 뒤쳐진다는 불안은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진다. 아니 자신은 도저히 ‘한국 엄마’들을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자괴감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맞벌이 부부의 고초=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김지영(43·대전시 서구)씨처럼 억지로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해 보기도 하고, 무역업체 대표인 김효진(42·경기도 분당구)씨처럼 주말이면 학부모모임에 나가기도 하지만 엄마들의 네트워크는 진입을 거부하기 일쑤였다.
김씨는 “여기서는 어느 학원이 잘 가르치고 몇 학년 때 어떤 과목을 (과외)시켜야 하는지, 모든 교육 정보가 학부모모임에서 오간다”면서 “일단 이들과 친해져야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주말에 가끔 보는 정도로는 역부족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초등학교 3∼4학년 무렵까지 들어가지 못하면 어머니 그룹에 편입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단언하는 이도 있다. 3년 전 큰아들을 미국 아칸소주에 있는 보딩스쿨에 보낸 정지영(40·은행 근무)씨는 “어머니회에 들어가 취미활동도 같이 하고 교사와 교분도 쌓고 운동동아리를 만들어 아이들끼리 어울리게 해야 하는데 아이만 넣으려면 받아주지 않는다”면서 “이것도 초등학교 3∼4학년 이전의 얘기지 이후에는 계속 못 들어간다”고 전했다.
보딩스쿨 유학은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이를 제대로 뒷바라지하기도 힘들고 ‘핵심정보’를 쥐고 있는 엄마들의 네트워크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전문직 여성들이 자녀들과 ‘동반탈출’을 감행한 결과인 셈이다. 비용이 부담이긴 하지만 고액과외와 비교하면 어차피 큰 차이는 없다는 것.
또 하나 보딩스쿨의 장점은 모든 것을 접고 아이를 따라나서야 하는 부담이나 처량한 ‘기러기아빠’를 만드는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점. 1년 내내 아이한테 신경쓰고 매달려야 하는 강박감에서도 자유롭다.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경험을= 여기에 자녀가 일찌감치 글로벌 시대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매력도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부분이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내년쯤 보딩스쿨에 보낼 계획인 김효진씨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여기서 외고를 다닐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외국과 거래하면서 내 시야가 트였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청소년기 다양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성문유학원 정성희 원장은 “전문직 여성들은 자신들의 현재가 ‘교육’의 증거인만큼 교육에 대한 욕구가 어느 층보다 높은 이들”이라며 “그만큼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의 강도는 더 심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에서는 훨씬 너그럽다”고 강조했다.
총체적 부실이라는 한국교육의 문제를 본인들만 피하려는 ‘이기적 행태’로 지목되는 조기유학. 하지만 아이점수가 곧 엄마점수인 한국 교육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보딩스쿨로 향하는 전문직 여성들의 관심을 막지는 못할 전망이다.
/ 손정미 기자 jmshon@naeil.com
올해 초 입국 허가를 받기 위해 미 대사관으로 향하던 성준이는 많이 떨었다. 자신이 처한 ‘두렵고 외로운’ 상황을 가능하면 피하고 싶었다. 긴장한 성준이를 다독이며 결심을 굳히게 한 이는 어머니 허정호(42·한국사이버대학 교수)씨.
“인터뷰를 위해 대사관으로 가는 차안에서 떨면서 왜 미국에 가야 하느냐고 물었어요. 평범하게 사는 것보다 넓은 세상을 보고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인 것 같다고 설득했죠. 엄마는 성준이가 초등학교 때 동생을 잘 챙기며 배낭여행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잘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말이에요. 차분하게 말을 듣더니 의외로 쉽게 수용을 하더군요.”
◆유학비용 1인당 7천만원= 유학원이 밀집해 있는 서울 강남역 인근의 한 유학원을 찾는 학부모의 약 60%는 의사, 약사, 교수 등 전문직 여성이다. 유학원 관계자는 이들의 95% 이상이 보딩스쿨을 선택한다고 전했다. 등록금과 기숙사비, 여기에 용돈 등 소소하게 들어가는 잡비를 합해 지불해야 하는 유학비용이 연간 3500만원에서 많게는 7000만원에 달한다.
웬만한 샐러리맨 연봉의 2배나 되는 ‘출혈’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들이 어린 자녀를 홀로 보내는 결단을 내리는 밑바탕에는 전문직 여성의 아킬레스건, 심리적 불안감이 있다. 모든 길은 대학으로 통하고 이 과정에서 숙제를 챙기고, 좋은 학원을 알아보고, 좋은 선생을 선택하는 등 아이의 성적 절반 이상이 엄마의 몫인 한국 교육풍토에서 일에 대한 성취 욕구 또한 포기하기 어려운 직장여성은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허씨는 눈물, 콧물 없이는 그 속상했던 기억을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준비물을 못 챙기고 숙제를 돕지 못하는 건 나아요. 아이도 인정해야 하는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엄마의 부재를 확인시킬 때는 정말 속상하더라구요. 한번은 아이 담임선생님께서 전화를 하셨어요. 전날 간담회가 있었는데 부모가 참석하지 않은 경우는 우리아이 뿐이라구요. 또 학교에서 교복을 바꿨어요. 아직 생생하니까 좀 낡으면 사주겠다 했는데 아이가 계속 사달라 조르는 거예요. 몇 일 뒤에 무슨 일로 학교를 갔는데 전교에서 성준이만 예전 교복을 입고 있더군요. 그때 받은 충격은…. 부모와 박물관 가는 것 정도는 아이가 말도 안하고 지나가요. 또 눈물나네요.”
아이가 뒤쳐진다는 불안은 시간이 갈수록 분명해진다. 아니 자신은 도저히 ‘한국 엄마’들을 따라가지 못하겠다는 자괴감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맞벌이 부부의 고초=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김지영(43·대전시 서구)씨처럼 억지로 학교운영위원회에 참여해 보기도 하고, 무역업체 대표인 김효진(42·경기도 분당구)씨처럼 주말이면 학부모모임에 나가기도 하지만 엄마들의 네트워크는 진입을 거부하기 일쑤였다.
김씨는 “여기서는 어느 학원이 잘 가르치고 몇 학년 때 어떤 과목을 (과외)시켜야 하는지, 모든 교육 정보가 학부모모임에서 오간다”면서 “일단 이들과 친해져야 그런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주말에 가끔 보는 정도로는 역부족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심지어 초등학교 3∼4학년 무렵까지 들어가지 못하면 어머니 그룹에 편입될 기회는 거의 없다고 단언하는 이도 있다. 3년 전 큰아들을 미국 아칸소주에 있는 보딩스쿨에 보낸 정지영(40·은행 근무)씨는 “어머니회에 들어가 취미활동도 같이 하고 교사와 교분도 쌓고 운동동아리를 만들어 아이들끼리 어울리게 해야 하는데 아이만 넣으려면 받아주지 않는다”면서 “이것도 초등학교 3∼4학년 이전의 얘기지 이후에는 계속 못 들어간다”고 전했다.
보딩스쿨 유학은 시간적으로, 정신적으로 아이를 제대로 뒷바라지하기도 힘들고 ‘핵심정보’를 쥐고 있는 엄마들의 네트워크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전문직 여성들이 자녀들과 ‘동반탈출’을 감행한 결과인 셈이다. 비용이 부담이긴 하지만 고액과외와 비교하면 어차피 큰 차이는 없다는 것.
또 하나 보딩스쿨의 장점은 모든 것을 접고 아이를 따라나서야 하는 부담이나 처량한 ‘기러기아빠’를 만드는 고통을 피할 수 있다는 점. 1년 내내 아이한테 신경쓰고 매달려야 하는 강박감에서도 자유롭다.
◆아이들에게도 다양한 경험을= 여기에 자녀가 일찌감치 글로벌 시대에 노출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는 매력도 빼놓지 않고 언급하는 부분이다. 현재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을 내년쯤 보딩스쿨에 보낼 계획인 김효진씨는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여기서 외고를 다닐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외국과 거래하면서 내 시야가 트였던 것처럼 아이에게도 청소년기 다양한 경험이 큰 자산이 되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성문유학원 정성희 원장은 “전문직 여성들은 자신들의 현재가 ‘교육’의 증거인만큼 교육에 대한 욕구가 어느 층보다 높은 이들”이라며 “그만큼 아이를 돌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안의 강도는 더 심하고, 교육에 대한 투자에서는 훨씬 너그럽다”고 강조했다.
총체적 부실이라는 한국교육의 문제를 본인들만 피하려는 ‘이기적 행태’로 지목되는 조기유학. 하지만 아이점수가 곧 엄마점수인 한국 교육의 현실이 바뀌지 않는 한 보딩스쿨로 향하는 전문직 여성들의 관심을 막지는 못할 전망이다.
/ 손정미 기자 jmsh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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